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법궤를 미신으로 전락시키다… [삼상 4:1-11]
 – 2022년 05월 14일
– 2022년 05월 14일 –

4장은 3장에서 선포된 엘리 가문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 지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준다.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확정이 되었고,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던 이들의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 블레셋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신다.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3:1)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고(3:21)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1절).” 이렇게 이스라엘에 말씀이 다시 회복되고 있을 때,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부어 주시기 위해 말씀을 가로 막고 있던 죄악의 걸림돌들에 대한 심판이 먼저 였던 것이다. 새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 사사시대의 죄의 관습들을 끊어내야 했다.

양 진영에서 전력을 다하여 부딪힌 1차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참담하게 4천의 군사를 잃고 패배한다(1-2절). 충격을 받은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오늘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하게 하셨음을(3절) 분명히 인식한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 판단 이었음에도 이 패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헤아리지 못했다. 패배의 아픔을 주셨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어야 했다. 적어도 이전까지 희귀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사무엘이 보고 들으며 온 이스라엘에게 전하고 있었다(1절). 장로들은 법궤를 가져오자는 결의를 하기 앞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제사장이나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지도자들이 성급하게 법궤를 전장으로 가져 오자고 결정한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한 이 모습이 사사시대의 전형적인 죄악이었다. 하나님조차 자기 소견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일 수 있다는 “여호와에 대한 멸시”가 이스라엘에게 팽배해 있었다. 엘리 가문의 하나님 멸시는 온 이스라엘의 멸시였다.

결국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 오자고 의결하고 사람을 보내어 가져온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법궤를 전쟁터에서 지킨다(3-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와서 블레셋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하게 하자고 결의했다. 여호와의 법궤가 진영 안에만 있다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믿는 행동이 아니었다. 자기들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자기들의 뜻일 뿐이었다.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미신일 뿐이다.



온 이스라엘은 법궤가 진영 안으로 들어오자 땅이 울리 정도로 환호성을 지른다. 오죽하면 블레셋 군사들이 두려워 할 정도였다(5-6절). 블레셋은 큰 두려움이 임하였지만, 오히려 죽음을 불사한 투지로 승화 된다. 블레셋 사람들아, 대장부답게 힘을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히브리 사람이 우리의 종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될 것이다. 너희는 대장부답게 나가서 싸워라!(새번역_9절)” 블레셋 군대는 사기가 충천되었다. 그리고 머뭇거림 없이 2차 공격을 감행 하였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보병 3만이 전사하고,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으며,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는다(10-11절).

*희한한 일이다. 엘리 가문의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 위해 애꿎은 이스라엘 백성 34,000명이 죽었다. 단지 병들어 죽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특정 장소, 특정 물건 등을 의지하여 신적인 능력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심판하셨다.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형상과 물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는 형상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방식과 자기 소원대로 조종하려는 매우 잘못된 생각들이다. 역사적으로 형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를 원했다면 늘 실패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소망이 없다.



블레셋은 광야에서의 법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웠지만 블레셋의 지도자들은 대장부 답게 싸우자며 군사들을 독려했다. 그렇지 않으면 “히브리 사람이 우리의 종이 되었던 것 처럼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될 것이기에 대장부 답게 힘써 싸우라고 도전했다(9절)”

법궤에 의지하여 전력을 다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생사를 걸고 대장부답게 달려드는 블레셋과의 2차 전투는 싸움이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져서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3만명이 죽었다(10절). 법궤를 지키고 있던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했고,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겼다(11절).

*법궤 없이 싸울 때는 4천명이 죽었지만, 법궤와 함께 싸웠으나 3만명이 죽고 말았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이용한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심판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는지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대했는지 성찰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은 무지와 완악함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11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신 말씀대로(2:34) 이루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의 승패가 중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뜻과 마음을 이루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셨다.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라도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블레셋에 내주셨다. 이스라엘 백성 34,000명이 죽어 나간 비극과 함께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 예언이 선포된 지 20년이 다 되도록 무감각하고 무지하며, 더욱 무식하여 져서 하나님을 자신들의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진노의 심판이셨다.



*주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법궤를 따르는 미신 종교를 만들어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나의 승리를 위한 수단과 도구로만 여긴 이스라엘의 악함을 봅니다. 20년의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 저들에게 패전과 죽음의 심판이 당연합니다. 우리도 주어진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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