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바라는 것들의 확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믿음! [히 11:1-12]
 – 2022년 07월 19일
– 2022년 07월 19일 –
“믿음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장이다. 구원의 미래 완성에 참여하기 위해 믿음의 인내를 권면한 저자가 11장 전체에 “믿음으로(피스테이)”라는 표현을 21회 반복하면서 유대인의 조상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주의할 것은 11장은 10장의 내용을 이어서 12장과 연결 시키면서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10:35-39을 통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믿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조상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오늘 이곳에서 역시 “믿음”으로 살아내야 한다. 우리가 본 받고 살아내야 할 조상들의 믿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먼저 믿음은?(믿음이란?_1-3절)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새번역 1-2절)

1-2절은 이후 3절부터 38절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사례들의 원리이다. ‘믿음의 정의’라고 하기엔 수많은 정의들 가운데 일부일 수 밖에 없다. 믿음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에서 특수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바라는 것들의 확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새번역)”이다. 저자는 왜 이 두 가지를 제시 했을까? 일단 3-38절까지 제시되는 “선조들(선진들)”의 경우에 공통적으로 작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실상(확신_휘포스타시스)”와 “증거(확증_엘렝코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휘포스타시스(확신)’의 어원이 가지는 의미는 “아래에 서 있다”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의미가 파생 되었다. “기초, 토대, 실체, 실상, 본질”등이 그것이다. 문맥에 따라 실현, 계획, 착수, 상황, 마음의 상태 등의 의미로도 파생이 되었다. 본문에서는 “바라는 것들”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기초, 혹은 지지대와 같은 단단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이 “믿음”이다. “바라는 것들”이 히브리서 저자의 논리에 따라 “완전한구원”을 가리키고 있다면 이 믿음의 확신은 “부활의 믿음”과 동시에 삶의 영역에서 미래적인 차원을 가리킨다. ‘알렝코스’는 ‘시험하다, 검증하다, 검토한 후 비판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동사 ‘엘렝코’의 명사형이다. “검증, 검토 행위” 또는 검증하고 검토한 행위의 결과물인 “증거, 증명”을 의미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바라는 것들”을 이미 이루어 졌음을 “확신(실상)”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증거”로 보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특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계획, 장래의 소망에 대하여 현실의 증거로 입증, 검증하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3절)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_아벨과 에녹(4-6절)
하나님에게 인정(증거) 받은 믿음의 선진들이 소개된다. 먼저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롭다는 하나님의 증거를 얻었다(창 4:4). 구체적인 믿음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아벨이 드린 예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심으로 그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예물로 인해)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죽음이 그의 끝이 아니었다.

셋의 5대손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창 5:2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인정 받았다(5절). 또 6절의 기록을 통해 보면 에녹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을 찾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주셨다(5절)고 증언한다.

*아벨과 에녹의 공통점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다. 아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일상의 태도와 자세가 신실했고, 이를 제사로 표현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에녹도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긴밀했음을 그가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늘로 데려가신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 증명된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새번역)

아벨은 가인과 비교하여, 에녹은 당시 사람들과 비교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긴밀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던 시대 속에 살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며(찾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실증하고 증명”하며 살아간 선조들이었다. 그러므로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믿음은 아직도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에녹은 죽지않고 하늘에 올라갔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도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낼 때 시공간을 뛰어 넘는 의로운 믿음으로 사람으로 아벨이 기억 되듯이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설 것이다.



3.노아와 아브라함(사라)의 믿음(7-12절)
노아는 원역사 시대의 마지막 예이다. 그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다. 이로 인해 죄된 세상을 정죄하고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노아는 아벨이나 에녹과는 다른 믿음의 모습이 있다. 먼저 그는 세상의 죄와 충돌하며 살았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교만한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견디고 승리하였다. 그리고 노아의 믿음은 미래를 바라본다. 방주를 제작하는 기간은 무려 120년이었다. 그는 그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므로 꿋꿋하게 방주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120년 후에 일어날 홍수 심판을 믿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경건과 믿음으로 인내하는 모습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과(8절), 가나안에 거할 때 장막에 거하는 나그네의 삶을 산 것이다.(9절) 이 두 가지 예는 장래의 유업을 하나님께 약속 받았지만 아직 성취를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새번역_10절)

사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 나이가 지나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수태의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다(11절).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새번역_12절)

*노아의 홍수 심판 경고의 말씀에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하나님을 경외함, 아브라함의 안전과 번영이 보장된 고향땅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길을 “보이지 않는 증거” 삼아 떠난 믿음,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이 설계자와 건축자가 되셔서 지으실 성을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믿는 믿음, 사라의 죽은 몸과 같은 불임의 상태였지만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을 얻은 믿음…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지금 이곳에서 본 받아 이어 가야 할 믿음의 순정들 이다.



나는?
-믿음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말씀에 대하여 상황이냐, 말씀이냐를 판단하여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과정을 허락하셨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믿고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히브리서의 상황으로 적용하자면 예수로 인한 고나과 핍박의 상황을 끝으로 여기고 포기하여 배교할 것인지, 미래의 온전한 구원을 믿음으로 실증하고 증거하며 인내로 견딜지를 선택해야 하는 믿음의 문제이다.

-오늘날 나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을 거절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과 결정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실증하고 증거한 선조들이 분명히 존재하였다.

-오늘 나의 삶이 후손들에게 믿음의 선조들로 전수되느냐, 이름도 남지 못할 믿음 포기자로 사라질 것인가의 기로에서 앞서 믿음으로 살아간 선진들에게 용기를 얻고 “바라는 것들의 확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의 삶으로 살아내야 하겠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인 바라는 것들의 실상(확신)과 내가 신뢰하고 확신하는 것을 증거하는 담대하고 구체적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하는” 삶을 통해 드러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이에 따른 구체적인 삶의 행동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하는 삶이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아내도록 구원받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신 것이다.



*주님, 오늘 나의 삶을 “바라는 것들의 확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이는 믿음의 삶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경외함, 순종의 걸음이었음을 또 깨닫습니다. 저의 걷는 걸음도 이런 믿음의 걸음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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