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야긴과 보아스 _ 그의 힘으로 세우신다 [왕상 7:13-26]
 – 2023년 09월 18일
– 2023년 09월 18일 –
솔로몬은 성전의 기물과 금속 장식을 만들기 위해 두로에 있는 놋 대장장이인 히람을 데리고 온다. 그는 제2의 브살렐로 지혜와 기술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그가 와서 제일 먼저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개의 놋 기둥을 만들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리고 성전 앞에 세운다.
    
    
    
1. 히람, 그는 누구인가? (13~14절)
석재와 목재를 이용해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마친 솔로몬은 성전 기물을 만들기 위해 두로 사람 히람을 데리고 온다. 역대하 4:11~22에서는 후람이라고 불린다. 사람을 보내서 데리고 왔다는 것은 솔로몬이 그의 명성을 듣고 성전 기물을 만들기 위해 초빙했다는 의미이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먼저 소개하는 양식과 달리 납달리 지파의 과부인 어머니가 먼저 소개되고 두로 사람 아버지가 소개된다. 이는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모계를 강조하여 그가 이방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소개하지 않고 놋쇠 대장장이라고만 언급된다. 고대에서는 대부분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하기 때문에 히람도 놋쇠 대장장이다.
    
저자는 그를 모든 놋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도 있고 오랜 시간 익히고 습득한 기술과 지식도 많다고 했다(14절). 이러한 표현은 출애굽기 31:3에서 성막기구를 만드는 브살렐이 하나님의 영을 통해 받은 능력과 같다. 이를 통해 저자는 히람이 제2의 브살렐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솔로몬의 초청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게 된다.
    
    
    
2. 두 개의 놋 기둥을 만들고 세운다(15~22절).
성전 앞에 세워 놓은 놋 기둥은 높이가 18규빗(9m), 둘레가 12규빗(6m_지름은 대략 2m), 기둥머리 5규빗(2.5m)이다. 전체적인 높이가 대략 11m(대략 4층 높이)가 넘는다. 성전의 높이가 30규빗(15m_대략 5층 높이)이기에  성전보다 약간 낮다. 이렇게 큰 기둥을 주조 방식으로 만들었기에 7:46에서 요단 평지의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진흙이 있는 곳에서 작업을 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갑자기 주랑 기둥의 머리에 대한 설명(19절)이 이어진다. 주랑의 기둥들을 백향목으로 만들고 그 위에 4규빗(약 1.6m)짜리 백합 모양의 머리를 주조로 만들어 올렸다. 갑자기 주랑 기둥을 설명하는 것은 주랑 기둥머리가 놋으로 주조되었기 때문이다. 20절은 놋 기둥의 머리 장식에 대한 것으로 배처럼 둥글게 되어 있는 부분과 그물 모양으로 된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 100개씩 200개의 석류 모양으로 감쌌다(대하 3:16). 기둥머리에 상당한 공을 들여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며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히람이 만든 두 개의 놋 기둥은 성전 앞에 있는 주랑 앞 양쪽에 세워졌다. 오른쪽 기둥의 이름은 “야긴(야킨)”은 “그가 세울 것이다” 혹은 :그가 든든하게 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왼쪽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보아즈)”는 직역하면 “힘으로”라는 뜻인데, 개역 개정은 “그에게 힘이 있다”로 번역한다. 야긴과 보아스 두 이름을 연결하면 “그가 세울 것이다. 힘으로”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힘과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든든하게 세우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 두 기둥은 출애굽 시 이스라엘을 인도한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생각나게 하는 구조물이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큰 힘과 권능으로 광야 40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상징화하였다.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나라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의미로 놓치면 안 된다.
    
    
    
3. 놋 바다와 소 형상 받침(23~26절)
성전 뜰에 놓을 기구인 놋 바다와 그 바다를 떠받칠 소 양 받침에 대한 설명이다. 역대기에서는 놋 바다 설명 전에 놋 제단에 대한 소개가 간단히 나온다(대하 4:1). 바다(sea_얌)는 제사장들이 정결 예식을 따라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채워 보관하는 원형 물두멍이다. 엄청난 양의 물을 담을 수 있으므로 ‘바다’로 명한 것 같다. 성막의 물두멍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 기물은 새 성전에 새롭게 마련된 기물이다. 출애굽기 30장 18절에 따르면 물두멍은 성막과 제단 사이에 있었다. 반면 놋 바다는 성전 건물 앞 오른쪽인 동남쪽에 자리했다(39절).
 
놋 바다는 직경 십 규빗(5m), 높이 다섯 규빗(2.5m), 둘레 삼십 규빗(15m), 두께 한 뼘(10cm)이다.
    
놋 바다는 2,000밧(44,000l)의 물을 담을 수 있었다(역대기는 3,000밧_66,000l). 이는 보통 2,000밧을 채우지만, 최대 3,000밧까지 담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200ℓ 드럼통 400~450개 정도 되는 엄청난 양이다. 놋 바다의 가장자리는 백합화 꽃잎 모양의 테두리처럼 만들었다. 그 테두리 아래에 1규빗(45~50cm)마다 10개의 박(gourd) 모양 장식으로 바다 주위를 두 줄로 빙 둘렀다(한 줄에 300개씩, 총 600개). 박 장식은 애초에 놋물을 부어 만들 때 함께 부어 만든 것이었다. 거대한 물두멍이어서 곁에 있는 열 개의 물두멍에 떠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둘레가 약 14m나 되는 바다를 받치기 위해 네 방위로 각 3마리씩 12마리의 황소를 만들었다. 구체적인 크기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소의 크기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12마리는 열두 진설병과 같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고 추측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모든 황소의 엉덩이 부분이 안쪽으로 향하게 놓았고, 소의 얼굴은 동서남북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배치는 성막을 중심으로 각 사방에 세 지파씩 진영을 배치한 형태와 흡사하다.
    
