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또 다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삼상 26:1-12]
 – 2022년 06월 18일
– 2022년 06월 18일 –

만약 내가 다윗이라면… 이 생각이 절로 드는 본문이다. 나는 과연 어땠을까? 벌써 두 번째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윗에게 열렸다. 하나님께서 주신 완벽한 상황이다. 이 기회를 잡으면 오랜 도피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은 24장과 동일한 자세를 유지한다.

엔게디 어느 동굴에서 자신을 살려준 다윗을 고마워 했던 사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참 한심하다.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한 3천의 군사를 자신의 정적을 해치우기 위해 악용하고 있다.

여전히 사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십 광야의 사람들은 다윗이 숨은 곳을 사울에게 알리고, 사울은 3천명의 군사로 십 광야로 내려가 수색하기에 이른다(1-2절). 이 사실을 다윗도 알게 되고 정탐꾼을 보내어 동태를 살핀 후 야밤을 틈타 사울의 주둔지에 아비새와 함께 직접 침투한다(3-7절).

진영 한 가운데 사울이 누워있는 곳까지 손쉽게 접근한 다윗에게 아비새가 말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새번역_8절) 하지만 다윗은 여전히 아비세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새번역_9절)

그리고는 확실한 믿음의 선언을 아비새에게 들려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새번역_10-11절)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은 지켜 보고 계셨다. 그리고 다윗과 아비새를 보호하여 주셨다.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새번역_12절)


*하나님이 지켜주셨기에 3천명의 진영 한 가운데를 오갈 수 있었다. 반면에 사울은 군사들이 에워싼 한 가운데 자고있어도, 혹시 몰라 자신의 창을 머리맡에 세워 놓았어도 다윗과 아비새의 접근에서 보호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3천의 병사도, 머리맡의 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잠들게 하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사울은 엔게디의 동굴에서의 경험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에게 자신의 주위를 겹겹히 둘러쌓이게 하여 중앙에서 잠들었고, 그래도 혹시 몰라 머리맡에 창까지 두었지만, 3천명의 군사와 창이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했다.

*내가 사울처럼 의지하는 “3천의 군사와 창”이 혹시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물을 꼼꼼히 구비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일을 진행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이름을 두고 행하고자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고…. 그야말로 내가 인간적으로 의지하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겠고, 내 손에 쥐고 있는 물질과 명예, 권력과 권한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울을 안전히 지키지 못했듯이 나를 안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안전케 하여 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불가하다! 하나님께 나의 삶의 평안과 안전이 달려 있다.


*다윗의 무모한 행동… 이 위험천만한 행동을 결행하는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 왜 사울의 진영으로 들어가고자 했을까? 그러면서 “누가 나와 함께 가겠느냐?”라고 물었다. 쟁쟁한 다윗의 호걸들이 옆에 있었다. 헷 사람 아히멜렉, 스루야의 아들 요압, 요압의 동생 아비새…그 중에서 아비세가 다윗과 함께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가겠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이런 도전이 올 때가 있다. “누가 함께 하겠습니까?”…. 이때 아비세처럼 “위험을 무릎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이 과연 나에게는 있을까?


*역시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다윗에게는 상황이나 환경이 최적화 되게 보일 지라도 상황에 따른 결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행하는 것의 시험이 펼쳐졌다. 그리고 다윗은 또 한번 멋지게 시험을 통과하였다. 아! 멋지다! 다윗!!

*상황과 여건이 최적화 되어 절호의 기회다고 여기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결정에 추호의 망설임이 없고 아비새에게 이를 이야기할 때 떨림이 없다. 단호하고 담대하게 이야기 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 드리는 삶!!! 멋지다!! 나도 그리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 뜻을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실 때, 아무리 상황과 여건은 기막힌 최적의 시간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상관 없고, 오히려 다를 때, 상황과 여건이 결정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살아갈 때 반드시 직면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들이다.

*상황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 보다, 주님의 뜻을 알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백성답다. 주님의 뜻을 구했다면, 그 뜻이 나의 삶의 현장(이 땅)에서 이루어 지도록 힘을 달라고 구해야 하리라!


**주님, 다윗처럼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주님, 다윗과 같은 리더십이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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