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대로에는 게으름, 자기열심이 가져오는 신앙의 무질서로 허무는 신앙 전통…. [딤후 3:1-18]
 – 2022년 08월 31일
– 2022년 08월 31일 –
바울은 자신과 일행의 복음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 후(1-2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축복한다(3-4절). 그리고 나서 바울에게서 받은 전통대로(복음대로) 행하지 않는 성도들을 향해 권면한다. 주된 권면은 “게으름”에 관한 것이다. 게으른 자들은 조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어야 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게으른 삶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공동체가 권면하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주의 강림에 대해 이미 자세히 언급하며 데살로니가 교회를 흔들고 있는 종말론을 바로 잡았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거룩한 생활”을 자세히 권면했었다. 그때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이들의 문제를 간단하게 언급하였는데(살전 5:14) 이후 교회 안에서 주의 강림에 대한 오해와 결합되어 심각한 문제로 비화된 듯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마지막 권면을 할애하여 올바르고 반듯한 신앙윤리를 제시한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하는 것은 무엇인가?



1.기도하라(1-5절)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굳건하게 하사 악한 자들로부터 지키실 것이다. 그 하나님으로 인해 바울이 가르쳐준 대로 순종하고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인내를 잘 보고 배울 것을 기대하였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크게 두 가지의 기도 부탁을 한다. 먼저 “주의 말씀”이 달음질 하듯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도록(1절) 부탁한다. 바울은 자주 자신의 사역과 관련하여 달음질, 경주로 빗대었다(고전 9:24; 갈 2:2; 빌 2:16). 실제로 자신의 달음질 한 결과가 지금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다. 지금 바울은 그와 같은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여전히 말씀을 들고 달리고 있다. 바울은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여 줌으로 그 일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두 번째로 부당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내 주실 것을 기도해주라고(2절) 부탁한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늘 환영하는 이들만 존재하지 않았다.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다. 지금도 말할나위 없이 세상의 세력들과 각축하고 있기에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최전선을 달리는 사역자들에게 공동체의 기도만큼 큰 위로와 힘, 격려가 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악한 자들은 복음 전도의 최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늘 전투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기도하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바울이 기도만 부탁하지 않는다. 부탁한 내용으로 성도들을 축복하기도 한다.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온전하게 배우는 시간들이 될 것을 확신한다.



2.복음을 따라 사는 삶(6-15절)
첫 번째 편지에서도 언급했던 “조용히 자기 일을 할 것”과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쓸 것”(살전 4:9-12)의 권면들이 심각하게 외면 받고 있는 듯하다. 바울이 두 번째 편지에서 이 주제에 대하여 단호한 명령과 훈계로 접근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중에서는 주의 강림과 관련된 잘못된 신념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드러내야 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모습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에 의해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질서함”과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것” 이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 안의 성도들 중에서는 삶 자체가 “무질서”한 이들이 있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는 초기 단계에 바울이 몸소 보여 주었다. 수고하고 애써 자신의 생계를 직접 꾸리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런데 주의 강림이 이미 이르렀다는 이단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더 이상의 노동을 포기하여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았다든가, 사회 제도에 편승하여 신앙인의 본분을 망각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들이 바울이 가르친 신앙의 전통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니라 신앙의 전통(복음의 바른 가르침)에 게으르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모든 일에 무질서하게 참견 하되 신앙의 전통에 따른 덕을 세우지 않고 무뢰한 행동으로 무질서하게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것을 의미한다.

*바른 신앙에는 게으르고 자기 신앙, 자기 유익, 자기 논리와 주장에는 무척이나 바쁜 신앙생활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가치와 상관 없는 것이어도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온 무분별한 열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바른 신앙의 체계를 허물어뜨렸다. 이런 모든 형제들을 멀리하라고 권면한다(6절).


*대신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울 일행의 삶”을 본으로 받으라고 권한다(7절).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거저 얻어 먹은 일이 없었고 누구에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며 밤낮으로 일했다(7절하-8절). 이렇게 한 이유는 성도들의 “본”이 되어서 본받게 하려 함이었다(9절).

*바울은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명령을 거듭 확인하여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는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새번역_11절)이 있다고 하면서 이들에게 주님 안에서 명하고 권하기를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새번역_12절) 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 것”(13절)을 권한다. 그 대상을 이 편지를 받아 읽었음에도 복종하지 않는 그들부터 적용하라고 권면 한다(14절). 바울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는 이를 특별히 조심하고 사귀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복음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를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타이르듯 대하여야 한다(15절).

*제 멋대로 사는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 복음의 방법으로 살아내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 여러 모양의 성도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복음”앞에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수준이 달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기초는 동일하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참 그리스도인은 아닐 것이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기 마련이다. 교회에도 양과 염소가 늘 함께 있다. 문제는 교회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를 “양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하면 복음의 순수함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무절제하게 살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모든 ④신도를 멀리하십시오. / ③그, ‘형제들’ ④그, ‘형제'”(새번역_6절) 데살로니가교회에도 가라지와 같고 염소와 같은 이들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공동체의 순수함이 위협을 받은 것이다. 무절제하고 전통(복음)을 따르지 않는 자를 분별하고 배제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오히려 그런 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에 공동체가 분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진다.

-같은 하나님과 같은 성경을 믿는데, 무절제한 자들은 생명 대신 죽음을, 평화 대신 분쟁을, 사랑 대신 증오를 조장한다.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이 아니라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넓은 길을 따르라고 권한다. 주님이 이름으로 선언하지만, 주님이 안계시고,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바른 성경의 정신은 없다. 그들은 철저히 힘을 숭배하며, 사랑과 섬김, 나눔과 희생의 성경 정신을 외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가르침을 선하게 따르는 것은 너무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교회의 고민은 전통이라는 단어에 함몰되어 진정한 교회의 전통인 복음의 정신이 희미해 진다는 것이다. 예전과 형식에는 정성을 들이지만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내야 할 삶의 현장에서는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살아가려는 움직임이 미약하기만 하다.

-또 이단들의 영향력을 심히 걱정하지만 정작 그들의 미혹하는 가르침을 분별할 “진리의 말씀”을 알아가는 데는 시큰둥하다. 반면 너무 편협한 신학은 열심으로 공부하지만, 정작 성경 말씀은 공부하지 않는 당황스러움도 있다.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사랑과 관용, 인내와 섬김에 인색하기 그지 없는 교회의 모습에 사람들이 실망을 넘어 분노한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 혐오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 틈을 비집고 겉으로는 사랑과 관용으로 그럴듯이 포장한 이단들이 활개치게 만들어 버렸다.

-아… 이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의 당부가 큰 위로가 된다. “형제자매 여러분,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새번역_13절)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새번역_16절)



*주님, 신앙의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도리어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 열심을 내는 “영적 무질서”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에 하나님의 뜻 인양 열심을 내는 신앙의 무질서를 바로잡겠습니다.
*주님,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준 바울처럼 나도 다음세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다 주님앞에 서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