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삼상 13:1-23]
 – 2022년 05월 27일
– 2022년 05월 27일 –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면서 맡긴 책임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하는 것이었다(9:16). 사울은 상비군 3천명만 남긴 채 남은 백성들을 돌려 보냈다(1-2절). 요나단이 게바에 주둔 중인 블레셋 군대를 침으로서 블레셋을 도발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라 블레셋과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3-4절).

그런데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 블레셋 군대가 병거가 3만(어떤 번역본은 3천), 마병이 6천명이 넘는 대군이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이들은 굴과 수풀, 바위 틈, 은밀한 곳, 웅덩이 등에 숨어 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까지 도망을 쳤다. 사울과 남아 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길갈에 있었지만 두려움에 떨었다(6-7절).

그런 상태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 기다렸으나 그가 나타나지 않고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8절). 다급한 나머지 번제와 화목제를 직접 집례 하는데 번제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도착했다.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사울은 핑계를 댄다(8-12절).

사무엘은 사울에게 망령되이 행하여 하나님께서 왕에게 내린 명령을 지키지 않았음으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의 지도자로 삼을 것임을 선언하고 길갈에서 떠나 기브아로 올라갔다(13-15절). 충격적인 선언을 듣고서도 사울은 남은 군사 6백명을 데리고 베냐민 지파의 게바로 진격했다. 블레셋 군대는 3개의 습격대로 나누어서 동시에 진격한다(15절 하-18절).

기막힌 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 땅에 철공을 두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여 백성들이 가진 무기라고는 사울과 요나단만이 칼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백성들은 칼이나 창이 하나도 없었다(19-22절).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니….



나는?
-객관적인 상황에서 말도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암몬과의 첫 번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울이지만, 블레셋은 차원이 다른 적이었다.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 주둔 중이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여 전쟁이 시작되지만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도무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상비군을 3천명 가량 준비시켜 놓고 있었지만, 침략해 오는 블레셋 군대의 규모를 보고 두려움에 질려 숨거나, 요단강을 건너 도망하 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마음이 급해진 사울은 그만 사무엘이 기다리고 했던 7일이 지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자, 번제와 화목제를 직접 드려 버린다. 하지만 번제가 끝날때 사무엘이 도착하고 사울은 크게 당황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울은 하나님보다 블레셋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 백성들의 동요와 흩어짐을 더 심각하게 여겼다.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왕으로서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울의 핑계가 더 가관이다. “…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여 있음을 내가 보았음으로 그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 올 것이 분명하여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11-12절).”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기 보다 자신이 보고 느끼기에 더 이상 지체하면 남은 백성들도 흩어 질것 같은 조급함이 든 것이다. 그 조급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종교의식에 더 마음을 두어 제사를 드려 버렸다. 출정하기 전 번제와 화목제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보다 우선한다고 여긴 것이다.

*아들 요나단의 용맹함으로 시작된 블레셋과의 전쟁은 본격적인 접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과 다를 바 없이 “군사의 수”를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그들이 탈영 하며 흔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대한 신뢰로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보다, 종교적인 행사로라도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 놓고 싶었을 것이다. 사울에게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 경외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도자는 위기의 때에 따르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두려움은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숨고, 도망칠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나마 남아 있는 “사울을 따른 모든 백성이 떨었을 때(7절)” 어떤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정한 기한”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의미에서 더 빠르게 응답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정한 기한이 차고 지나도록 응답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가 진정한 믿음의 시험의 때이다. 사울은 이 때 믿음의 시험에서 실패한다. 문제는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신실하게 신뢰해야 한다. 그런데 사울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사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쉽게 그를 정죄하지 못하겠다. 최소한 그는 선지자 사무엘이 말한 기한을 채워서 지켰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의 힘을 의지하려는 길에는 “인간이 정한 기한보다 하나님께서 반응하시는 응답이 더 중요하다.”

*더딜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받는 것이 더 확실하게 순종하며 나아가는 길이다. 마음이 쯫기게 되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결정을 쫓기듯 해서는 곤란하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확연해 지는 것에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지 않는가!

*위기가 연이어 찾아올 때(블레셋의 침략, 사무엘의 더디 옴, 백성들은 두려워서 숨거나 도망침) 인간적으로 신속한 결정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믿음이다.


-또한, 블레셋은 병거가 삼만(어떤 번역본은 삼천), 마병수가 6천, 보병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기록한다(5절). 반면 사울의 군대는 겨우 6백명만이 남았다(15절). 도무지 상대가 될 수 없는 대진이었다.

-무기도 직접 비교가 된다. 블레셋은 당시 철기 제작법을 알고 있었다. 이 정보는 너무도 중요해서 이스라엘에게 전달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스라엘 땅에는 제련소 자체가 없었다.


*상황도, 여건도 모두 불리한 싸움을 만났을 때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싸우면 필패지만, 나와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필승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행동으로 이 신앙을 고백했어야 했다. 왕이 먼저 하나님을 굳건하게 신뢰하는 모습을 보일 때 흔들림은 금새 진정 된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위기에 몰릴수록 성급함은 금물이다. 기한이 넘더라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산다! 성급함은 망령되이 행하게 한다.

*위기에 몰릴수록 성급하게 하는 현상에 함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구해야 한다. 사무엘이 와서 들려줄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나도 위기에 몰릴수록 성급한 판단보다 한번 더 구하고 조금 더 기다리는 목양이 되어야지….


**주님, 사울의 성급함이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의 급한 성격이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인내와 절제를 주십시오.
**주님, 상황과 여건이 악화될 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빛나게 드러날 것을 믿는 담대함을 사모합니다. 주실 거지요?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