    
    
나는?
-히람의 지혜와 총명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13~14절). 성전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세워지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의 사람들이 실제적인 기술과 헌신으로 지어진다. 솔로몬은 히람을 두로에서 불러와 놋으로 성전 기물들을 만드는 업무를 맡겼다. 히람은 놋 일에 관해서는 지혜와 총명(기술)과 재능(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그였지만 솔로몬은 개의치 않았다. 영광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최고의 전문가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우리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무슨 재능을 갖추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그 재능을 사용할 것인가이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영적인 나의 주의 거처를 잘 지어가고 있는가?
    
    
-히람은 성전 입구에 세울 커다란 두 놋 기둥을 만들었다. 사용된 재료인 놋은 금과 색깔이 비슷하나 덜 값진 재료이다. 금으로 입힌 전의 내부가 천상의 상징이라면, 놋은 천상적인 것의 지상 모형이다. 솔로몬은 특별히 이 두 기둥의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로 지었다. “그가 세우다”, “힘으로(그에게 힘이 있다)”라는 뜻이다. 이는 단지 성전을 하나님께서 그의 힘으로 세우셨다는 의미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유지하실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오늘날 성전된 우리도 같은 고백과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성전 되었다고 선언하신 주님은 그 성전에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약속까지 하셨다. 그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세우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이 우리를 붙잡는다.
    
-또 합화와 석류 모양의 장식은 하나님께서 그의 힘으로 베푸시는 풍요의 상징이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힘이 일상에 풍성함으로 채우실 것을 바라보는 상징물들이다. 우리 마음 성전에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고백하며 든든한 신앙의 기둥을 세워가자.
    
    
-놋 바다! ‘바다’는 성경의 세계관에서는 어둠, 흑암, 혼돈을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함부로 요동치지 못하고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들지 못하며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바다는 풍요를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황소가 떠받치고 있다. 제사장은 희생 제사를 지내러 가기 전에 이곳에서 씻었다(대하 4:6). 정결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혼돈 세력(바다)을 이긴 결과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죄의 오염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시며,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성전된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제한 없는 사랑이 우리를 맞아 주신다. 죄는 오직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정결하게 될 수 없다.
    
    
*야긴과 보아스가 특히 묵상이 된다. 광야의 성막에서 예루살렘의 건축물인 성전은 각각의 건축 과정이나 구조가 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구조물로서 새롭게 추가된 것이 바로 야긴과 보아스이다. 이는 성전 입구 주랑을 떠받치기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것이다. 솔로몬은 그 두 기둥에 의미를 불어넣었다.
    
먼저, 성전 건축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의 뜻대로 세워진 것임을 상징하는 “야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뜻은 “그가 세우셨다”이다. 이 이름을 통해 성전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말씀하신 대로 세워졌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하나님께서 유지하실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성전 건축을 출애굽 한 지 480년 만에(왕상6:1) 시작한 것이다. 광야의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며 제작한 것이다. 실제로 성막이 완전히 제작된 후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지성소에 임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성소에서 피어오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40년 밤낮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것은 사라졌다. 하지만 출애굽 2세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느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하나님이 언약궤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세대들이다. 440여년이 지난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건축하고 있는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단지 직사각형의 외관을 가진 주변 나라들의 신전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단순한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솔로몬은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나도 더온누리교회를 건축할 때 그저 교회당이라는 건물을 지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분립이라는 의미가 담기고 우리가 추구하는 “더 예수님처럼”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건물에 녹여볼까? 고민했다. 그래서 분립 축제를 통해 함께 나올 모든 성도 각자가 자기 물고기를 만들어 지하 썬큰 공간에 “물고기 테라코타 작품”을 설치했다. 이름하여 “온누리가 온누리로”이다! “(사진) 그래서 누구라도 이 공간을 둘러보며 그래 우리는 온누리에서 흩어져서 나와 모인 교회야…. 그리고 또 흩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교회야…. 라는 마음을 오고 오는 세대에 전달하고 싶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솔로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성전의 다른 부분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 일절 손대지 않고 입구 회랑(현관)을 떠받치는 기둥을 특별하게 세워 광야의 성막에 늘 피워 올랐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뢰하기를 원했다. 광야에서는 진영 가운데 피어오른 그 기둥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었다. 마찬가지로 성전의 두 기둥을 바라보며 그 광야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의 테라코타 공간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게 하는 증거가 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둥이 있는가? 물론이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이다. 생각해 보자. 솔로몬이 성전을 어떻게 건축하고 있는가? 재물?, 건축 기술? 맞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남겨주신 설계도가 없었다면, 재물, 기술 다 무용지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두신 영원히 변치 않을 말씀은 우리가 살아갈 동안 성취되고 성취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또, 기록된 말씀의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씀을 따라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은 말씀의 영이시다.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우치게 하며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힘과 의지를 주신다. 그렇다면 야긴(그가 세우신다) 이 말씀으로 빗댄다면, 보아스(그의 힘으로)는 성령으로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워져 가고 유지되는 것이다. 더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두 기둥을 이미 소유하지 않았는가! 말씀과 성령의 두 기둥이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지 않은가! 그 기둥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여 주심을 듣게하고, 깨닫게 하며, 순종하게 하여 우리의 믿음의 길을 굳게 세우실 것이다. 말씀과 성령으로 이번 한 주도 담대하게 나아가시기를 축원한다.
    
    
    
*주님, 광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예루살렘의 야긴과 보아스로,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세워진 줄 믿습니다. 말씀 따라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삶을 누리겠습니다. 그저 하나님만을 말씀과 성령으로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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