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일라에서… [삼상 23:1-14]
 – 2022년 06월 13일
– 2022년 06월 13일 –

다윗의 확연한 변화가 눈에 띤다. 사울을 피해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던 놉, 가드, 아둘람에서의 여정에서 깨달은 하나님과 함께함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적용하고 있다. 헤렛 수풀로 숨어든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타작 마당을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주민들을 구한다. 이 일로 인해 사울에게 위협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을 넉넉히 지켜 주신다. 다윗의 도피생활에 두드러진 변화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 다윗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이전과 달리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다”(2, 4, 10-12절).

*하나님께 묻기를 최선을 다한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해 주셨다. 선지자 갓의 선언을 따라 모압에서 유다 광야 헤렛 수풀에 숨어들었지만, 사울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쫓겨 다니고 있기에 앞으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이 때 다윗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를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1.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2절)
그일라는 블레셋 지역과 인접한 밀 농사 지대에다. 블레셋이 그일라를 공갹해서 수확한 밀들을 빼앗아 가려는 소식에 다윗은 즉시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2절).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공격하여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다윗을 따르는 이들은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사울 왕의 추격도 버거운데 블레셋과의 전쟁까지 한다는 것이 너무도 위험 부담이 크다고 했다. 함께 하는 이들의 반응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묻는다(4절). 다윗의 마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애민의 마음이 있는 듯 하다. 그일라의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먼저 블레셋을 쳐서 그일라를 구할 것인지 물었다.

그일라를 돕는 일이 헤렛 수풀에 숨어있는 자신들에게 결코 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들만 이어질 수 있음에도 다윗은 그런 계산보다 그일라 백성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앞선 듯 하다.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아도 사람을 위한 마음이 먼저 움직여 지는 다윗의 마음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묻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성급하게 내리는 자기 결정이 아니라 자기 마음음이 가는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놀라운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변했을까? 단서는 아비아달에게 있다. 모압 땅에서 갓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후 헤렛 수풀로 숨어든 다윗에게 제사장 일가족이 몰살 당한 현장에서 홀로 피해 살아남은 아비아달이 찾아 온 것이다.

그 이후 아비아달은 다윗의 제사장이 되어 이런 저런 일을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윗에게로 피신하여 올 때, 에봇을 가져 왔다(6절).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에봇이 있었다. 거기다 다윗은 놉, 가드, 아둘람의 도피 행적을 통해 하나님께 여쭈고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체험하였다. 하지만 에봇이 없었어도 다윗은 이제부터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했을 것이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 것”의 어색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때마다 즉각 즉각 응답해 주신다.

*한편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다윗이 왕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되었다. 정식으로 즉위하지 않았지만 사울 왕은 자기 백성들을 죽이며 왕 노릇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자기 백성을 살리는 사명을 잊지 않게 하신다. 지금은 도망자 신세지만, 그가 왕으로 세움 받은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훈련과 연단 중이라도 감당해야 할 사명은 감당해야 한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예군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일 뿐이었다.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억압 당할 때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변변한 전투기술도 없었다. 그들에게 블레셋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다윗이 그일라를 습격한 블레셋을 치러 간다고 할 때 두려운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도 다윗에게 합류할 때 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훈련 받는 광야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 능력으로 계산하고 판단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임을 다윗과 함께 하는 광야에서의 훈련을 통해 빚어져 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홀로 광야의 훈련장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할 백성들도 보내셨다. 각각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가장 두려워 하는 블레셋에 도전하고 직면하게 하셔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블레셋에 대한 패배감과 공포감을 걷어 내시려는 것이다. 그 방법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 말고 없었다.



2.그일라의 배신, 사울의 추격, 하나님의 숨겨주심(보호하심)_(6-14절)
다윗은 그일라를 블레셋의 약탈로부터 구원하였다. 하지만 결국 배신 당한다. 블레셋에게 구원하여 준 다윗을 그일라 주민 중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므로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잡으러 출정하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다윗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하였는데, 사울은 그 다윗과 그와 함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잡으러 출정한 것이다. 대규모의 군대가 출정하는 것은 다윗에게 금새 알려 질 수 밖에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또 하나님께 묻는다. 이번에는 아비아달의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다윗은 자신으로 인해 사울은 그일라를 학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비아달에게 전해들은 끔찍한 놉의 사건은 충분히 그것을 예상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다.

