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백성 답게 어떻게 살아갈까? [레 18:1-18]
 – 2022년 08월 01일
– 2022년 08월 01일 –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던지는 질문이지만, 그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일가 가족에서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 가운데 애굽을 탈출하였다. 그리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에서의 삶의 원리들을 매우 진중하게 전해 듣고 있다. 이는 어설프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었다.



1.먼저 하나님(1-2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면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을 요청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새번역_2절).”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라고 단호하게 선언하신다. 이것은 그의 명령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도전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이 정체성이 굳게 서야 하나님 백성으로 삶과 방향과 결과들이 뒤따른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굳게 신뢰하는 것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이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틀어 앉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방향과 결정들이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먼저인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흔하다.

*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고하게 인정하고 삶의 행동에서 이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식이 삶이 되지 못한다. 오늘날 신앙의 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 되심 보다 나의 결정권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삶이 더 많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말씀”이 삶에 구현되지 못한다.



2.애굽과 가나안의 삶의 방식과 다르게(3절)
“너희는 너희가 살던 이집트 땅의 풍속도 따르지 말고, 이제 내가 이끌고 갈 땅, 가나안의 풍속도 따르지 말아라. 너희는 그들의 규례를 따라 살지 말아라(새번역_3절).”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면 이에 따른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달라져야 할 삶의 방식을 언급하셨다. “이집트(애굽) 땅의 풍속과 가나안의 풍속, 그들의 규례”을 “따르지 말고… 따르지 말아라, 따라 살지 말아라”고 하셨다.

“풍속(마아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행위, 행동, 일, 노동” 등을 의미한다. 애굽에서 종으로서의 삶의 행위, 행동, 일, 노동 등을 그대로 답습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가나안에서는 반대로 자유민(주권자)으로 살게 될 텐데 종과 달리 자유민은 “선택과 결정”의 자유가 있기에 가나안 땅의 삶의 양식을 보고 이를 따르는 선택과 결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방식은 이전 애굽에서의 종으로서의 삶의 방식이나, 자유민이 되어 선택과 결정의 주체자가 된 후 가나안 땅의 행위나 방식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사실 애굽에서의 420년의 삶은 아무리 고센 땅에 제한된 삶의 거주지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자신들을 종으로 부리는 애굽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풍습에 자연스럽게 동화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삶의 방식과 풍습 중에 가장 경계하며 떨쳐 내야 할 것이 “애굽의 신들”을 섬기는 풍습(행위)이다.

*가나안의 풍습을 따르지 않는 것은 더 의지가 확실해야 한다. 자유를 얻은 백성들은 자신의 결정에 따라 가나안 주민들의 삶을 보고 따를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애굽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자칫 자기 결정에 따라 스스로 가나안의 풍습을 얼마든지 따를 수 있다.



3.그렇다면 어떻게?(4-5절)
“그리고 너희는 내가 명한 법도를 따르고, 내가 세운 규례를 따라 살아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세운 규례와 내가 명한 법도를 지켜라. 어떤 사람이든 이것을 지키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이 살 수 있다. 나는 주다(새번역_4-5절).”

애굽에서는 종으로 주인의 의지에 의해 무조건 따라야 했다. 가나안에서는 자기 결정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 애굽의 죄악된 삶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 그러니 옛 죄악의 행위과 습관을 의지적으로 배척하며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가나안에서도 그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을 주어 살게 하신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도리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새번역_출 19:5-6).”

이와 같은 사명을 받은 백성이기에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애굽과 같아서는 안 된다. 분명한 기준이 있다. “내가 명한 법도, 내가 세운 규례”를 따라 사는 것, 지키는 것이다. 어떤 이든 이것을 지키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른 백성은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다시 강조하시면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새번역_마 4:4)”고 신명기 8:3의 말씀을 갱신 하시며 하셨다.

*출애굽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 그래야 산다!



4.먼저 해서는 안 될 일은?(6-18절)
애굽이나 가나안의 풍습(행위)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근친상간’고 ㅏ같은 폭력과 성적 문란이다. 본문은 매우 상세하게 근친상간과 관련한 친족들을 언급한다. 왜 그랬을까?

이토록 세밀한 언급을 통해 이 죄악이 일상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만연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함이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별하고 지키야 함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언급된 자세한 성적 문란함의 내용들은 애굽과 가나안에서 이미 많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출애굽을 했더라도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별 차이없이 이런 문화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를 분별하지 않고 쉽게 동의하고 빠지게 되면 거룩해야할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은 금새 허물어 진다.

또, 따르지 말라한 애굽과 가나안의 풍습의 중심에 문란한 성 문화가 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중요한 지표가 “성적인 죄에 대해 무감각”한 것임을 가리킨다. 죄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은 문란한 성적인 죄에 무감각하다는 것이고 이는 모든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시작과 같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 하다. 오히려 근친상간의 영역에 국한 되지 않고 “누구나 쉽게 문란한 성적 문화”에 노출이 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애굽이나 가나안에서는 우상을 따르는 제의 의식으로서 행하여 지던 것이라면, 이제는 종교와 상관없이 자기 결정에 의해 문란함을 즐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문란한 성적인 생활에 무감각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성적인 문란함을 ‘매력’으로 포장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삶의 결과는 결국 가정의 파괴다. 근친상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건강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쾌락을 추구하다 가정이 파괴된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결코 애굽과 가나안(세상)의 풍습을 따라 사는 존재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은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영역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거북스럽고 죄악된 습관이라고 지적하면 기꺼이 포기하는 삶을 산다.

-세상은 서로 짬짜미가 되어 성적 문란이라는 죄된 습관을 즐기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따라 사는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범하지 말라(안 된다)” 라고 하신 것은 철저히 구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의 문란한 성적 문화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죄악들이 그 시대에도 빈번했다는 점이다. 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깊고 큰지… 구원 받을 한 영혼을 끝까지 기다리시기에 심판을 미루시고 미루시며 “말씀대로” 살아낼 것을 끊임없이 가르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인자와 인내와 기다림이 오늘 나에게도 구원의 삶을 살아가도록 기회가 온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성적으로 매우 개방적이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한 문란한 성의 범람은 여간해서 막을 수 조차 없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상품화 된 성은 구조적으로 성의 문란과 성 범죄의 가능성을 늘 열어 놓았고, 이로 인한 비인간화된 인간의 모습이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런한 세태 속에서도 아주 적은 소수라도 문란한 성 문화를 따르지 않고 성의 범람에 맞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적어도 그 범람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성의 본질과 순수함을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성과 관련해서 오늘의 상황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지 않기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실수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북 친구이신 어떤 목사님이런 글을 올리셨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자유를 절제할 때 더 자유로워 지는 비밀이다.” 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님,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며 늘 살아보겠습니다.
*주님, 문란한 성 문화 속에서 거룩함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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