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님 때문에 잔치의 기쁨이 더해졌다. [요 2:1-12]
 – 2022년 01월 06일
– 2022년 01월 06일 –
나다나엘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신 주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이시는 ‘표적’을 행하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기적은 주님의 사명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

1장에서는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냈다면, 2장은 주님께서 “표적과 성전 청결”을 통해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신다. 특히 1:50절에서 나다나엘에게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하셨던 말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의 종교적인 삶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들을 이제 보기 시작할 것이다.


1.포도주가 떨어졌다(3절)
남도의 잔치는 홍어가 빠지면 안 된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내도 홍어가 빠지면 잔치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이와 같다. 아무리 풍선한 음식들이 있어도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를 망친다. 잔치를 베푼 이는 수치를 당한다. 당시 포도주는 대단히 값진 음료였다. 약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잔치를 제대로 치루기 위해 가난한 서민들은 오랫동안 포도주를 아끼며 준비해야 했다. 본문에서 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진 것으로 보아 가난하여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하객들로 부터 불평과 비방이 쏟아지고 집안은 수치를 당할 일이었다. 갓 결혼한 부부는 결혼 생활의 불깅한 징조로 받아들이기 십상이었다. 그렇기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은 매우 암울하고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흥겨운 잔치 이지만 감춰진 암울함에 마냥 흥겹지 않다. 온갖 음식들이 풍성했으나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잔치가 수치가 된다. 마치 세상에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말씀)와 참 빛(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이 없다면 수치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하는 듯 하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세상에, 삶 속에, 예수님의 은혜가 떨어졌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암울함을 함께 근심하며 아들 예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절)”라며 이 곤란한 지경에 빠진 잔치집을 외면한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 곤란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2.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
예수님의 단호함에도 마리아는 웬일인지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한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마리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행하라는 말에는 그럼에도 예수를 신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오병이어의 기적,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형제들의 큰 일을 하려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에 대한 강권 등이다. 처음에는 거절하는 듯 싶었지만 곤란한 상황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다만, 사람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시나, 곤경에 처한 인생들을 마냥 기다리게 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그렇다.


3.돌항아리 여섯(6-7절)
주님께서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물 두세 동이를 넣을 수 있는 돌항아리 여섯’개 안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져다 주라고 하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은 하인들에게 있어서 터무니없었을 이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연회장의 평가로 이 기적의 행복한 결말을 드러낸다.

겉으로 보기에 흥겨움이 넘쳐 나는 잔치 자리, 하지만 포도주가 떨어져 곧 수치를 당할 수 있는 잔치가 벌어지는 곳… 이 잔치의 위기를 묘사하면서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 6개”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에는 요한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므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오므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유대의 정결법(율법)은 마치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의 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아무리 정결 예식을 잘 지키며 잔치에 동참하여도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집에 필요한 것은 항아리마다 가득 채운 물이 아니라 포도주라는 것이다. 아무리 물이 많아야 소용 없다. 아무리 율법의 조항을 따라 준수하여도 “포도주”가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니다.

돌항아리에 들어가는 물의 양은 “물 두세 동이들”이 들어갈 양이라고 했다. 75~115리터 정도의 물이 들어간다치면, 약 56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얼마나 놀라운 규모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그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관습과 규례를 익숙하게 준수하므로 종교생활에 만족한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다. 율법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율례는 위태 위태한 잔치집의 흥이 꺽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 잔치가 더욱 잔치되게 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더 큰 기쁨, 더 큰 은혜를 공급해 준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종교적인 규례나 제도가 채워 줄 수 없는 기쁨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베푸신다.


나는?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믿은” 이들은 제자들 뿐이었다. 특히 모든 과정을 몸소 경험한 하인들이 믿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의아하다. 집주인이며, 연회장이며, 통상적인 잔치 말미의 맛좋은 포도주의 반전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믿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기막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아도 그 뿐이다.

-지금 이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살 맛 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더 많다. 기쁨이 넘친다. 하지만 아무리 흥겨운 잔치라도 포도주가 떨어지면 금새 흥이 사라질 것이다. 도리어 불평하고 곤경에 빠진 것이다. 기쁨이 근심 되는 것은 순간이다. 이것이 세상의 즐거움이다. 내가 세상에서 흥겹게 살아가는 것이 일순간 떨어지면 흥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돈”일 수 있고, “명예”일 수도 있으며, “성공”일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고 믿지만, 참 행복은 돈과 명예와 성공과 같은 것으로 누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일순간 떨어질 때 나락으로 곤두박질 당한다. 이것이 세상의 한계이다. 결핍이다. 가나 혼인잔치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면 달라진다. 예수님은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신다. 이전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이시기에 충분히 그렇게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은 더 좋은 포도주가 나온 혼인잔치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허울뿐인 돌항아리에 담긴 정결법을 지키는 규례와 전통이 주는 안정감이 아니라 더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놀라움의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일”이 시작 되었다. 잔치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껏 맛본 포도주 보다 더 맛 좋은 포도주를 맛보는 잔치가 열렸다. 주님께서 여신 시대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더 기쁘고 좋은 잔치의 시대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잔치가 시작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 제자들이 이를 바라보고 믿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종교적인 생활이 아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 기쁨과 즐거움, 감격은 “교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감격하며 그 기쁨을 누리며 반응하는 것이다. 믿는 것이다. 이 잔치가 나의 생에 펼쳐지게 하신 것이 감사하다.

*나를 예수 믿게 하셔서 이 잔치 안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과연 은혜 중의 은혜다!


**주님, 가나 혼인 잔치가 더 기쁜 잔치 되게 하신 것처럼 나의 삶에 주님 때문에 잔치의 기쁨이 넘쳐남을 믿겠습니다.
**주님, 신앙생활이 주님과 함께 하는 잔치와 같은 기쁨이 있음을 알리겠습니다. 그래서 기쁨안에 거하도록 돕겠습니다.
**주님, 그 기쁨이 종교생활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깨달아 말씀의 힘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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