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윗의 시대를 바라 본 아비가일 _ 다윗과 아비가일2 [삼상 25: 23-44]
 – 2022년 06월 17일
– 2022년 06월 17일 –

다윗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조언을 듣고 나발에 대한 보복을 멈춘다. 나발은 흠뻑 취해 잠든 후 다음날 아침 이 모든 일을 듣고 크게 놀라 두려워 하다가 죽는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찬양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권면을 통해 다윗 통치의 선함을 유지 시키셨다.


나발로부터 모욕을 당한 다윗은 분노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아비가일이 가지 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다윗에게 나아와서 남편 나발의 경거망동을 사과했다. 특히나 다윗이 나발을 응징하는 것이 왕으로서의 품격에 맞지 않을 일이고 이치와 격에 어울리지 않음을 호소하여 다윗의 마음을 돌린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30-31절)”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에 그녀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다(32절) 나발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왕의 잔치같은 연회를 베풀고 흠뻑 취했다. 술에서 깬 후에 이 사실을 알고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어 열흘 만에 죽고 만다(37-38절).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즉시로 사람을 보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아비가일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일어나서(42절)”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또 바로 이어서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이 했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다(43-44절).



나는?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여 절제하지 못하고 나발의 집에 보복하려는 다윗을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로 막으셨다. 이렇듯 말씀이나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악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막으신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실 때 아무리 연약한 여인의 말이라도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멈추는 용기를 가졌는가? 어떤 상황, 어느 누구의 입을 통해서라도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께서 내 마음을 민감하게 해주셔서 분별하여 잘 듣기를 소원해 본다.

*다윗의 선택과 결단의 모습은 결코 수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분별할 수 있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말 임을 깨닫는 순간 말머리를 다시 광야로 돌렸다. 이런 용기… 결코 쉽지 않다.

*나발의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다윗을 막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발을 벌하셨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의뢰하는 자에게 생명의 은혜를 이어가신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간섭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나발이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몸이 돌 처럼 굳어진 것은 하나님의 간섭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고 열흘 만에 생명을 거두신 것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이스라엘 가운데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왕, 그가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이 사무엘의 죽음과 함께 하는 600백의 삶을 책임지는 훈련에서 오는 곤고함과 피곤함 속에서도 지금은 600명이지만 이스라엘을 책임지는 것이 자신의 명성이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왕이 되는 수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나발은 마치 자기가 왕이 된 듯한 잔치를 벌이고 내일 아침 죽을 줄도 모른 채 흠뻑 취했다. 인간이 딱 이런 모습이다. 기득권자, 부자들에게서 특히 이런 교만한 모습이 보이곤 한다. 생명과 삶에 대한 겸손함이 없는 어리석은 나발과 같은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인양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자기의 생명조차 자기의 주권 아래 있지 아니함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는다. 나발이 후회해도 이지 기회는 지나갔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 될 다윗을 도와 주므로 연대할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자신의 사망의 기회가 되고 말았다. 나도 얼마든지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만하면 됐다, 저들보다 내가 더 우월하게 여겨진다, 다른이들 보다 더 많은 부와 명예가 자기 능력으로 자기 손에 쥐어 진 것처럼 착각된다” 등등 이런 교만한 마음이 나도 언제든지 나발과 같이 하나님의 두려움이 임하여 몸이 돌처럼 굳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움은 칭찬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지혜로움이 어디에서 올까? 다윗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고, 사울이 스스로 외친 것처럼 왕이 될 것을 알고 다윗의 시대를 신뢰하고 내다 보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왕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서 가능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주님께서 2천년에 외치셨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을 믿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고, 완전한 그 나라가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성 될 것을 이미 듣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비가일의 태도가 큰 울림이 된다. 지금은 사울왕을 피해 도망다니는 무리에 불과하지만 이미 다윗의 나라가 시작 되었고 머지 않아 왕으로 등극할 터이니 지금 사울의 시대, 사울의 방법, 사울의 가치관에 함몰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나라, 다윗의 가치, 다윗의 방법, 다윗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나도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안에 살고 있음을 믿고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신뢰하고 주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에 순종 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겠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이 세상 가운데 꿋꿋하게 살아내야겠다. 아비가일처럼 사울의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시작될 다윗의 시대를 바라보고 지혜롭게 살아내야겠다.


*한편 아비가일과 이스르엘의 아히노암을 연이어 아내로 맞이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정략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비가일과 결혼함으로서 나발의 모든 소유를 합법적으로 가져 와서 600명의 무리에게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비가일은 갈렙 족속이 든든한 지지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아히노암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유다 지파내의 한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정 되기에 다윗은 유다 지파의 지지가 더욱 공고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순수하게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이 정치적으로 노련한 전략가의 모습으로 빚어지고 있다. 광야에서 다윗은 생존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갈고 닦으며 왕의 리더십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전략적으로 보이더라도 다윗의 이러한 정략결혼의 열매가 그리 달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년의 혼란스러운 가족사가 결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을 잘 설명해 준다.



**주님,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말이 들려 올 때 고집 피우지 않겠습니다.
**주님, 다윗의 리더십이 신선합니다. 완고하지 않고 수용적입니다. 저에게도 다윗과 같은 리더십을 주십시오.
**주님, 아비가일이 사울의 시대를 살면서 다윗의 시대를 선택한 것처럼 오늘 나도 세상 속에 살면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바라보겠습니다. 세상 가치에 함몰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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