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종이 아니라 형제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레 25:39-55]
 – 2022년 08월 16일
– 2022년 08월 16일 –
희년의 여러 규례들이 계속 이어진다. 종에 관하여 이런 저런 규례들을 기록했지만, 핵심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재산 유무와 상관없이 존중하고 형제로 대하며, 이방인의 종이 된 동족은 “속량”하라고 말씀 하신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55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선택하셔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이 백성이 하나님께만 속한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종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 때문에 모세를 통해 가르치신 종에 대한 규례를 꼭 지켜야 할 것을 명령하셨다.



1.동족을 종으로 삼을 때, 형제처럼 대하라(39-43절, 5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동족을 존중 하라고 명령하신다. 43절은 동족 중에서 가난하고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서 종이 된 사람을 형제로서 대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를 고되게 부려서도 안 된다. 모름지기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새번역)” 또, “…. 어떤 주인이라도 그 종을 심하게 부려서는 안 된다.(새번역_53절)” 라고 강조하셨다.

“엄하게(새번역_고되게)”로 번역한 “페레크”는 “잔인하게 혹은 짓밟으며”라는 뜻이 있다. 가난하여 형편이 어려워진 동족을 잔인하게 대하거나 짓밟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오히려 그를 “품꾼이나 임시 거주자처럼 곁에서 살도록 하라 하신다(40절, 53절). 또 희년이 되면 자식들과 함께 그 가족이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고도 하신다(41절). 동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종들이니 종으로 되팔지 말라 하신다(42절).

*혁명적인 가르침이다. 땅 뿐만 아니라 사람도 하나님이 것이기에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잠시 땅을 빌려 사는 것일 뿐이다.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기에 사람이 사람에 대한 주인 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동족이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종이 되었더라도 “종으로 부리듯”, “고되게 부리면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종이 종을 삼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애굽에서 고된 종살이 가운데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기에 시내산에서의 이 가르침은 그들이 듣기에 매우 남달랐을 것이며, 실제적이었을 것이다.



2.굳이 종을 두려면(44-46절)
종(노예)를 두려면 주변 여러 나라에서 사들일 수 있다고 하셨다(44절). 또는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 거주자들이나 그들의 가족 가운데서 소유 삼을 수 있다(45절). 이 종들은 자손들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족끼리 서로 엄하게 부리면 안된다(46절). “…. 그러나 너희의 동포 이스라엘 자손들끼리 서로 고되게 부려서는 안 된다.(새번역_46절하)”



3.혹 동족이 외국인 거주자의 종이 되었을 때(47-52절)
동족이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고 있는 부유한 외국인의 종으로 팔렸을 때는 “종의 값으로 받은 값을 되돌려 주고 풀려 날 권리”가 있다. 친척중에서 속량 하거나(47절), 삼촌이나 사촌, 가문에 속한 살붙이가 속량할 수 있으며, 스스로 직접 값을 치르고 나올 수도 있다(48절). 이 때의 속량값은 “희년”이 남은 햇수를 기준으로 돌려줄 값을 정해야 하고 종으로 일한 기간만큼 몸값에서 뺀다(50-52절).



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동족이 동족을 종으로 삼는 것에 매우 경계하셨다.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종이 되었을 지라도 “종처럼” 대하지 말라고 했다.

*”종처럼 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그때 그들의 삶을 “고된 삶”이라고 표현했다. “잔인하게 짓밟히는 삶”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잔인하게 짓밟히는 종된 삶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다. 자유민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심으로 모두가 자유민이 되었는데, 그 안에서 동족이 동족을 다시 종살이를 시킨다는 것은 그 당사자는 애굽의 종살이로 다시 돌아간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셔서 자유민이 된 백성을 다시 종으로 전락 시키면 안 될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나의 품꾼이므로, 너희가 그들을 종으로 팔 수 없다.(새번역_42절)”, “이스라엘 자손은 나에게 속한 나의 품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나의 품꾼이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새번역_55절)”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종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동족을 고되게 부려서는 안 되었다!(43, 46절). 심지어 외국인 거주자 중에서 종을 삼았을 지라도 동족에게 하듯 엄하게 부려서는 안 된다(53절).



*오늘날 종, 노예 제도는 이미 사라졌다. 외형적으로는 본문 말씀이 도무지 적용점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산물인 물질만능주의 아래서 생겨난 맘몬주의이다.

*소유한 물질과 그에 따른 지위가 비례한다. 사회제도는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의 심리 속에 물질 앞에 스스로 종이 되어 버렸다. 물질보다 사람은 언제나 후순위다. 사람의 가치는 사람 자체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세상은 물질에 기초한다. 그가 소유한 물질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계급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손쉽게 무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주님께서 구원받은 우리를 위해 죄에게 자신의 목숨 값을 대신 속량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된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 자체가 귀하다. 존엄하다. 세상(의 가치관)은 물질을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사람 자체만으로도 귀하고 귀한 가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속량하여 주심으로 모두가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 세상 가치를 따라 사람과 사람을 평가하고 구별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안 된다. 구원받은 공동체안에 속했다면, 함께 구원 받은 이들을 존중하고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신앙생활은 매일 “좀 더 형제가 되어 가는 것”, “좀 더 사랑하기를 시도하는 것”, “좀 더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드러나고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다. 지루하고 고된 여정일 수 있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인내하며 갈 수 있는 길이다. 구원의 은혜가 생동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다.

*더 나아가 신앙생활은 “대신 감당하는 것”이다. “물질”일 수 있고, “마음”일 수도 있다. 형제의 곤란함이 내 눈에 띌 때, 마음으로 함께 하고 삶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동족이 종으로 팔렸을 때 당연하게 “고엘(속량)”하라 하셨던 3,500여년전의 하나님의 명령을 오늘도 이렇게 순종하는 것이다.

*”종이 아니라 형제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물질보다 사람이 먼저다.”



*주님,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함께하는 지체들의 삶을 존중하고 형제처럼 대하겠습니다.
*주님, 형제의 어려움을 “함께 감당하는 마음”, “대신 감당해 주는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꼭 실천해 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