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칼과 빵…. 미친 척을 해서라도 살아 있으라… [삼상 21:1-15]
 – 2022년 06월 11일
– 2022년 06월 11일 –

다윗은 요나단과의 눈물의 이별 후에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받는다. 놉 땅은 예루살렘과 기브아 사이 가운데 있고 실로 성소가 불타 없어진 후 제사장들의 성읍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제의를 담당하는 제사장은 아히멜렉인데, 그는 엘리의 증손자(22:20, 14:3)이다. 그의 아들이 아비아달인데 훗날 다윗의 책사 겸 제사장이 되었다. 압살롬의 반역 때는 다윗의 피난을 도왔지만, 아도니아의 반역에는 가담하여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사무엘을 통해 예언된 대로 엘리 가문이 사라진다.

그런데 다윗은 왜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놉 땅으로 갔을까?

기브아에서 놉으로(1절) 놉에서 가드로(10절) 이어지는 다윗의 행적을 놓고 보면 놉은 가드로 도망가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놉을 중간 경유지로 삼았을까? 이는 놉 땅에 골리앗의 칼이 보관 되어 있기 때문이다(9절). 다윗은 왜 골리앗의 칼을 필요로 했을까?

사울이 통치하는 이스라엘 땅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이스라엘 땅 어디든지 다윗은 사울의 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늘 승리 하였던 ‘블레셋’ 땅으로 망명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망명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인데,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가서 공물로 바친다면 이보다 극적인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었다.

한편 놉 땅에는 “도엑”이라는 사울의 신하가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에돔 사람이자 사울의 목자장이었다(7절). 아히멜렉이나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엑을 의식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먼저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대로 좀 달라고(3절) 요청한다. 아히멜렉은 거룩한 떡만 남아 있다며 소년들이 정결한 상태이면 이것을 주겠다고했다. 그렇게 진설병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다윗은 자신이 사울왕의 급한 임무를 수행중 이라 칼과 무기를 챙기지 못하였다면서 ‘수중에 있는 창이나 칼’이 있는지 물었다(8절). 아히멜렉은 골리앗의 칼이 있음을 말하고 이를 다윗에게 내어 준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챙겨서 골리앗의 고향 가드 땅으로 망명한다.

*하지만 라마나욧, 기브아, 놉, 가드 땅에 이르기까지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아뢰지 않는다. 그저 “사울을 두려워 하여(10절)” 도망 다니기 급급하다. 사울을 두려워 하는 마음에 가지 말았어야 할 블레셋의 가드 땅까지 숨어 들게 되었다.

*살다보면 상황에 취하여 ‘그 상황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도망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움이 일어나는 상대나 상황에 직면하면 그 두려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에도그렇게 하지 못한는 경우가 꽤 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길은 막힐 수 밖에 없다. 다윗은 이스라엘 땅보다 더 안전하겠다는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숨어든 가드에서 큰 위기에 직면한다.

*하나님 없는 위기 탈출은 없다. 오히려 위기 가중, 위기 폭증이 될 수 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괜찮겠다 싶어 시도한 것이 큰 위기로 되돌아 올 수 있다.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은 블레셋 망명, 도망자의 생활 이라는 결정을 내린 다윗의 앞 길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흥미로운 것은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망명을 믿기지 못해 하며 고백한 말이다.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11절)” 라고 말하면서 다윗을 “그 땅의 왕”으로 말한다.

다윗은 요나단과 미갈로 대표되는 사울 왕가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무엘과 아히멜렉으로 대표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블레셋의 지도자들에게도 다윗은 이미 사울왕이 건재 하였더라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 받고 있다. 아이러니다. 블레셋은 사울보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다윗은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 신하들의 말을 들었음에도 담대하게 행하지 못한다. 도리어 더욱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이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 하여(12절)” 결국 행동을 미친 체하고 침을 수염에 흘리고 대문짝에 그적 거리면서 위기를 모면한다(12-14절).

미친척 하며 가드 왕 아기스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아…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상라 있으라(겔 16:6)” 다윗은 살아내야 했다. 미친 척을 하고서라도 입에서 침을 흘리더라도 살아있어야 했다.



나는?
-다윗이 미갈에게 도움을 받아 도망을 치기 시작했을 때 부터 자신의 앞 길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계획한 대로 대처하며 자기 결정의 안타까운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그만큼 다윗은 정처 없는 도피 생활의 시작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사울에게 급히 도망치느라 자신의 칼이나 빵 한 조각 챙기지 못하고 쫓기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그의 온 정신은 그저 사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만 찾았을 것이다. 결국 시선이 멈추는 곳이 “가드”였다.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고난이 시작되면 쉽게 기도허지 못한다. 그 충격과 공포, 혼란스러움, 믿기지 않는 현실 때문에 기도할 생각조차 못한다. 그 상태에서는 그저 본능이 결정하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진심이 확인된 이상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도망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격속에서 부랴 부랴 칼부터 찾고, 어느 정도의 음식도 구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좀더 침착하게 생각하면 이스라엘 땅 어느 곳이든 사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얼마든지 쉽게 발각될 수 있기에 다윗의 입장에서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인 블레셋 땅으로 넘어가야 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넘어간 땅 가드의 왕 아기스는 다윗을 매우 냉철하게 의심한다. 다윗은 그 앞에서 미친 척을 하고서야 살아날 수 있었다. 살고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살기 위해 때로 미친척을 하고서 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려울 때를 만날 수 있다. 명예롭게 죽기보다 미친척이라도 해서 살아 남아야 할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참으로 모진 인생일 수 있지만 그렇게 살아내야 할 때가 있다.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이고 그들이 인정하는 “그 땅의 왕(11절)”이 된 다윗이 골리앗의 고향 가드에서 살아있기 위해 미친 척을 한 것이다. 참으로 모진 인생이다.

-도망치며 살기 위해 칼과 빵을 구하고 미친 척 하기까지 다윗은 살아 있기 위해 고분분투한다. 그 땅의 진정한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주님, 모진 인생입니다. 칼과 빵이 필요하고 미친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부디 긍휼을 베푸셔서 선하게 인도해 주십시오.
*주님, 다윗이 내린 결정을 저도 내릴 수 있습니다. 너무 쫓겨서 그럴 수 있습니다. 부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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