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세상, 도시 vs 광야, 산과 동굴, 토굴 [히 11:32-40]
 – 2022년 07월 22일
– 2022년 07월 22일 –
사사기대와 통일왕국 시대의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다룬다. 그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그들이 살아낸 삶의 특징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함(세상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음_38절)”이라고 선언한다. 원 역사 시대와 족장, 출애굽, 가나안 정복 시대를 살아낸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에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반문하며 사사들과 선지자들의 믿음을 어어서 소개한다. 기드온,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도 말한다(32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다양한 믿음의 삶의 흔적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흔적들이 증거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믿음의 증거들은 무수히 삶 속에 새겨졌지만, “약속한 것”은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들에세 약속은 늘 진행중이었다. 혹시나 지금일까 했지만 역시나 죽음의 순간을 맞았다. 그럼에도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약속을 영적인 눈으로 “멀리서(까마득한 곳에서)”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다 죽었다. 이런 사람들을 셀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은 어떤 믿음의 길을 걸어갔을까?



1.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믿음으로 살았기에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모습들을 나열한다. 33-34절은 승리의 모습들을, 35절은 고난을 피하지 않는 모습을, 36-37절은 말씀을 전했던 옛 선지자들이 받았던 것을, 38절은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그들이 거할 수 있었던 곳은 “광야, 산과 동굴, 토굴” 뿐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고자 했을 때 승리도 맛보지만, 고난에 직면해야 할 경우가 훨씬 많다. 더구나 저자가 예를 든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삶이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곧게 전했을 때 그들 조차도 조롱, 채찍, 결박, 투옥, 돌로 치고 톱으로 켜며, 칼로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니 그들에게서 나와 광야와 산과 동굴, 토굴 등에서 사는 것을 자원했다.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려 하니 세상이 이런 사람들을 받아 들일수가 없어 광야가 그들을 맞았다(38절). 결국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 처럼 편안한 고향을 버리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광야로 나온 것이다. 세상속에 살지만 나그네와 같이 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이렇다!. 승리도, 좌절도, 조롱도, 고난도 결국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주는 안정된 곳에서 누릴 수 없다. 세상은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곳이다. 늘 간섭하여 내쫓는다. “우리는 너희들이 살아가는 믿음으로 함께 살 수 없어! 그러니 적은 너희가 이곳을 떠나!” 세상이 주인 노릇하는 곳에서 믿음이 주인노릇 하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이 주인노릇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세상의 가치와 문명,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 바로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이었다. 초대교회의 카타콤, 지하교회 등이 이런 곳이다. 이곳에서는 믿음이 주인노릇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광야로 함께 나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인 되실 수 밖에 없다.



2.지금 우리는?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새번역_38절)

광야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확실한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한 삶이 그들의 삶이었다(39절). 믿음의 수고가 역사가 되어 증거로 남겨졌지만, 약속한 것을 아직 받지 못한 그들의 뒤를 이은 우리는 약속하신 것을 이미 받았다(40절).

예수님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약속을 이미 받은 우리의 삶은 어때야 할까? 그 이야기가 12장으로 이어진다. 11장은 약속을 받지 못했어도 믿음의 삶을 꿋꿋히 살다간 이들을 기념한다. 아벨, 에녹, 노아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무시하던 시대에 철저히 하나님의 계심을 믿었다. 하나님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의 후손으로 떠나가던 그 시절, 꿋꿋히 하나님의 후손의 자리를 지켰다.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큰 그림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이후의 오고 오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이 그림을 받아들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지키며 갖은 고난의 길을 기꺼이 걸었다. 그들은 단지 “바라만 보며 믿음을 지켰다”. 그런데 우리는 그 큰 그림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 약속이 실현되어 완전한 구원을 누리며 산다.

하지만 본문은 분명하게 밝힌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 조차도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을 냉대하고 쫓아내었다. 무늬는 하나님의 나라였지만 사람의 나라인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살아내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38절).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의 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기꺼이 광야로 나아갔다. 실제로 사람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가치대로 살기 위한 최적의 현장을 찾아 산으로 동굴로 토굴로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약속의 실현을 기다리기 위해서 믿음의 삶을 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다르다. 완전한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져 완전한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사람의 나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믿음의 삶을 살아내신 예수님께서 앞서 본을 보이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니 담대히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행 1:8).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멀리서 바라보는 세대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시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은 “세상”이다. 주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세상으로 가서”, 믿음의 선조들이 걸었던 것 처럼 “믿음으로” 살아내야 한다.

오늘도 세상 속에서 광야에서처럼, 산과 동굴과 토굴에 사는 것처럼 믿음대로 살아가야 하리라. 세상과 섞이지 않기 위해 기꺼이 구분하고 지키며 살아가리라. 이것이 “믿음”이다.


나는?
-오늘 말씀에서 광야, 산, 동굴, 토굴이 눈에 들어온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진들이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다. 세상이 주는 문명의 가치를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 가치대로 살기 위해 스스로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한 그들의 결심이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편안함보다 광야의 불편함이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게 한다면 기꺼이!

-“광야의 불편함”은 단지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와 태도다. 지금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더라도 그곳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 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믿음의 삶을 고수하기 위한 행동”이 광야의 불편함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불편할 것이다. 사람의 불편함을 의식하여 “믿음의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

-“믿음의 가치”가 변질되고 오해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바램이 실현되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무늬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믿는 삶의 방식은 상당히 불편함을 줄 것이다. 내가 주인 되는 살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해야 하는 삶이기에 그렇다. 이것이 “광야”이다. 광야에서는 한 순간도 인간의 방식으로 살면 안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산다.




*주님, 세상이 감당치 못하기에 광야와 산과 동굴, 토굴에 기꺼이 기거하며 믿음으로 살아낸 선조들의 믿음이 도전이 됩니다. 도시에 주님이 안계시면 광야에 이르기까지 주님 찾아 나서겠습니다. 도시에서 광야에서와 같이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지금 이곳에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주님, 세상에 살고 있지만, 광야에서 주님만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삶처럼 살겠습니다. 나의 소망이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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