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함께 누리는 기쁨… [삼상 30:21-31]
 – 2022년 06월 24일
– 2022년 06월 24일 –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놀라운 승리였다. 다윗은 이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랬기에 승전 이후 전리품 배분에 있어서도 “공평”함을 잃지 않는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은 유다의 장로들에게도 승리의 혜택을 나누었다.

직접 싸운 백성들의 영예로움은 전리품을 독차지함으로서 증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400명의 전투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광야 어딘가에 있을 아말렉의 근거지를 찾는 것에서 부터 붙잡혀간 가족들의 생사는 물론이고, 그들을 흩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군대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었다. 다윗의 군대가 이를 때까지 이 모든 상황을 제어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을 다윗은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얻은 전리품은 당연히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야 했다. 거저 받아 누린 은혜를 따라 거저 취득한 전리품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전리품을 독점하여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낸다면 허나님의 은혜를 욕보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하려면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값없이 나누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세상논리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른 이들만” 전리품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솔 시내에서 남아 지친 몸을 추스린 이들은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21-22절). 이렇게 생각한 중요한 이유는 이 전쟁을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들의 생각을 차분하게 달랜다. 다윗이 달랜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동지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쳐들어온 습격자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 주셨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오. 또 동지들이 제안한 이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전쟁에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똑같아야 하오. 모두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야 하오.”(새번역_23-24절)

다윗이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로서 합당한 점이 여기에 있다.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있다. 세상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는 “자기 힘과 능력에 따라” 마땅히 취할 것은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힘이 달려서 더 이상 추격하는 군대를 따라가지 못했던 200명의 군사들도 똑같이 나누라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에게 처들어온 습격자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 주셔서” 취한 전리품 이기에 전장에 나간 이의 몫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이의 몫이나 “모두 똑같이” 나누기를 명령한다. 여기에 이 말을 먼저 꺼낸 이들의 체면도 고려했다. 다윗의 마음에는 600명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러한 자세는 이후 다윗의 나라의 원칙이 되었다. “다윗이 이 때에 이스라엘에서 정한 것이 율례와 규례가 되어,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새번역_25절)”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섬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셨다. 이런 이들은 일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해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아말렉을 응징하고 빼앗은 전리품들을 앞세우며 “다윗의 전리품이다(20절)”고 외쳤던 이들 중에서 싸움에 나서지 않은 이들에게 이 전리품들이 똑같이 나눠지자, 마치 자기 전리품인 것처럼 이런 조치에 강하게 불만을 제기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생명을 내건 전쟁에 끝까지 참전하지 않은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이들은 브솔 시내에서 그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니 마땅히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우 합리적인 사고이며,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들을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새번역_22절)”이라고 기록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그들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댓가지불과 조금 결이 다르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먼저 챙기셨다. 또 포도원 일꾼 비유를 통해 한 시간 일한 자에게도 하루 종일 일한 자와 동일한 품삯을 주셨다.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의 논리와 세상의 상식적인 결정들과 이치가 전혀 맞지 않는다.

*다윗은 단호하게 악하고 야비한 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왕으로서 가난하고 약하며, 곤란하고 궁핍한 자들을 먼저 돌보는 “애민”의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드러냈다. “거저 받은 은혜, 아낌없이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이 드세지는 시대이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자기 혼자만 살겠다는 심산이 그대로 느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가난하고, 곤란하며,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은 점점 사라져 간다.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홀로 사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사는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움켜쥐는 공동체가 아니라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이다.



*다윗은 더 나아가 시글락에서 함께 살던 유대인 뿐 아니라 유다의 장로들에게까지 전리품을 보낸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이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한 전리품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더욱 크고 넓게 짓는 공동체, 자신들의 평안 만을 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부어주신 은혜를 “함께”누리기 위해 오히려 자기들의 은혜의 곳간을 기꺼이 활짝 여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다윗의 마음은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분별하고 행할 수 있는 성숙한 상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도피 생활의 모든 순간을 지켜 주셨고, 직면하는 전쟁마다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도와 보호의 은혜를 경험했기에, 그의 온 몸에 이 은혜가 각인되었다.

*백성위에 군림하고 차별하는 군주가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함께 공평하고 정의롭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하려는 다윗의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주님, 은혜로 얻은 삶, 움켜만 쥐지 않고 손을 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주님, 함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저에게 주신 은혜의 곳간을 활짝 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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