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블레셋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삼상 6:1-7:2]
 – 2022년 05월 17일
– 2022년 05월 17일 –

하나님의 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과정을 서술한다. 하나님의 궤로 인한 블레셋 도시들에게 재앙이 그치지 않는다. 블레셋은 복술자들의 조언을 따라 속건 제물과 함께 궤를 다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돌려 보낸다. 한편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크게 살육을 당한다.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연달아 재앙을 당하자 블레셋 사람들은 ‘궤’를 돌려 보낼 방안을 듣기 위해 제사장들과 북술자들을 청했다(1-2절). 그들은 단순히 궤를 보내는데 그치지 말고 속건제를 같이 드려야 궤를 탈취한 것 때문에 생긴 질병(악성 종기)도 같이 옮겨 갈 것이라고 조언했다(3절). 이에 금 독종 다섯, 금 쥐 다섯을 속건제물로 마련한다(4-5절).

*하나님의 존재의 실재를 절실하게 느꼈지만, 그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이 곧 세상의 모습이다.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목이 잘렸어도 여전히 다곤 신상을 굳게 붙잡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상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다. 원래 속건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에 잘못을 범한 경우나(레 5:15), 인간 관계에서 상대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레 6:2-3) 드리도록 정한 제사인데, 블레셋은 하나님을 다곤 신이 하나님에게 해를 끼쳤으니 그에 대한 배상의 개념으로 드려야 한다고 결정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궤를 돌려 보내면서 자신들이 당한 환난의 이유를 확인하고자 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궤 때문 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로 준비한 것들을 함께 궤 곁에 두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송아지를 갓 나은 어미 소 두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게 했다(7-8절).

“두고 보다가, 그 소가 그 궤가 본래 있던 지역인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이렇게 큰 재앙은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그런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새번역_6:9절)

수레를 멘 암소는 이제 젖을 뗀 송아지들을 뒤로 하고 울면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향하였다. 놀랍게도 한번도 길을 벗어나지도 않았고, 멍에를 처음 메었지만 날뛰지도 않았다(12절). 블레셋의 지도자들은 놀라면서 수레를 뒤따라 갔을 것이다.

*이제 분명해 졌다. 지난 7개월 동안 블레셋에게 임한 재앙의 이유가 확실해졌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의 완악함을 열 가지 재앙으로 응징하고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6절).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빼앗은 궤를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다면 자신들도 이렇게 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7개월 동안 당한 일을 보고 마치 애굽의 바로가 당한 재앙과 다를 바 없음을 알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여도 이렇게 스스로 드러내신다. 이스라엘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부름 받아 그 나라를 대변하며 살라고 하신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교회가 뼈아프게 바라 보아야 할 일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겠는가! 하나님께 구원 받아 교회 된 내가 깊게 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하나님의 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암소들은 곧장 벧세메스로 향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지도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승리자로 귀환하신다, 전리품(금 독종 다섯, 금 쥐 다섯)까지 챙기시며 이스라엘로 돌아오신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뻐하며 수레의 나무를 패고 수레를 끌고 온 암소들을 잡아 “벧세메스의 여호수아 밭에 있는 큰 돌”위에 궤를 놓고 그 앞에서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궤가 다시 블레셋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수레는 부수고, 소는 제물로 드린 것이다. 본래 번제의 제물은 수소로만 드려야 하지만, 벧세메스 사람들은 단지 궤를 싣고 온 암소들을 번제로 드려 다시는 궤가 이스라엘 땅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출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한 마음은 간절한데 형식과 방법은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였다.

또,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벼이 여겼다. 거룩한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보다 그만 70명이 목숨을 잃었다. 7개월 전의 전쟁에서 법궤를 전쟁터로 끌여 들여 이용하며 경험한 처절한 패배를 기억하지 못했다. 블레셋을 치시고 스스로 승리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거룩한 궤를 들여다 보고 싶은 욕망은 단지 지적인 욕망에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야 한다. 예배의 형식이 존재하는 이유다. 적어도 순서마다 담긴 의미를 잃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지킬 때 예배가 예배 다워 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 흔히 종교적인 형식이라고 여기는 관습을 쉽게 간과 해서도 안된다. 오랜 시간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교제한 최적의 형식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욱 의미를 따라 지킬 때 성실하게 지키며 드리는 형식이 신앙의 힘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님의 궤가 스스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궤를 빼앗겼을 때나, 7개월이 지난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의 변화가 더 눈에 띌 정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로부터 나온 재앙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다곤 신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역사를 통해 배울 줄 알았다. 애굽의 바로가 경험했던 재앙의 하나님을 간과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더 재앙이 가중 되기 전에 서둘러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려 했다. 단, 빼앗았을 때는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뺴앗았다고 생각 했지만, 돌려 줄 때는 그야말로 신적 능력을 시험에 본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는 어린 송아지를 둔 암소에게 수레를 끌게 하여 어떻게 되는지를 바라본다. 지극히 미신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송아지와의 생이별에 울부짖는 어미소의 모성애의 본성을 거스리고 마치 하나님께서 암소들을 이끄는 농부처럼 수레를 이스라엘를 향하여 이끄셨다. 처음 메어진 멍에에 발버둥을 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수레에 실린 궤는 떨어지지 않고 이스라엘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다.

-그렇게 돌아온 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기쁨 그 자체였다. 밀을 추수하다 “기뻐하며” 맞이하고 번제를 연이어 드렸다. 하지만 그 방법은 율법에서 정한대로 라기 보다 임기응변식의 방법이었다. 더구나 하나님의 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죽음에 이른 7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하나님께서 명령한 말씀을 그만큼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뿌리깊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의 오만함이 비극을 가져 왔다. 이렇게 일어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 조차도 하나님의 궤와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 하게 했다. 기가 차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셔서 함께 계심에도 그것이 두려워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고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 가까이 거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가나안화 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 “이렇게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는가? 이 궤를 어디로 보내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할까?(새번역_20절)” 블레셋을 물리치고 자기 땅으로 개선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다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색할 수록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주님, 블레셋이나 이스라엘이나 주님을 향한 수준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주님, 무지와 무식이 사랑하고 함께해 야 할 하나님을 두렵게 만듭니다. 무지와 무식에서 꺼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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