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등잔대와 진설병 등등 [레 24:1-23]
 – 2022년 08월 13일
– 2022년 08월 13일 –
성막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에 대해 다룬다. 특히 성소와 관련되어 “등잔대와 진설병”에 관한 규례를 소개한다. 이외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한 자에 대한 처벌, 악을 행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말씀하신다.



1.등잔대와 진설병(1-9절)
등잔대의 등불은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정성을 다해 으깨어 만든 깨끗한 감람유로 대제사장이 항상 켜두어야 한다(2절). 이 등잔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등잔대 맞은 편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덩이의 떡(진설병)이 진열되었다(6절). 진설병(렉헴 파님)의 뜻은 “얼굴(들)의 떡(출 25:30)”이다. 이 얼굴들의 떡은 맞은 편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등잔불을 바라보고 있다. 크기는 2/10에바(4.4 리터)이어서 상당히 무겁고 큰 떡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께 얼굴을 향하고 늘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대제사장은 등잔대의 등잔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밝혀야 하고, 진설병도 안식일마다 새롭게 펼쳐 놓아야 한다. 빈번하게 반복되는 “항상”과 “여호와 앞에” 라는 문장이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등잔불이나 진설병이나 모두 “여호와 앞에” 있다. 대제사장은 단지 등불을 관리하고 진설병을 교체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리고 안식일마다 “항상”, “여호와 앞에” 선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매일, 정한 시간마다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 앞에”, 빛을 비추시는 여호와 앞에 얼굴을 펼쳐 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함을 각성하게 한다. 그것도 “항상”이다. 절기때나, 특별하게 정한 시간만이 아니라 “항상”이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앞에 늘 얼굴을 펴고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늘 함께 하여 주심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박ㄹ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새번역_민 6:24-26)”



2.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에 대한 처벌(10-14절, 22-23절)
진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 돌로 쳐 죽이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의도가 있다(출 20:7).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여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합과 이세벨이 포도원의 주인 나봇을 죽이면서 이 죄목을 덮어 씌워 죽였다(왕상 21:10, 13). 결정적으로는 예수님도 이 죄목을 물어 사형을 다하셨다(마 26:65-66). 교회가 시작된 후 스데반을 죽임 당하게 한 죄목도 역시 이것이었다(행 6:11-14).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여 죽임을 당한 성경의 인물들은 누명을 받고 죽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죄”는 권력자에게는 막강한 힘을, 누명을 받는 이들에게는 빠져나갈 수 없는 덫 이었다.

이렇게 오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이들이 가진 부정적인 영향력을 경계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의 백성, 그의 나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가볍게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거나,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으면 그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와같은 처벌은 본토인이든 거류인이든 예외없이 적용시켰다.



3.동해복수법(15-21절)
동해복수법은 “재판 상황에서 백성들을 지도할 규범”으로 주어졌다(출 21:23-25; 신 19:21).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한 자에 대한 명령(16, 23절),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판결(17, 21절), 짐승을 죽인 자(18, 21절)가 각각 앞 뒤로 반복 된다. 그리고 19-20절은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라고 말씀 하셨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동해복수법은 잔인한 복수를 허락하는 규정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따라 범한 죄에 알맞은 형벌을 받도록 하는 “형평성”과 죄 지은 사람을 보호하는 법령 중의 하나이다.

고대사회는 권력, 신분, 재물 등의 이유로 인해 그 사건에 맞는 징벌보다 그 이상의 징벌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재판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빈익빈 부익부로 흘렀다. 동해복수법은 징벌의 한계를 분명하게 정하여 놓음으로 피해자와의 형평성과 함께 복수와 심판을 행함에 있어 자비의 원리가 더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적용하면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 법은 재판의 윤리에서 참고하고 적용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동해복수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마 5:38-39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즉 동해복수법은 보복의 수위를 제한함으로서 과도한 개인적인 보복을 제한하고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명령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기를 원하셨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깨뜨리는 죄에 대한 단호하고 엄중한 경고의 기능이었다.



나는?
-늘 은혜의 밝은 빛을 비춰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의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에 대하여 민감하게 경계하고 나의 일상에서 가볍게 라도 저주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겠다.

-동해복수법이 개인의 과도한 보복을 제한하고 피해 입은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명령하여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워 나가기를 기대하시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범죄의 유혹 앞에 감당해야 할 댓가를 분명히 각인 시킴으로 탁월한 예방 효과를 의도하셨다. 하지만 인간의 죄성은 늘 이 예방선을 넘고 만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의 댓가가 죽음이 분명함에도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신 댓가를 치루게 하심으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구원을 얻은 우리는 동해복수의 가치보다 사랑, 희생, 섬김, 나눔의 가치로 살아가야 함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밝은 빛 앞에 나의 얼굴을 펴고 서서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굳건히 서겠다.



*주님, 나의 얼굴을 들어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얼굴의 빛을 사모하며 그 은혜를 붙잡습니다. 늘 함께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복수로 채우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우는 삶이 되겠습니다.
*주님, 마음에 분탕질이 일어날 때, 나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항상 얼굴을 들어 바라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