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 하지만 [삼상 27:1-28:2]
 – 2022년 06월 20일
– 2022년 06월 20일 –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다윗은 고민이 많았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에서 그를 살려 주었지만, 문제는 사울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도 알았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다. 그 땅으로 들어가면 사울이 자신을 포기할 것도 알았다(1절). 그리하여 다윗과 600명의 식구들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2-3절).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않는다(4절). 다윗은 아기스에게 별도로 살 곳을 요청하여 시글락을 할당 받는다. 이곳에서 1년 4개월을 지낸다(5-7절). 이 기간 동안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등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않고 양과 소, 나귀와 낙타, 의복을 빼앗아 아기스에게 바쳤다. 하지만 아기스에게 보고할 때는 유다의 남쪽 지역, 여라무엘, 겐 사람을 쳤다고 보고했다(10절). 특이한 것은 그술과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을 노예로 바치지 않고 모두 죽이는 전략을 택했다. 왜냐하면 포로로 살려 두었을 대 훗날 그 사람들이 다윗이 이렇게 행하였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1절).

한편 아기스는 다윗의 외적인 충성에 심취되어 영원히 자기 부하가 될 것으로 착각하였다(12절) “그 때에” 블레셋이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아기스는 다윗에게 함께 참전할 것을 명령하고(28:1), 다윗이 참전하겠다고 말하자, 아기스는 다윗을 “종신 경호대장”으로 삼겠다고 결심한다(28:2).



나는?
-아쉽다. 사울의 추격이 아무리 집요한들 하나님의 보호막을 넘어서지 못할 것을 이미 온 몸으로 경험했을 터인데… 유대 광야를 떠나 블레셋 지역의 가드 성이라니…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온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새번역_1절)

-개역개정은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1절)”이라고 번역했다. 아무리 꾀를 발휘한다 한들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의견도 구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결정적인 순간 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함께 하셨지만, 하나님께 확인하고 구하지도 않고 대적 블레셋의 땅으로 움직인 것은 매우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을 갑작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저자는 분명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3절은 미력하게나마 유추해 볼수 있는 다윗과 600명의 삶의 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 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3절).”

– 도피 생활이 길어질 수록 가족들도 늘어났다. 남자들만 홀로 대피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늘어갈 수록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늘어났을 것이다. 사울이 추격을 포기했다가 다시 추격을 재개하는 일이 두 번이나 반복이 되면서 이러한 고심은 더욱 깊어 졌을 것이다. 좀 더 안정적인 도피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규모 가족들이 보호될 수 있어야 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직접 처단 하지 말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 속에서 부하들은 늘 처단을 주장했다. 세 번째 이런 상황이 조성되면 확실한 하나님의 뜻처럼 여길 것이 분명하고 그때는 어떤 명분도 사울을 죽이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수 있다. 함께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상황에 맞춰 행동하여 사울을 죽이게 놔둘 수는 없을 노릇 이었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블레셋에 들어간 다윗의 무리들을 가드왕 아기스가 도피생활을 막 시작할 때 다윗 홀로 들어갔을때와 다르게 선선히 받아준다. 아마도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다윗이 지속해온 도피생활과 사울의 추격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600명이라는 사람들이 그 도피생활을 거치면서 매우 효율적이고 용맹한 집단이 되었음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힘없고 나약한 난민이 아니라 매우 쓸모있는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아기스의 정보망이 파악한 바로는 다윗이 자기 민족으로부터 매우 미움받는 존재, 집단이 되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다윗의 망명 결정은 결과적으로 사울이 추격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다윗으로서는 “권토중래”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아기스는 다윗의 무리들에게 선뜻 블레셋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 시글락을 선뜻 내주었다. 아마도 그의 의도는 다윗에게 남방 경계를 책임지게 하고 잠재적인 위협 요소를 제거 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에 걸맞게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을 쳐서 평정하고 블레셋에게는 평안을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실전 경험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아기스에게 전과를 보고할 때는 유다와 여라무엘과 겐 사람의 남방을 쳤다고 거짓보고를 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전리품들을 나누어 주었다(30:29). 즉 블레셋에 망명하였기는 하나 자기 민족에게 칼을 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 보고는 결국 아기스의 마음에 다윗과 그 무리들을 “종신토록” 종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하였다(27:12, 28:2).

-이런 망명생활의 초기의 모습은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결정에 무언의 동의를 하신 것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자기 마음에 생각”으로 결정한 가드로의 망명은 분명 “다윗의 길(26:25)”에 어울리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런 다윗의 결정에 묵묵히 따르는 600명의 공동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다윗의 결정에 어떤 내색도 비치지 않는다. 그저 신뢰하고 따를 뿐이다. 대단한 다윗과 그를 따르는 공동체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다윗도 이렇게 실수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수를 선용하셔서 다윗의 왕이 되는 훈련에서 원수 블레셋의 상황을 매우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로 허락하신다. 아기스의 봉신으로 있었던 1년 4개월의 시간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문명화된 블레셋의 모든 부분을 매우 자세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의 발달된 기술과 전쟁도구들을 가까이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소중한 경험이 이후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여는 중요한 통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실수마저 선용 하시며 왕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느냐며 질책하고 심판하실 수 있지만, 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다윗의 견문을 넓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리고 그런 폭넓은 시각으로 하나님 나라를 강성하게 세워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셨다.

*나도 실수한다. 하지만 그 실수가 아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기에 단순한 실수를 너무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실수하는 시간들이 성숙하게 나를 훈련 시켰듯이 누구나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한량없는 은혜로 베푸셨다.

*하지만 실수로 선택한 시간은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결정의 순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하려고 준비할 때 아기스는 다윗도 함께 참전하라고 명령한다. 거짓 보고를 그대로 믿고, 다윗은 이제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과 원수가 된 것으로 믿은 것이다. 이제 결정해야만 한다.


**주님, 실수하는 인생이지만, 실수라는 기회를 선용 하시는 하나님을 닮고 싶습니다. 실수하는 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납하고 품겠습니다.
**주님, 다윗의 고뇌와 결정이 공감이 됩니다. 이 결정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의 수준도 대단합니다. 결국 리더십은 상호 신뢰임을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교회공동체와의 상호신뢰가 굳건하게 다져 지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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