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치열한 순종의 걸음을 선택하는 믿음 [히 11:23-31]
 – 2022년 07월 21일
– 2022년 07월 21일 –
믿음과 인내와 소망의 삶에 대한 구약 인물들에 대한 예가 계속된다. 본문은 출애굽과 가나안 전쟁을 배경으로 모세와 출애굽 백성들(23-29절), 이스라엘 백성과 라합(30-31절)의 경우를 예로 든다. 모세를 통한 출애굽은 창 15:13-16에서 하나님꼐서 아브라함과 언약 맺는 과정에서 약속하신 것 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400여년을 줄 것이고 그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은 애굽에서 살 것인데, 가나안 족속이 회개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애굽에서 구원하여 그들을 통해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출애굽은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하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출애굽 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



1.모세의 부모_통찰, 인내, 용기의 믿음(23절)
모세의 부모(아므람과 요게벳)는 노예의 신분으로 애굽의 바로(신)의 명을 거역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모세는 부모의 믿음으로 인해 살 수 있었다. 모세의 부모의 믿음은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다. 먼저 아므람과 요게벳은 모세의 “아름다움(아스테이오스)”을 보았다. 이 아름다움은 외모를 표현한 것이기 보다 장차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당당함과 강인한 성품 같은 것을 믿음으로 보았다는 의미다. 성경의 기록에는 없지만, 이와 관련하여 유대 랍비 전통에 따르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꿈에 동생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가 될 것을 보았고 이를 부모에게 전해 주었다는 전승이 있다.

이런 배경 하에 두 번째로 아므람과 요게벳은 석 달 동안 왕의 명령을 거부하며 숨기며 키우는 담대한 인내의 형태로 믿음이 나타난다. 하루 하루가 두려웠을 테지만 그것을 견디며 석 달을 키운 것이 곧 그들의 믿음의 표현이었다. 세 번째는 그들은 아기 모세를 살리기 위해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 하늘의 하나님을 땅의 권력자보다 더 두려워 하였다. 그 믿음에서 바로의 명령에 용기 있게 맞섰다.

*통찰, 인내, 용기의 믿음…. 녹록치 않았을 아므람과 요게벳의 그 때 그 시간이 도전이 된다. 지금은 세상의 논리와 문화, 대세에 휩쓸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숨결을 통찰 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 내려고 인내하며, 세상의 소리와 억압 속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용기를 내어야 할 때다!



2.모세_거절하는 믿음, 선택하는 믿음, 두려워 하는 믿음(24-28절)
믿음은 알면서도 고난을 선택하는 의지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자신의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의 성장 배경과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거절한다. 그저 무작정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음과 그리스도(메시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기꺼이 자청하며 거절한 것이다. 애굽의 가치와 다르지만 더 가치 있는 “함께 고난 받음”을 위해, 더 옳은 길을 위해, 바로보다 더 위대한 메시아를 따르기 위해 포기했다.

애굽의 가치에 대하여는 포기를, 하나님 나라 가치를 위해서는 선택하는 믿음이 모세의 믿음이었다. 그렇게 모세가 포기하고 선택한 길은 애굽의 역사의 무대에서 잊혀져서 광야의 평범한 양치기로 살아가게 하였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소사한 일상을 살아가게 하였다. 하지만 또 이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애굽의 왕 바로와 맞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바로의 분노가 불 보듯 뻔한 요청을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자리에 기꺼이 서야 했다. 바로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할 선택이었다.

만약 모세가 바로의 분노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려서 출애굽의 사명을 포기했다면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이런 긴장감 넘치는 현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은(27절)” 모습으로 바로의 분노를 견뎌냈다. 그리고 마침내 유월절과 피 뿌리는 의식을 정하여 실행하였다. 처음 난 것들이 죽던 밤에 이스라엘 자손들만 피 뿌림을 통해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안정된 공주의 아들의 신분을 포기하고 초라하고 비천하지만 하나님 백성의 신분을 선택하는 믿음, 눈에 보이는 제국의 최고 통치자 바로의 분노보다 보이지 않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요청을 거듭 고수하는 모세의 믿음… 그 믿음이 출애굽의 영광으로 이끌었다.



