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19-25]
 – 2022년 07월 17일
– 2022년 07월 17일 –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사역은 단 한 번으로 영원한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의 의미와 결과를 적용하며 직접적인 권면을 시작한다. 본문은 문장의 형태에 따라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19-22절은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를 의지하여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권면한다. 23절은 진리의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고 하고, 24-25절은 함께 한 공동체가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살 것을 권면한다.

히브리서를 1장~10장 18절까지 교리부분(더 나은 제사, 더 나은 제사장 등 예수님과 구약의 모든 교리와 비교)으로, 10장 19절~끝 부분까지 실천과 적용 부분으로 나눈다면, 본문 19~25절은 적용 부분의 첫 번째 메세지인 셈이다.



1.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9-22절)
“그러므로”-1장~10:18까지의 교리를 결론한다. 22절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한다. 매우 추상적이다. 과연 “하나님께 나아가자”라는 문장의 본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은 정답 처럼이 아니라 평범하게 읽어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의 중심은 “예배와 제사”였다. 의식의 모든 흐름은 제사와 제사장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자!”라는 외침은 이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제사와 제사장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자 외치는 것이다. 이런 것의 근거로 19절을 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9절의 “그러므로”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큰 접속사로서 첫 번째 요청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외쳤다. “예수님의 죽음을 전제”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외친다(20절).

마 27:51 – 53의 현상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50절에서 증거한다. “예수님이 영혼이 떠나시면서”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출애굽으로 빗댔다. 눅 9장의 변화산 사건은 눅 9:31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 하실 것을 말했다고 증거 하는데, 각각 영혼이 “떠남”, “별세”를 엑소더스, 즉 출애굽으로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찢어진 휘장은 하나님께서 찢으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피와 죽으심 임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저자는 “새롭고 산 길”로 이를 지칭한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즉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킨다. 21-22절을 통해 예수의 피를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외친 것이다.



2.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23절)
“믿는 도리”라는 말은 “호몰로기아”라는 말이다. “신앙 고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신앙 고백이 신앙 실력일까? 고백과 실력은 별개다! 실력은 목적지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23절은 “그 고백을 굳게 잡으라” 고 한다. 자기 실력으로는 목적지까지 힘들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고 기록했다. “미쁘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미쁘다(피스토스)”는 “믿음직스럽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믿음직스럽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앙 실력은 밑천이 금새 드러난다. 하지만 미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직스러운 분이시다”. 신실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인생에 대하여 항상 열렬히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이 있다. “후히(하플로스)”라는 말은 단순히,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성실하게, 전심으로”라는 의미가 있다. 전후 문맥은 후하게의 “풍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치 그것밖에는 할 일이 없는 것 처럼”의 의미이다. 단순하다는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단순하게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고 이에 “흔쾌히”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망설임이 없는, 주저함이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 개념과 유사한 개념이 “미쁘다”라는 의미다. 믿음직 스러운 하나님이시기에, 흔쾌히 주시는 하나님이기에 목적지까지 경주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뒤를 이어 사명자의 길을 가는 디모데에게 이런 고백을 하였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 문장은 모두 수동태다. 전부 받은 것이다. 전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가는 길인 듯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은혜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이다. 딤전 1:13 에서는”긍휼을 입은 자”, 딤전 1:15 “미쁘다” 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넉넉함, 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이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이끄셨다고 고백한 것이다.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이다!

바울의 고백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신앙은 진실한 고백이 그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이끄심의 실력으로 나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신다.



3.서로 돌아보아 함께, 더욱 그리하자(24-25절)
유대 그리스도인은 철저히 소수였다. 유대 공동체의 조직적인 배척을 각오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건재하고 여전히 그곳에서 제사가 드려지고 있으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다수 속에서 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했다. 당연히 주변의 압박, 진리를 흔드는 환경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환경,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기에 더더욱 내적 갈등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상황을 제법 잘 견디는 이들도 있었지만, 갈등과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여 깊은 고뇌 속에 빠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이런 부분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라는 표현은 본문에서만 4회나 반복된다. 철저히 진리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소수자에 속한 공동체이기에 이 길을 함께 걷는 지체들과의 연합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러므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이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고 오직 “권하여” 더욱 잘 모이자.” 라고 격려하고 또 격려한다.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인 공동체는 그 진리 안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습을 공동체와 함께 지향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나를 위한 사랑을 단순하게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사랑 때문에 오늘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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