다윗은 하나님께 “그일라 주민들이 자신을 사울의 손에 넘겨 줄 것인지(11절)” 먼저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그가(사울) 내려온다”고만 대답하신다. 그러자 다윗이 재차 묻는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12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고 대답해 주셨다.

다윗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서둘러 자신과 함께하는 600명의 무리들과 그일라를 떠나 떠돌기 시작했다(13절).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 성읍을 빠져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물렸다. 하지만 사울은 다윗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윗은 광야의 산성을 찾아다니며 숨어서 살았다. 그는 바로 십 광야의 산간지역에서 살았다. 그 동안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지 않으셨다(새번역_14절).”


*다윗은 자신이 구원한 그일라 주민들에게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의 왕으로서의 면모가 인식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울은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무자비하고 무관심 했지만, 다윗은 자기 백성들을 향해 애민의 마음이 넘쳐났다.

*다윗은 그일라를 구하기 위해 출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두 번 구한다. 사울의 군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과 그일라 주민들이 배신 하게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도 하나님께 역시 두 번 구했다. 자신을 따르는 600명의 무리들의 안전이 있기에 결정에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결정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려고 “더욱 더 신중하게 구하고 또 구했다” 이제 막 왕과 같은 지위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서툴렀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이다. 하나님께 거듭 묻더라도 확실한 방향으로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윗의 신중함이 돋보인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이 구원한 백성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하더라도 다윗과 그 무리들을 “안주”하게 하지 않으셨다. 사울의 추격과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기 저기 광야를 떠돌면서 이들은 점점 “사회적 약자들”에서 “용사들”로 자신들도 모르게 거듭나고 있었다. 그일라를 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여기 저기 떠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광야(황무지)의 요새”, “십 광야의 산골”로 급하게 옮겨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무리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



나는?
-목숨을 걸고 구원해준 그일라백성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다윗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참담함에도 다윗은 그일라 주민들을 원망하기 보다 자신과 함께 있는 600명의 백성의 안위를 위해 “서둘러, 급히” 그일라를 떠난다. 광야의 요새로, 십 광야의 산골로 이리 저리 떠돌게 되었지만 그일라 주민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윗에게 협조하였다는 것 만으로 놉의 제사장 마을을 학살한 사울과 선명한 대비가 된다. 사울은 하나님의 백성을 스스로 적을 만들었지만, 다윗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보다 먼저 자신과 함께한 이들의 안전을 선택하여 바람처럼 그일라를 떠난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의 심성이 돋보인다.

– “내 코가 석자”의 상황에 있던 다윗은 그일라 주민들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도망자 신세였고 함께 하는 이들이 군사작전 능력이 현저하게 낮았어도 다윗의 마음 속에 있는 애민의 마음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뜻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블레셋을 응징하고 그일라를 구원하였다. 하지만 사울의 정보망에 노출 되었고, 그일라 주민들을 다윗을 배반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알려 주신다.

-왜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하실까? 목적은 분명하다. 백성, 사람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충실하게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서다. 동시에 배신 당하여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왕의 사명임을 분명하게 각인 시키신다.


*목양이 이런 것임을 깨닫는다. 하나님만 신뢰하도록 끊임없이 깨닫게 하신다. 의지하고 싶은 환경, 사람에 대한 유혹이 일 때마다 어김없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여야 한다는 깨우침을 경험한다. 나의 갈길을 다 가도록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는 걸음을 굳게 지켜야 하리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묻고 순종하는 것”임을 단순하게 알려주신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늘 묻고 감동주신대로,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이렇게 살아내기를 고대한다.


**주님, 묻고 순종하는 단순한 것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이리 저리 광야를 헤메이게 하시는 것이 결국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신비로운 간섭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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