3.이스라엘 백성, 여리고의 라합_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순종하는 믿음(29-31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결국 가나안 땅에 도착한다. 비록 처음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해서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믿음의 삶은 때로 어리석게 짝이 없이 보이기도 한다. 홍해 한 가운데를 향해 행진하는 것은 믿음 때문이다.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를 7일 동안 열 세바퀴를 도는 것도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졌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으며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다윗의 왕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홍해 도하와 여리고성 전투는 오직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그의 선하심에 대한 철저한 신뢰만이 살 길이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순종하며 꿋꿋이 나아가는 걸음을 통해 믿음의 열매를 맛보았다. 아벨이나 에녹의 믿음처럼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분을 찾는 이에게 상 주시는 이 이심을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았다. 말씀하신 그대로 육 일간 하루에 한 바퀴씩, 칠 일째 일곱 바퀴를 행진하라는 명령을 그대로 순종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명령을 따랐다.

라합은 노아처럼 “지금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그것을 믿었기에 지금 보이는 일들 앞에서 지극히 위험한 순종을 기꺼이 행하였다. 여리고 성의 불순종한 자들이 멸망을 당했지만, 라합은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았다. 기생이라는 과거의 신분과 출신이 믿음의 역사를 가로막지 못했다. 수 2:9-13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여리고성 백성뿐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반응한 사람은 기생 라합 뿐이었다. 당시 세계관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반응이고 선택이었지만, 결국 그 믿음의 선택이 멸망과 구원을 갈라 놓았다.

*믿음은 과거의 상태나 신분으로 그 효력이 결정 되지 않는다. 지금 순종의 상태가 구원이라는 결과를 누리게 한다. 구원에 있어서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는?
-통찰하고 인내하며 용기를 내는 믿음, 포기와 선택의 믿음, 순종 하는 믿음… 출애굽 시대 선조들에게서 증명된 믿음이었다. 극도로 억압 되었던 시기에 애굽에서 가장 높은 인간 왕의 명령도 두려워 하지 않고 거역할 줄 알았던 아므람과 요게벳의 용기는 약속의 하나님을 통찰하는 것에서 나왔다. 모세의 애굽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하나님 백성과 고난을 함께 선택하는 믿음, 출애굽을 이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걸음 걸음을 치열하게 순종하는 믿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출애굽 시대의 믿음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신분이나 능력보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걸음이 얼마나 실제적이어야 하는지를 도전한다. 믿음을 증명하는 실제적인 행동은 “선택”하는 것이다. 모세의 부모,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믿음에서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바로의 명령을 거절하는 선택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아기 모세의 지도자됨을 보게 하신 것을 선택한 행동이었다. 모세가 애굽의 보장된 부귀영화와 명예를 거절한 것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선택한 행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가라진 바닷길에 들어선 용기는 유월절의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경험한 선택의 행동이었다. 여리고성을 군말없이 행진한 것도 요단강에서 순종의 걸음이 열어준 거센 요단강 길을 건네게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선택이었다. 기생 라합도 마찬가지다. 그녀 뿐 아니라 모든 여리고성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었다. 출애굽과 광야의 하나님을 익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을 선택한 용기는 라합 뿐이었다.

-오늘 나에게도 “선택”해야 하는 믿음의 순간을 직면할 때가 있다. 선택하는 순간 치열한 순종을 인내로서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단지 감정의 상태를 표현하는 행동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감정을 유지하는 인내를 통해 실제 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누리기까지 견디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세상 중에서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출애굽과 가나안 전쟁 시대의 믿음의 선조들은 늘 하나님을 선택하여 치열하게 순종 하였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였다.



*주님, 아므람과 요게벳,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 여리고의 라합… 믿음의 선택과 치열한 순종을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저도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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