매일성경 묵상
한나의 외침! [삼상 2:1-10]
 – 2022년 05월 10일
– 2022년 05월 10일 –

이제 젖을 갓 뗀 사무엘을 성전에 놓아두고 돌아서며 부르는 기도이다. 그녀의 놀라운 신앙고백이다.



1.기쁩니다. 주님!(1-2절)
하나님께 서원하여 날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맡기고 돌아오는 한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무엘을 낳고 젖을 떼기까지 양육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앞에서 기도응답으로 누리는 당당한 시간들 이었다. 무엇보다 브닌나의 “격분”케 하는 것에서 구원하여 주신 기쁨의 시간들 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하나님을 붙잡고, 그 하나님의 응답을 누린 한나에게 아들과 의 이별의 아픔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무자한 비참한 여인에게 아들을 주신 일)을 찬양하고 감격한다.

*아들의 인생을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보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불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것과 아이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어미의 순종은 인간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삶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채우신다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인생의 의미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인생을 굳이 직업적인 종교인이 되라고 종교시설에 어렸을 때부터 내 맡기는 것으로만 오해하면 안 된다. 성장하는 장소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종교인으로 다듬기 위해 성전에 맡긴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따라 살아내라고 심정으로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의 품에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을 맡기고 나오는 한나의 기도가 특별하고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아들과의 육신의 헤어짐에 따른 슬픔과 아쉬움 보다, 하나님의 품이라면 사사시대와 같은 혼탁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 맡긴 것이 사랑하는 아들 사무엘에게 더 큰 은혜이고 복임을 믿기 때문이었다.

*한나의 신앙고백의 시작이 “기쁨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습니다!” 였다는 것이 도전이 된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믿기에 마음에 불안과 염려보다 기쁨과 평안이 넘치고 있을까?



2.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3-10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사람이 하는 일을 달아 보시는 분이시다.(3절)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 강한 자와 약한 자, 넉넉한 자와 굶주린 자, 자식이 없는 여인과 자식이 많은 여인 등이 세상이 말하는 현재가 결론되게 하지 않으신다(4-5절). 언제든지 역전이 일어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나님께 모든것에 대한 주인 된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6-8절). 하나님의 주권은 대체 불가이다. 사람이 힘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9절). 사사시대의 암울함에서 민족을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대적하는 이들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심판을 내리시며,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능력, 영광)을 높이신다(10절).

*한나의 기도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개인의 생사화복과 관련된 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 세상의 기득권과 철밥통 처럼 여기는 것이라도 언제든지 역전 시키시는 권리이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남는 능력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과 한계가 없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늘 세상이 고정한 것을 역전시키신다. 삶과 죽음(6절), 가난과 부함(7-8절)이 고정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든지 역전 된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 그분이 땅 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새번역_8절)”

*인도함과 멸망 시키심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사람이 힘으로 이길 수 없다(9절). 주님께 맞서는 이는 산산이 깨진다. 벼락으로 치신다. 땅 끝까지 심판하시며, 세우신 왕에게 힘과 승리를 안겨 주신다(10절).

*그 주권을 의지하며 맡긴 사무엘이 어찌 걱정이 되겠는가! 그 주권과 능력 앞에 맡긴 사무엘에게 어찌 기대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감사와 감격, 기쁨과 소망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나는?
-한나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슬픔과 고통, 절망의 끝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회복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기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고, 사무엘의 출생은 이를 확정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능력을 의심할 수 없었다. 깊은 고통 중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 주는 엘가나의 사랑 보다, 영저긍로 의지하고 기댔어야 할 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주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사시대의 암울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든든한 날개 아래 깃드는 것이었다. 이 믿음이 이별의 슬픔보다 기쁨을 누리게 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이토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확고하게 노래할 수 있는 한나의 영성과 지성이 놀라울 뿐이다. 성도의 기도를 술 취한 줄로 여긴 제사장 보다 깊고, 경건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지만 한나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는 적극성은 아쉬운 엘가나 보다 성숙하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교제(기도)가 깊고 지속될 수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쉬워진다. 세상 상식으로 보자면, 이제 막 젖을 뗀 아들, 그것도 귀하게 낳은 아들을 성전에 맡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사시대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사회라면 “어리석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한나는 오히려 하나님 품에 성장하는 것이 사사시대와 같은 사회 속에서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알았다.

*사무엘의 어머니로서의 한나의 기도는 그래서 사시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자신의 삶을 통해 현실감 있게 드러내는 선언이다.

*자기 주권에 취해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하고 확신하는 신앙고백이며, 자기 능력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이 아니면 자신이 그토록 의지하는 것들이 일시에 역전 될 수 있음을 상기 시키는 경고와 예언의 고백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망각하기 일쑤인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런 무뢰한 악인들을 ‘흑암(어둠) 중에서’ 잠잠하게 하실 것이며, 교만하여 자기 지식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자들을 반드시 깨뜨리시는 분이심을 선언한다. 마치 선지자와 같은 외침이 아닐 수 없다.

*사사 삼손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시지 않으셨다. 사사들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각성시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으로 이끌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세우실 어미의 삶에서부터 간섭하시고(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_1:5-6), 고통과 좌절, 설움 속에서(격분 하였다_1:6), 하나님만 찾고 찾게 하셔서(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_1:10),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아들로 드리겠다는 서원(1:11)을 통해 사무엘을 준비 시키셨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좌절과 고통,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무엘을 치밀하게 준비하신 것이다. 그리고 한나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기대하고 신뢰한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이 우리 시대에도 이와같이 일하심을 믿는다. 특히나 우리 민족과 나라에게 새로운 지도자가 서는 날,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한나의 기도가 울림이 되는 아침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 역전, 전복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되물림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을 망각하고 오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무리 그들이 가진 힘과 권력이 막강하다 여길 지라도 “하나님의 힘”을 이길 수 없을 노래하는(9절) 한나의 노래가 위로가 되는 아침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자신들이 가진 힘과 권력, 정보를 다 이용하여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쪼개신다.


*사무엘을 성전에 놓아 두고 나오는 한나가 외친다!
*절망에서 기쁨으로….
*자기주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자기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주님, 절망의 부르짖음이 기쁨의 탄성이 되게 하신 한나의 하나님이 그리운 아침입니다. 저에게, 민족과 나라에게 이 고백을 터뜨리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사무엘보다 먼저 한나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외쳤다니요! 지금 제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허락하여 주시면, 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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