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늘 가치 바라보며 이성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전수하는 믿음 [히 11:13-22]
 – 2022년 07월 20일
– 2022년 07월 20일 –
믿음과 인내의 예로 구약의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이어간다. 본문은 창세기의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다룬다.이들은 하늘 본향을 기대하며(13-16절) 각각의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냈다(17-22절). 전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족장들의 믿음의 삶의 중심에는 “약속(9, 11, 13, 17절)”이 있었다. 약속을 기억하고 바라보며, 약속을 따라 살아가다, 약속을 전수하는 믿음으로 살았다.


1.아브라함_본향을 바라보는 믿음(13-16절)
믿음은 결국 소망의 다른 이름이다. 떠나온 본향이 아니라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신앙의 본질이다. 저자는 이 땅에서의 삶은 외국인과 난민,과 같다. 이것이 신자의 정체성이다. 즉, 이 땅의 가치를 추구하며 성공과 부함을 추구하는데 천착 한다면 이는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다. 나의 안정과 성공에 시선을 두고 집착한다면 늘 번민과 불안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구원 받은 성도는 돌아갈 “하늘 본향”을 갈망한다. 그 갈망은 이 땅의 삶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규정하게 만든다. 하늘 본향을 사모할 수록 이 땅의 삶은 더욱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충실하고 가치있게 최선을 다한다.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삶이란 약속한 땅을 끝내 소유하지 못했지만, 저 멀리 더 나은 “하늘 본향”의 약속을 실상으로 바라보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떠나온 고향 우르에 대한 향수병을 앓았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나그네일 지언정 하나님 앞에서는 하늘 본향의 백성으로 살아낸 당당한 여정이었다.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 땅의 것들로 한정하는 삶이 아니다. 돌아갈 본향이 있기에 이 땅에서의 기득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본향의 기득권을 지키는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곧, 사랑, 섬김, 희생, 나눔의 성경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순종으로 땅의 것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하늘 본향을 소망하는 삶을 증명한다.



2.아브라함_확신과 순종이 함께 하는 믿음(17-19절)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이것은 ‘이삭을 통해 수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에 대한 확신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지만 이보다 더한 조건에서도 아들을 주실 것에(지키실 것에?) 대한 믿음이다.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립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 ‘믿음’으로 하나뿐인 독자 이삭에게 칼을 들었다. 이런 아브라함에 대하여 저자의 통찰은 놀랍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새번역_19절)

독자 이삭의 몸에 칼을 대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삭을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실로 놀라운 믿음이다. 어떻게 이런 수준의 고백과 실행을 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이삭의 부활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삭을 얻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이 부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내 사라는 태가 닫혔고, 자신의 몸은 쇠약해져 가기만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죽은 것 같은 그의 몸이 살아났고, 아내 사라는 닫혔던 태에 잉태되었다.



3.이삭과 야곱, 요셉_자녀들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는(축복 하는) 믿음(20-22절)
이삭과 야곱은 자신들의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아쉬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계승의 시간임을 알았다. 자신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 계속 이어지는 시작임을 믿었다. 그래서 이삭과 야곱은 그 약속을 계승할 후손들을 믿음으로 축복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전수하였다. 특히 야곱과 요셉의 축복은 자신들의 죽음 이후 400여년 뒤에 이루어질 출애굽을 바라보는 믿음 가운데 가나안 땅에서의 번성의 축복과 출애굽 할 때 자신의 뼈를 가지고 나아갈 것을 전하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자녀들을 향한 축복이었다. 믿음의 힘은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꿈을 꾸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자녀들의 미래를 자신들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축복을 할 수 있을까? 이삭과 야곱과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전수하는 축복을 하고 싶다. 하나님의 약속은 나의 죽음으로 결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더 선명하고 찬란한 꿈을 기대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임을 믿는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은 단지 희망 사항이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때 그 축복이 하나님의 약속이 됨을 믿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나의 희망사항을 말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선언하며 축복할 때 그것은 후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될 줄로 믿는다.




나는?
-족장들의 삶은 “약속”을 바라보고, 전수하는 삶이었다. 족장들과 관련하여 “약속”이라는 단어는 9절, 11절, 13절, 17절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들의 삶이 자기 마음대로 산 듯이 보이지만 “약속”을 따라 살아간 삶이었다는 의미다.

-“약속”을 따라 사는 삶이란 이 땅의 가치에 함몰되어 땅만 바라보는 삶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삶이다. 이는 죽어서 가는 천국의 의미도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하늘의 가치로 살아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가치로 살아내는 멋진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싶다.

-이기적인 땅의 가치를 쫓아가는 세태 속에서 이타적인 예수님의 마음처럼 하늘의 가치를 구현하는 힘이 바로 믿음이다.

-한계를 뛰어 넘는 믿음이 가능할까? 이성적인 이해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믿음이 과연 있을까? 성경은 아브라함을 그 예로 소개한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통과하지 못할 시험을 통과했다. 백 세에 얻은 아들, 그 이삭을 이제 믿음으로 제단 위에 바치려 한다.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한 무한의 신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이 이삭을 낳을 때 경험 하였던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몸이 다시 소생 되어 자식을 얻게 된 그 부활을 경험한 믿음에 의지했다. 생명으로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결코 칼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그것만큼 값진 것은 없다. 하지만 믿음은 그 값진 것을 포기했다.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 부활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순종하며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믿음으로 내려 놓았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도무지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라도 순종하는 것, 수용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는 삶이란 어떤 삶 일까?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세상의 아버지들과 달랐다. 자신의 죽음 앞에 세상의 아버지들이 하던 축복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아들들에게 축복하였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믿음으로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20절)”,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지팡이 머리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며 축복하였다(21절). 요셉은 가족이 민족이 되어 출애굽할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뼈도 함께 출애굽 해달라고 유언했다(22절).

-죽임이 결말이고 절망이 아니라 “이어지는 약속의 성취”임을 믿은 것이다. 나의 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나의 후손이 누린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신실하게 이루어진다.

-축복은 하나님께 주권이 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손수 만드시도록 순종하는 것이 아버지가 후손들에게 빌어주는 축복의 의미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축복하며 전수하는 것은 후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나라 만들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준 축복을 철회하지 않았다(창 27:27-29). 야곱도 자기 지혜와 편애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아들들과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축복한 것이다 (창 48:11-22). 요셉도 자신이 출세하고 성공한 애굽 땅에서 명예로운 무덤으로 남는 것보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족들과 함께 자기 뼈를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이다(창 50:24-26).

-내가 원하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의 뜻과 계획을 축복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 후손들을 위한 축복이다.



*주님, 믿음이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임을, 하나님의 약속이 대를 이어가며 성취하도록 순종하며 비는 것임을 배웠읍니다. 나의 자녀들에게 이런 축복을 하는 믿음의 아비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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