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이 다시…. [삼상 3:1-21]
 – 2022년 05월 13일
– 2022년 05월 13일 –

사무엘이 자라나는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이 보이지 않았다(1절). 깊은 밤,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사무엘이 자라는 실로의 성소조차 사사시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엘리로부터 두 아들들의 하나님을 멸시함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홉니와 비느하스가 엘리의 모습을 보고 배웠듯, 사무엘도 쉽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스스로 조심하며 불의한 어떤 것에도 눈길 주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자라났다. 절망이라는 어둠이 깊었고 짙은데, 오히려 아직은 드러나지 못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어디 사사시대 뿐이었나? 분열왕국 시대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떠나 바알에게 돌아선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시대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왕상 19:18) 드러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 흔히 교회가 가장 강성했던 중세시대를 아이러니하게도 “암흑시대”라고 불렀지만, 그 짙은 어둠 속에 영국의 위클리프가, 보헤미아의 후스, 피렌체의 기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있었다. 그들의 희망 바톤을 루터와 칼뱅이 이어 받았다.

엘리 제사장과 홉니와 비느하스가 활약하던(?) 그 암흑의 시대에 사무엘이 어둠에 물들지 않고 꿋꿋하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붙잡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엘리는 눈이 점점 어두워 가고(2절)” 있었다.

*어둠이 짙게 드리울 수록 하나님의 사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1.피할 수 없는 영적 양극화(1-3절)
충격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듣고서도(2:27-36) 엘리의 일상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퇴보한다. “나이가 많은 엘리의 눈이 이미 어두워졌다(3절).”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변화이다. 몸이 늙으면서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도 어두워져 갔다는 점이다.

1절은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 하였고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기록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의 집안에 대한 몰락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도 엘리는 영적으로 기민하지 못했다. 그 예언을 듣고서도 회개의 부르짖음의 잿더미에 올라서지 못한다. 너무도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다. 엘리는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사무엘처럼 “여호와를 섬겼다.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와 같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막힐 일이었다.

반면에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다.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를 반복적으로 밝힌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1장에서 성소를 지키며 예배하는 자(한나)에게 엉뚱한 답변을 시전하며 제사장 직분을 흉내내고 싶었다. 대제사장은 직업일 뿐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달랐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라(3절)” 성소의 불은 원래 24시간 꺼지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저자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1절)”,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2절)”의 말씀들을 이어 받으면서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단지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게 한다.

*영적 양극화가 분명하다. 엘리 가문, 하나님과 백성을 이어주는 제사장은 나이가 많아 점점 기력이 쇠해져 간다. 하나님의 음성조차 언제 들었는지 가물락 하다. 반면 사무엘은 어떤가? “여호와를..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를 간간히 고백하며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무럭 무럭 자라난다.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라는 표현으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사무엘의 모습을 묘사한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났지만, 엘리와 그 집안은 점점 (눈이)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했다… 영적인 양극화가 점점 더 가속화 되었다.



2.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4-10절)
하나님은 사무엘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엘리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 몸은 노쇠하여 가고, 영적으로 어두움은 더욱 더 짙어졌다. 엘리의 시대로 대변되는 사사시대는 영적으로 어둡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그런 시대 였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여겼지만… 흠… 하나님의 목소리와 엘리의 목소리가 비슷했을까? ㅎㅎㅎ) 지체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또, 10절에서는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한다. 사무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이상을 보여 주셨다. 또, “여호와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21절)”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는 시대였지만 들려주고 보여주실 사무엘에게는 이제부터 희귀한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말씀들이 각종 수단과 통로들을 통해 넘치도록 공급되어지는 시대 속에서 과연 우리들에게는 말씀이 들려지고 확인되어지고 있을까?



3.사무엘의 첫 사역…. 하필이면(15-21절)
그렇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예언 하셨던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일은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새번역_11절)” 말씀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어질(새번역_12절)” 말씀이었다.

아들들의 저주받을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망하지 않은 엘리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겠다는 내용이다(13-14절). 그런데 새번역은 “알면서도… 이미 알고 있다”를 반복하여 기록하면서 엘리의 집이 심판받는 분명한 원인이 엘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엘리의 집을 반드시 심판하여 “알면서도… 책망하지 않은, 그 죄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어떤 회개의 시도도 하지 않은 엘리와 같은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사회에 분명한 경고를 보여 주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엘리 뿐이겠는가! 이 시대, 나를 포함하여 모든 부모들의 모습 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는 영적 나태함이 왜 없을까!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었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직분이기에 그들을 향한 심판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이기도 했다. 그 두렵고 두려운 선언을 소년 사무엘에게 말씀 하시고 계신다.

*사무엘의 영성이나 성품의 성숙함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자란 그는 나이는 어릴 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공감하고, 하나님의 마음처럼 그 말씀을 다룰 줄 아는 성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잘 키우셨다!

*그런데 첫 사역이 너무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엘리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서 들려 주신 말씀대로 엘리에게 전한다. 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엘리와 사무엘의 영적 위치가 바뀌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에게 제사장 엘리가 전해 듣는다. 이 어색하고 무거운 상황을 어찌할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의 반응이 시원찮다! 무기력하게 보인다. “듣는 백성마다 무서워서 귀가 멍멍해질”,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인데… 정작 당사자인 엘리의 반응이 너무도 담담하다… “올 것이 왔구나…”라는 포기된 마음이었을까? 아니다. 저자는 본문을 시작하면서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라고 표현했다. 단지 육신의 노화의 상태만을 설명하는 기록은 아닐 것이다…. 엘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매우 어두워진 상태임을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두운 이들의 특징이 “무감각”, “무반응”이다. 엘리가 이렇게 되어 버렸다. 말씀이 희귀해지고 이상이 보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민감하여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전해야 했을 엘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무감각해져서 나타난 결과였다.



나는?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없을까? 아니다. 사무엘이 있다. 엘리를 통해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단지 특별하게 한 두번 드러내신 것이 아니었다. “자랄 때에…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단에서 브엘세바(온 이스라엘을 지칭한다)까지 모든 백성들이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세운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19-20절)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실로에서 계속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새번역_21절).” 엘리의 시대를 내리시고 사무엘의 시대를 여셨다. 그 시작은 “말씀과 이상”을 보여 주시면서 부터였다. 사무엘은 들려 주신대로, 보여주신대로 “충실하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전하였다(2:35).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1절) 엘리의 시대가 지나고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나서 그 말씀을 전하는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든 백성들이 선지자(예언자)로 세워진 것을 알게 되는 사무엘의 시대가 열렸다.

*사무엘의 시대는 “여호와의 말씀이 충실하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성실하게” 드러나는 시대로 시작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오늘에도 계속 들려진다. 매일 묵상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양육되는 말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이루어진다. 그런데 엘리처럼 말씀이 들려져도 무감감하고 무반응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속히 점검하고 회개하며 나아와야 한다. 그래야 산다.

*내가 그런 엘리의 전철을 따르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아 보는 아침이다. 눈으로 읽었지만 마음이 요동치고, 귀가 먹먹해지는… 때로는 마음을 평안케 하고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그런 생동하는 말씀으로 나에게 역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내가 전하는 말씀도 그렇게 역동하고 생동하는 말씀이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사무엘처럼 “선포하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 시대 말씀 사역자로 세워졌음을 알게 되며, 계속 말씀으로 나에게 나타내 주시는” 감격스러운 실재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 충실하게 전하겠습니다…
*주님, 행여 무감각해지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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