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환난과 핍박을 견디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 [살후 1:1-12]
 – 2022년 08월 29일
– 2022년 08월 29일 –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인해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쓴다. 먼저 축복과 격려로(1-2절) 시작하여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이 크게 자라고 서로에게 비푸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 가는 것으로 인해 감사한다(3절). 그러면서 비록 환난과 핍박이 성도들을 어렵게 하고 생명을 위협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환난중에 있는 교회지만 시련을 잘 견디고 더욱 믿음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환난과 핍박중에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 그것이 무엇일까?



1.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4-6절)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든든한 품이 되신다. 은혜외 평화도 공급하신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은혜와 평안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환난이 다가 아니다. 환난중에라도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누린다. 핍박이 강하게 압박하여도 하나님의 품 안에 있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또, 바울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믿음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간직한 그 인내와 믿음을 두고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새번역_4-5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괴로움으로 갚아 주신다(6절). 하나님의 공의는 자기 백성의 고통받음을 간과 하지 않으신다. 아….. 이 사실 자체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나를 핍박하는 자를 반드시 되갚아 주신다. 나는 되갚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되갚아 주신다!

*지금 당하는 핍박이 내가 감당못 할 고통이어도 하나님께서 그 아픔의 깊이를 충분히 아시고 갚아주신다.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않으면 담담히 견딜 수 있다.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실 분이 하나님이신데 뭐가 더 필요하겠나!



2.안식(해방, 휴식, 평안)이 기다리기에(7-8절)
바울은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는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을 환난으로 갚으시고, 7절에서는 환난을 받는 이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알려준다. “괴로움을 받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주십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자기의 권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에 싸여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실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새번역_7-8절)

“안식(아네시스)”은 “해방하다, 휴식하다, 평안을 누리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시는 날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때 성도들에게 환난을 가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을 당하고 그들에게 환난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의 ‘휴식’을 누리며, 주님의 위로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이와같은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여 환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그의 삶은 고난과 핍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가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고난과 팝박은 그의 삶의 당연한 일부가 되었다. 고난을 받더라도 주님의 주님되심과 주님 안에서의 구원을 잠시의 평안이나 안락과 바꿀 수 없었다. 바울에게 주님은 고난과 맞바꾸어도 충분히 가치있는 유일한 구원의 주님이셨다.

그 주님이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을 위해 공의의 심판을 준비하신다는 것과 주님의 백성은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시는 것을 기억하며 환난과 핍박을 견디라고 격려한다.



나는?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쓴 후 얼마되지 않아 두 번째 편지를 쓴다. 그만큼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과 핍박에 더 노출되었다는 의미이다. 외부로부터의 환난과 핍박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와 맞물려 바울이 다시 펜을 들지 않으면 안될 걱정과 위로와 권면의 글을 쓰게 한 것이다. 바울의 목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외부에서 압박하는 고난이 여전하고 내부의 말씀(재림)에 대한 오해 땨문에 건강한 신앙이 흔들리는 성도들을 지나치지 않는다. 나도 이런 바울의 모습을 꼭 붙잡아야지…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당할 수 밖에 없는 각종 고난들을 꿋꿋히 지켜 나가는 것이 신앙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내 힘으로 견디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말씀을 붙잡으면 더 단단히 견딜 수 있다.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믿음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였다. 무엇보다 담대한 것은 당시 평화는 로마황제에게서 주어지는 것임을 종교처럼 숭배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바울은 담대하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안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평안과 은혜의 기원이 황제에게 있음을 강요하는 시절에 은혜외 평안은 오직 하나님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편지의 인사말에서부터 분명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드러내는 바울의 모습이 놀랍다. 나도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살아야 하겠다.

-환난과 핍박에 맞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는 교회”(1절)였다. 또 “믿음과 사랑이 자라나는 교회”(3절)였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이 있는 교회”(6-7절)였다. 무엇보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교회”(11-12절)였다. 더온누리교회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과 마음이 이와 같으면 좋겠다. 이런 교회를 빚어가야 하리라.

-이제 시작된 데살로니가교회는 이미 장성한 수준의 교회였다. 이제 시작된 더온누리교회도 차근 차근 건강하게 자라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으로 가슴이 뛰는 아침이다.


*주님,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임을 믿습니다. 지속되는 고난이 가져오는 패배감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의 믿음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 주님 안에 있는 교회, 믿음과 사랑이 더욱 풍성해 지는 교회, 주님의 평안과 안식의 약속이 있는 교회,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 상상만해도 벅찹니다. 이런 교회로 이끌어 주십시오. 이런 교회의 소망을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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