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렇게 죽을 것을… [삼상 31:1-13]
 – 2022년 06월 25일
– 2022년 06월 25일 –

사울이 마침내 죽는다.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참 씁쓸하다. 블레셋에게 길보아 전투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사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죽음이다. 요나단을 비롯한 세 아들은 도망하다 죽었고, 사울은 적의 화살에 맞고 중상을 입고 이미 패색이 짙은 전쟁을 목도하며 이방인의 손이 아닌 명예롭게 죽기를 원했다. 그래서 무기를 든 병사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했지만,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고 하나 차마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려져 죽음에 이른다. 이를 바라본 무기든 병사도 사울의 뒤를 따른다.

사울의 슬픈 종말이 애잔하다. 그의 이런 종말이 나의 종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에 더 그렇다. 누구라도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기 탐욕에 사로잡히면 사울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나….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순수하고 부끄러워하며, 때로는 열정적으로 덤비던 사울이었지만, 노욕과 질투가 그를 이토록 비참하게 전락시키고 말았다. 다윗에 대한 질투가 적개심이 되어 백성을 위하여 쏟아 부어야 할 시간들을 다윗을 잡는데 낭비했다. 그런 사울의 최후의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기 그지 없다.

자신의 자존심만 지키려 했을 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의 인생 여정을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았다. 자신이 블레셋에게 놀림거리 당할 것만 두려워했을 뿐, 이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놀림거리 당할 것은 안중에도 없다.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시하고 조롱할 것에 대하여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 적어도 왕이라면 죽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민족, 조국에 대한 아타까움으로 울부짖어야 했다. 그러나 철저히 이기적인 사울이었다.

블레셋의 손에 죽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이미 죽은 그의 시신은 블레셋의 철저한 놀림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명예를 찾을 것이 아니라 살아오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명예롭게 통치 했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통치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기 위해 늘 말씀을 손에 들고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순종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의 길은 명예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울은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서야 명예로움을 찾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명예로움을 추구했다면 그의 죽음도 명예로웠을 것이다. 사울 한 사람의 패배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패배였다. 다윗은 야비한 아말렉을 물리치고 잃어버렸던 가족들을 되찾아 오는 명예로움이 있었지만, 사울은 세 아들들과 무수한 이스라엘 군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마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탐욕만 쭟은 그의 길은 결국 하나님이 떠나갔고 가장 중요한 죽음의 순간에 어느 누구도 그를 돌보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나님이 떠나가신 사울의 길이 혹여 내 안에도 있지 않은지 들추고 또 들추어 보아야 하리라.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버린 그들의 선택의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하나님이 왕이심에도 줄기차게 인간 왕을 요구하며 그가 자신들을 강성하게 해 줄것이라고 헛된 믿음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왕의 보호를 끝내 받지 못한다. 무수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블레셋의 칼에 쓰러졌다. 사울의 평생에 블레셋을 제대로 정벌하지 못했다. 사울이 백성들의 고집 센 요청으로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결국은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울을 왕으로 부르신 목적이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지만, 비참 하게도 시신마저 철저하게 블레셋에게 모욕을 당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사울 왕의 불순종으로 인해 받아야 할 이스라엘에게 임한 징계를 함께 받아 죽은 것이었다. 사울의 죽음과 결이 다른 것이었다.



한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준다. 이것은 11장에서 암몬에게 무시와 억압을 받던 자신들을 사울이 구해 준 은혜를 기억한 것이다(11:1-11). 사울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평가를 받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 준 것에 대하여 끝까지 잊지 않고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갚았다.

그들은 벧산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출발하여 밤새 달려가 성벽에 걸려있는 사울과 세 아들들의 시신을 내려 길르앗 야베스로 옮겼다. 그리고 명예롭게 하는 의식과 함께 화장을 한다. 그리고 난 후 그 뼈를 야베스의 “에셀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7일을 금식하며 애도했다. 사울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이제는 그의 후손도 남아있지 않아 왕위를 계승하지도 못할 사울의 가문을 위해 정성을 다해 장사를 치뤄준 것이다.

또 한 가지 그의 뼈를 “에셀 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것은 야베스 사람들의 기억해 사울의 가장 전성기를 기억하며 예우해준 상징적인 매장지였다. 22장에서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군대를 소집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 그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에 앉고(22:6)” 라고 했다. 에셀 나무 아래 앉아 있었던 사울의 모습이 가장 강력할 때의 모습으로 기억한 것이다.



블레셋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머리와 팔과 다리를 잘라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으로 보냈다(9절). 이스라엘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과 세 아들의 몸둥아리는 벧산 성벽에 못 박혀 매달았다(10절). 이렇게 한 의도는 분명하다. 이스라앨에게 최고의 치욕과 수치를 안기기 위해서 였다.

사울의 이름의 뜻은 “희망”이다. 그런데 그이 마지막은 “희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일단 그가 죽음에 내몰린 가장 큰 요인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쟁에 패하여 다 “도망”간 것이 컸다. 1절과 7절에서는 “도망”이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되어 기록된다. 여기에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어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 여기에 살아 있음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모욕 당하는 것이 싫었다. 무기를 든 병사는 사울을 죽이기를 거절했고, 세 아들의 죽음의 소식이 더욱 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의 의미처럼 “희망”은 찾을 수 없고 깊고 깊은 절망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삶이 그의 이름의 의미처럼 희망이 왜 없었을까? 사무엘서 저자는 단순하게 비교하여 설명한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길을 계속하여 따라갔고,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들도 죽이고, 신접한 여인에게까지 의탁하였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이다. 이에 반해 다윗은 도피 생활이 길어질 수록 더욱 더 하나님과 긴밀하게 동행하였다. 항상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구하였고 그것을 순종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이후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져와 베냐민 지파의 땅 셀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함께 묻어 준다(삼하 21:12-14). 사울을 장사 지내 준 길르앗 야베스와 다윗의 배려는 죽은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긍휼의 예비하심 이었다.



*주님, 희망이 절망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기 힘을 희망 삼던 사울이 진정한 희망되신 하나님을 저버리니 절망이 덮쳤습니다. 나의 삶의 희망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죽는 순간 명예를 찾은 사울이 아쉽습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늘,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드러내며 살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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