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울의 위협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삼상 19:1-24]
 – 2022년 06월 08일
– 2022년 06월 08일 –

사울은 미스바 전투 이후 자신이 다윗을 총애하는 것처럼 꾸민 상태에서 교묘하게 다윗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다윗은 요나단과 미갈, 그리고 사무엘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엄밀하게 바라보면 사울이 던진 위협적인 단창을 피하게 하신 여호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사울에게서 탈출 시키신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은 그를 잡으러 온 전령들을 세번이나 붙잡으셨고, 사울까지 강력하게 붙잡아 두었다.

이제 다윗은 모든 백성들에게 인정받는 승승장구하는 장군이 아니라 사울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1.꺽지 않는 고집…. 그것이 악한 영의 역사일 수도….(1-17절)
이전까지 은밀하게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노골적으로 죽이려고 한다. 사울은 그의 모든 신하와 요나단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다(1절). 하지만 요나단은 이 명령을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2절). 그리고 아버지 사울을 찾아가 중재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에게 큰 구원을 경험토록 하였는데 ‘어떻게 까닭 없이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느냐’고 간청한다(4-5절). 사울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 명령을 철회했다. 그리고 다윗을 다시 사울 앞에 있게 하였다(6-7절).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결코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6절)”했지만, 또 다시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역사하자 다윗에 단창을 던졌다. 가까스로 피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집으로 도피하였다(8-10절).

사울은 전령들을 보내 아침에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미갈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려 도망하도록 했다(11-12절). 미갈은 이성을 잃은 사울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각오를 하고 우상을 가져다가 마치 다윗이 침상에 누워 있는 것처럼 꾸며 놓았다(13절). 그리고 다윗을 잡으러 온 전령들에게 그가 아프다고 둘러댄다(14절). 사울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침상째 내게로 들고 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15절)” 선언한다. 하지만 이내 미갈이 속인 것을 알고 분노하지만, 미갈은 도망가도록 돕지 않으면 자기를 죽였을 것이라고 둘러 댄다(17절).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것에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나단과 미갈은 다윗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요나단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 낸 사실을 고하면서 사울을 설득했다. 반면 미갈은 “거짓말”로 사울의 계획을 좌절 시킨다. 다윗을 죽이려는 집착 때문에 자녀들과의 관계가 다시 깨어진다. 집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도 고집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그를 불순종하는 사울과 같은 이들을 철저히 홀로 고립되게 만드신다.

*사울은 요나단의 간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다시는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는 악한 영에 휘둘리면 어김없이 다윗을 그 자리에서 죽이려 하였다. 어쩌면 꺽지 않는 고집이 악한 영의 역사임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악한 영의 역사가 신비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삶의 구체적은 현장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지 않음에도 자기 고집과 욕망,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악한 영의 역사임을 깨닫는다.

*완고함, 센 고집이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굳센 의지가 아니라 악한 영의 역사일 수도 있음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다윗은 블레셋과 싸우지만, 사울은 다윗하고 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8절은 다윗이 블레셋을 크게 쳐 죽이니(나카) 블레셋이 도망하였다(말라트)고 기록하는데, 이 일 직후 10절에서 사울은 악한 영에 사로잡혀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나카) 하니 다윗이 피하여 도망했다(말라트).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받은 왕이었던 사울이 정작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있는 다윗을 죽이려는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앞으로 점점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국력을 낭비할 것이다.

*이같은 낭비가 훗날 정작 사울이 블레셋과 싸울 때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한 원인이 될 것이다. 다윗을 붙잡기 위해 허비한 국력이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힘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미움과 시기, 질투에 힘을 쓰다가 정작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할 사랑과 희생, 섬김과 나눔의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이게 될 말인가?



2.포기하지 않는 사울…벌거벗겨지다(18-24절)
다윗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도피한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기에 고향 베들레헴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다윗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해못할 일들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들에서 양치던 자기를 굳이 불러 기름을 붓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가서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고도 싶었을 것이다. 원망도 하고 싶었을 수 있다.

