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기는 없나 보다… [삼상 8:1-22]
 – 2022년 05월 19일
– 2022년 05월 19일 –

사무엘의 통치는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를 살게 했다. 하지만 이내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와 같이” 왕을 요구한다. 본문은 이에 대한 갈등이다. 낙심한 사무엘을 하나님이 되려 위로하셨고, 백성들이 “나”를 버렸다고 까지 말씀 하신다. 사무엘은 왕정이 가져올 폐혜들을 말하지만, 백성들은 오로지 “왕”을 원한다.



1.이스라엘은 왜 왕을 요구했을까?(1-7절)
1-3절은 “늙은” 사무엘이 두 아들들(요엘와 아비야)에게 사사직을 세습시켜 브엘세바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으나 악행을 저질렀음을 고발한다. 사사직은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것임에도 아들들에게 세습한 것이 안타깝다. “늙었다”라는 표현에서 엘리가 늙어 두 아들들을 영적으로 방치한 것이 떠오른다. 안타깝다.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통치는 완벽에 가깝게 이루어 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가장 남쪽 브엘세바 지역을 다스렸던 두 아들들은 “…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새번역_3절).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라마의 사무엘에게 찾아가서 “이방 나라들의 왕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4-5절) 요청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보다 보이는 인간의 통치를 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의 늙음과(1절) 요엘과 아비야의 악행은 좋은 구실이 되었다(3절).

*장로들이 왕을 요구한 근거는 “모든 나라와 같이(5절, 새번역_모든 이방 나라들처럼)”이다. 고대세계 당시 찬란한 문명을 이룬 나라들의 정치 체계는 “왕정”이었다. 그 왕정이 이룬 문명을 보고 들은 이스라엘이 왕정을 선망하는 것이 당연했다. 더구나 국가적인 위기 앞에 사사제도는 혼연일체 되어 대응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지파 간의 입장에 따라 사사들의 명령은 종종 무시 되었다. 이에 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왕정체제 국가들의 모습은 늘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합리적으로 보자면 이스라엘의 왕정 요구는 시대적 요청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나라와 같은 왕정”이라는데 있다. 고대 근동의 왕이 곧 신이었음을 생각하면 왕정을 요구한 것은 “돈과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과 같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언약적 정체성의 포기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민족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하나님이 왕이어야 할 교회 정치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세상의 합리적인 방법과 체계가 교회다움을 유지해 주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통치를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이다.

*사사들이 연약하고 부족할 수 있다. 엘리도 그랬고, 사무엘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의 통로가 되었다. 부족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공급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나라들 처럼” 왕정을 요구했다. 왕정이 보여주는 강력함, 효율성, 기민함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백성들의 눈에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세워 직접 통치하시는 방법보다 “인간 왕을 통해 일사분란하고 강력하게” 움직이는 왕정이 너무도 인간적으로 완벽하게 보였다.




2.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6-22절)
사무엘은 마음이 상했다(새번역_6절). 백성들의 요구는 자신의 사사로서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너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7절). 하나님께서도 한탄하신다. “백성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했다(7절)” 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백성이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고 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이 사건의 핵심은 “하나님의 왕 되심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반의 역사를 들추신다(8절). 이스라엘 백성은 늘 배반했다. 마치 사무엘 너는 처음 거절 당한 기분을 느꼈겠지만, 나는 수 백년 동안 배반 당했다”라고 말씀 하시는 듯 하다.

그럼에도 놀랍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 주라는 하신 것이다. 이해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백성이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신 듯 하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가장 절실하고 솔직하게 깨달을 때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체험할 때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될 때까지 인내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억지로 인생들을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인생들은 수많은 착오 들을 거치며 하나님을 알아 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실패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역사는 반복된다… 슬프게도 진리인 듯 하다. 엘리의 시대를 청산 하는가 싶었더니 사무엘도 엘리처럼 아들들에게 약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이 맞다. 슬프다…

-기도로 태어난 사무엘, 기도로 성장한 사무엘, 기도로 백성을 다스리던 사무엘이지만, 자식 교육은 역시나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다. 아…. 괴롭다. 이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나의 아들들을 나는 잘 양육하고 있을까? ….

-왕정으로 닥칠 변화를 경고하여도 생각과 마음이 굳어진 백성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평등사회가 특권사회로, 징병과 징용등으로 백성들의 자유가 심각히 침해 되고, 무거운 세금 징수가 이루어 짐을(10-17절) 경고하여도 괜찮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런 요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행동임을 강조한다. 왕을 세우면 왕으로 인해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18절). 하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왕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고집을 꺽지 않는다.

-왕정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기 소견에 따른 자기 통치이다. 자기 통치를 통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고집에 두 손을 들고 마신다. 마지못해 왕을 세우라고 허락하셨다.

-그러고 보니 엘리나, 사무엘이나, 하나님께서는 자식들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이런… 자기 백성을 단호히 이기려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이해 때문에 백성들이 깨우침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통스런 댓가를 치루더라도 스스로 깨닫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져주심이 자기 백성들의 길을 응원하신다.

*자식에게 져주는 부모도 많지만, 하나님도 자식들에게 져주신다. 그저 자녀들의 선택의 결과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속히 돌이키기는 바라실 것이다. 고집 센 자녀들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는가?

*아….. 하나님의 넓으신 마음이 감동이다…. 한편으로 철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얄밉다. 아쉽고 아쉽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 우리의 교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저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간절히 매달리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우리는 여전히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저 깨닫게 해 주시려고 경험해 보라고 하신다….이런 사랑이라니….



**주님, 늘 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염치 있게 믿도록 속히 깨닫게 해주세요.
**주님, 철없는 백성들에게 늘 배신 당해주시는 한계가 없으신 사랑을 배우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배반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의 배신감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주님, 자녀 양육이 이토록 어렵습니다. 사무엘도 실패하다니요… 우리 아들들 하나님의 돌보심을 더욱 구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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