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끝까지 달려야지… [히 12:1-13]
 – 2022년 07월 23일
– 2022년 07월 23일 –
믿음과 인내로 살아낸 선조들의 예를 마치고 구체적인 권면으로 들어간다. 12장은 11장의 논리적 결론으로 “끝까지 지키며(3:6) 인내하는 것을 강조한다(10:36). 본문에서는 인내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이나 심리학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범을 제시한다. 또한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성도의 고난 이면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상기 시키고 피곤하고 약해진 믿음을 고치고 펴서 경주를 계속 하라고 권면한다.

11장에서 묘사했던 인물들을 “증인들의 구름(직역)”이라고 부른다. 이 구름은 하늘의 구름과 달리 세월의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았다. 증인들은 지금도 우리를 둘러싸고 지켜보면서 증언한다. 이들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을 다했고 인정을 받았다. 이 증인들처럼 살 수 있고 살아야 한다는 도전을 던진다. 이 도전을 “인내로 달려야 할 경주”로 표현한다. 인내하며 달려야 할 믿음의 경주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예수님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달려라(1-3절)
믿음의 경주는 구약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고 달렸지만,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예수는 믿음의 창시자(주)요, 완성자이시기 때문이다(2절). 무엇보다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달려 가야 한다. 그는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고 십자가를 참으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에 오른쪽에 앉으셨다.”

믿음의 경주는 완주가 목적이 된다. 이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단순하다. 단순해야 할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믿음의 경주를 자기 방법과 생각을 주렁 주렁 매달고 달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삶은 없다. 생각과 집착, 연민, 불신의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믿음과 인내” 단순하게 달려가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달려가셨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의 죄인들의 거역함을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지금 고난을 견뎌야 한다. 예수님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달리는 것은 믿음의 경주 동안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예수님이 나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참으시되 끝까지 참으셨던 것을 “생각하는 것” 이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다. 믿음은 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삶을 함께 살아내며 달리는 인내이다.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호흡법부터 달라야 한다.

믿음이라는 마라톤의 호흡법은 예수님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민하고 감정적이며 성급한 행동 이기보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시되 끝까지 참으신 것을 생각하며 이를 흉내내는 “인내”의 호흡이다.

“인내의 호흡”외에는 이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먼저 믿음의 마라톤 경주를 완주해 낸 믿음의 선배들이 증명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허다하게 둘러싸인” 그들의 응원을 들으며 믿음의 경주장에 들어선 내가 실감나는가?



2.인내의 이유(4-11절)
믿음의 경주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가장 치열하게 분투해야 할 것은 “죄”이다. 이 싸움은 “얽매이기 쉬운 것(1절)”과 같은 죄이기 보다는 예수님을 대적했던 그들이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공격해 오는 “죄”이다. 그들의 위협과 유혹에 얽매이는 것과 힘써 싸우라는 것이다. “죽기까지 견디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교회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는 적대자들에게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굴복해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도록, 결승선까지 완주하도록 도전하는 하나님의 훈련이다. 적대적인 이들로 인해, 적대적인 환경들로 인해 원망이나 낙심하지 말고, 혹은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그저 지나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인내함으로 믿음을 단련하여 “온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치열한 싸움의 기회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단련 시킨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이런 기회들을 활용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죄와의 싸움을 끊임없이 요청하신다.

“육신의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징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새번역_10-11절)

인내의 경주를 해야 할 이유… 거룩하심에 참여하기 위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토록 선하시다. 징계가 필요하여 내리시더라도 징계가 결론이 아니라 변화와 성숙의 길로 걷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징계로 인해 참담한 좌절로 결론지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변화와 성숙함이 자양분이 되어 온전한 열매로 맺어지게 됨을 바라보게 하신다.

믿음의 경주 절대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3. 끝까지 달려라(12-13절)
“그러므로”, 즉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결론이다. 유대인들로 부터 받는 곤란함과 핍박 때문에 “나른해진 손과 힘 빠진 무릎에 힘을 불어 넣어야” 한다(12절). 일어서서 곧게 똑바로 걸어야 한다. 절름거리는 다리가 삐지 않도록, 오히려 낫게 하도록 힘을 써야 한다(13절).

잠시 삐끗하여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포기하여 외면하지 말고 함께 이 경주를 격려하며 나가자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 믿음의 경주로 인해 힘들어하고 지친 이들에게 정죄와 판단보다 격려와 소망을 불어 넣어 결국 구원의 완성 되시는 주님을 향한 경주를 함께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힘들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달려야 할 경주임을 강조한다. 나의 나른해진 손, 힘 빠진 무릎에 힘을 공급하여 일으켜 세우고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라고 촉구한다. 고난을 당하는 이들의 상한 심령이 들으면 경우에 따라 더 큰 시험이 되는 말일 수 있지만, 그만큼 믿음의 경주에서 “완주”가 최선의 가치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부의 도전과 핍박이 마음과 몸을 지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털썩 주저앉지 말라는 것이다. 굳은 의지로 힘을 내어 달려라고 격려한다.



나는?
-믿음은 경주다. 이 경주의 특징은 누구나 완주 하면 승리자이다. 완주하는 비결은 믿음의 인내이다. 인내하며 늘 시도하는 순종을 했을 때 온전한 구원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숨이 끝까지 차 올라 더 이상 호흡하기 힘들 때가 있다. 누구나 그 절정의 숨막힘을 경험하는 것이 달리기다. 하지만 긴 호흡 내쉬며 몸을 정비하고 달려 나가면 오히려 몸이 더 편안해 진다. 달리기 호흡에 비로소 몸이 맞춰 지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익숙한 호흡을 하다가 믿음의 호흡을 하려면, 이런 위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안에서부터 일어날 수도 있고 외부로부터 몰려 올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지 그 막힘의 순간에 힘들다 하여 경주 자체를 포기하면 안 된다. 오히려 호흡법을 바꾸어 긴 호흡 내쉬며 몸이 적응할 때 까지 인내하며 달려야 한다. 그래야 완주 할 수 있다.

-억지로 내쉬는 나의 호흡은 믿음의 경주에서 고통만 가중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급하고 빠른 호흡보다 천천히 긴 호흡을 내쉬며 선하신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 위기는 충분히 넘긴다.

-신앙생활에서 마음이 바빠지고 성급해지려는 순간이 긴 호흡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순간이며 인내로 참아야 할 시간이다. 바로 지금이 그런 시간이다.

-믿음의 경주… 끝까지 달려야지…



*주님, 주님의 경주가 곧 믿음과 인내로 달려가야 할 경주임을 깨닫습니다. 긴 호흡 천천히 내쉬며 인내의 경주, 신뢰의 경주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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