복잡한 마음으로 사무엘에게 도착한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말한다. 그리고 사무엘과 함께 라마나욧으로 가서 함께 거한다(18절). 이곳은 사무엘의 지도를 받고 있던 선지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다윗은 이들 선지자 무리 속에 숨어서 사울의 추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곧 사울에게 보고된다(19절). 지체하지 않고 다윗을 잡아오라고 군사들을 보냈다. 그런데 사무엘 앞에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의 무리를 바라보던 군사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려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였다(20절). 사울은 다른 부하들을 보냈지만 그들도 역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하게 된다. 또 다시 세 번째로 군사들을 보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21절).

이에 사울이 직접 라마나욧으로 다윗을 붙잡으러 갔다.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다다르자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내렸다. 라마나욧에 이를 때까지 예언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사무엘 앞에서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 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새번역_22-24절).

*사울이 입고 있던 겉옷은 왕권의 상징이다. 그의 권세를 나타내는 옷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군사들을 보내 다윗을 잡아 죽이려는 의지를 꺽지 않던 그가 직접 나섰지만 그마저 하나님의 영에 취하여 예언하게 된다. 키 크고 준수하며 당당했던 사울이 이젠 스스로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부끄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았던 그였지만 하나님의 영에 의해 권력도 권위도 명예도 다 잃고 수치 가운데 끝나고 있었다.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10:12; 24절)” 이 말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초기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사울 왕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롱 섞인 모욕적인 말로 그를 풍자하고 있다.

*사울은 라마 나욧을 두 번 방문했다. 9장에서 첫 번째 방문이 기록되었는데, 이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이를 확증하는 세 가지 징표 중에서 라마 나욧에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길에서 만난 예언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인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예언하였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겉옷을 벗고… 발거벗은 상태”로 하루 낮과 밤을 사무엘 앞에 누워서 예언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예언의 경험은 이스라알 백성들에게 영적 권위를 입혀주는 것이었지만, 두 번째 예언은 왕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악한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는 집착, 시기 질투가 만 천하에 드러나며, 왕의 권위가 벗겨지고 가장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게 한 예언이었다.

하나님의 영으로 입혀진 권위가 하나님의 영으로 해체 되었다. 그런데 사울은 이 수치에도 깨닫지 못한다… 안타깝고 불쌍하다….



나는?
-사울은 끈질기게 죽이려 하고, 요나단과 미갈은 살리려 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끝까지 보호하셔서 살리신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은 각종 위기와 도망자의 시간 속에서도 보호하신다. 사무엘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 시켜 주신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자신을 붙잡으려고 보낸 사울의 군사들까지 감동시켜 선지자의 무리 속에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하게 하셨다. 사울마저도 그렇게 하셨다. 충분히 지키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

-다윗의 기나긴 도피 생활이 이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여 주심에 대한 분명한 사인을 주신다. 사울의 가장 가까운 가족을 통해 살려주심을 경험하고 사울조차도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신다.

-인간 왕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벗겨짐을 당할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다. 그도 수치를 당한다. 집착과 고집… 악한 영의 강력한 도구다. 끝내 스스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권위의 상징이었던 겉옷을 스스로 내던지고, 가장 수치스러운 벌거벗은 상태로 사무엘 앞에 붙들려 낮과 밤을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할 수록 사울의 권위는 백성들 앞에서 잃어가고 있었다. 반면 다윗은 더욱 더 존귀하게 된다.


*하나님은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요나단과 미갈, 사무엘처럼 사람들을 통해 도우신다. 때로 직접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통해 직접 도우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을 일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다윗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격자로 길러졌다. 다윗이 연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전적으로 책임지셨다. 요나단, 미갈, 사무엘은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보호의 통로였다. 사울의 이해하지 못할 집착과 고집에서 나오는 살해 위협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내고 견디는 다윗의 모습은 백성들에게 그에 대한 권위를 더욱 세워 주었다.

*그가 미갈과 결혼 할 때, 자신은 집안도, 재력도 변변치 않은 미약한 존재였다고 했지만, 어느덧 하나님의 연단 속에서 “왕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다윗이 고난과 연단 속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실을 인정해 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절대 해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아름답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주님, 세상이 주는 압박 속에서 주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연단을 거치며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주님, 미움과 시기, 질투가 악한 영의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이에 붙들리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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