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진짜가 우리에게 있다! [히 8:1-13]
 – 2022년 07월 12일
– 2022년 07월 12일 –
옛 언약, 옛 성전, 옛 제사장의 한계를 설명하고 새 언약, 하늘 성소,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증거 한다.

이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요점’은 본격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를 말하고 싶어 먼저 성경에서 단 두번 등장한 신비스러운 인물인 멜기세덱을 시원하게 풀어냈다. 물론 멜기세덱을 통해 예수님을 풀어낸 것이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멜기세덱을 통해 설명했다. 또한 천사, 모세,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이라는 예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1절) –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신다!
“지금 말한 것들의 요점은 이러합니다. 곧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한 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지엄하신 분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새번역)

그런데 너무 장황해 지니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무엇보다 지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 준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계신다”라는 것이다. 여기 계신다 라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세상의 구원자가 누구이고 왜 그가 구원자인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구원주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고 그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책이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에게 있다! 천사, 모세, 인간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하신, 심지어 멜기세덱과 같은 그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산다. 하지만 이에 버금가도록 그 하나님이 지금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인식도 매우 중요하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계신곳을 안다고 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다면 절망이다. 그런데 본문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 대제사장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 이것이 요점이다.

앞서 그 많은 비교를 통해 설명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가 바로 여기 계신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에게 더 좋은 언약을 주시고 항상 간구해 주시는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2.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6절) -실체!
인간 대제사장의 역할은 “모형과 그림자(5절)”이다. 그들에게 주셨던 율법과 성막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대제사장) 되신 주님을 예표하기 위한 부분적인 도구 일 뿐이다. 구약의 약속은 예수님을 보이시기 위한 모형과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땅에 있는 성전에서 섬깁니다. 모세가 장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a”너는 명심하여 내가 산에서 네게 보여준 그 모형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새번역_5절)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본체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과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다! 실체이며 원형이고 진짜가 왔으니 이제 모형은 필요없다(13절). 진짜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마치 구약의 사람들처럼 ‘모형과 그림자’를 떠받들고 살면 안된다. 여전히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 이미 우리에게 있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운 더 좋은 언약은 내 생각에 두시고, 마음에 기록하신다.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날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다가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새번역_10절)

이 새 언약은 이전에 세웠던 첫 언약의 효력이 끝났음을 분명히 한다. 첫 언약은 이제 효력을 잃는다. 그러나 새 언약을 설명하는 도구로 남는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율법을 생각에 넣어 주고, 마음에다 새겨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어릴 때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은 어디 계시는가? 라는 질문은 늘 속시원한 대답보다 두루뭉실한 대답이 많았다. 내 마음에…., 하늘에…, 혹 우주 어딘가에…, 저어어어기~~~~~하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지금 생각하면 참 머쓱하다.

-또 내가 믿는 예수님을 이 땅의 세상 가치와 비교할 때 늘 지금 손에 쥘 수 있고 분명한 계산의 법칙이 통하는 익숙한 것들보다 뒷전에 두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에서는 예수님이 가장 중심이며 우선순위로 잡아 놓지만, 현실에서는 늘 급한것, 편리한 것, 이해되는 것, 익숙한 것 등을 더 추구했다. 예수님의 실체와 현존성을 실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을 우겨서 머리 속에 집어 넣었어도 마음이 확신되지 않았을 때 주님은 늘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정해놓은 형식을 따라 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믿음생활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해 놓은 형식을 따라한들, 이 형식을 통해 드러내보이시는 실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예수님께 직접 들을 복음을 들려주는 증인들이 있고 그들이 전하여 주는 복음을 여러 이적들과 표적으로 증명 되어도 여전히 옛 것(율법)의 편리함에 안주하여 새 것(새 언약의 중보 예수 그리스도)의 참신한 도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려도 아이러니하게도 제사는 드릴 수록 자신의 범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절차일 뿐, 그것이 나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터인데, 그것으로 다시 돌아가려 할까?


*모형과 그림자가 아닌 진짜가 있다! 그 진짜는 특정 장소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있다! 진짜가 우리에게 있다! 이 확신(믿음)이 모형과 그림자일뿐인 옛 약속의 굴레로 돌아가지 않게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지금 우리에게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나를 위한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지식),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계신다(확신/믿음).

*모형과 그림자를 떠받드는 삶이나, 여전히 구원자를 기다리는 신앙은 구약을 사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실체, 원형되신 주님이 우리에게 있다! 누가 뭐라해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점은 “주님이 우리에게 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이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잊지 말자! ‘주님이 함께 계신다’


*주님, 새 언약의 중심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확신과 믿음을 굳건하게 붙잡겠습니다.
*주님, 진짜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진짜와 사는 사람답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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