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공부, 사람 공부가 필요하다 [욥 25:1-26:14]
 – 2023년 12월 01일
– 2023년 12월 01일 –
얼핏 같은 주제를 다루는 듯하지만 25장은 빌닷의 말, 26장은 욥의 말로 구분한다. 빌닷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대하여 찬양하며, 이런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벌레와 같은 존재임을 욥에게 상기시킨다(25:1~6절). 빌닷이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에 비교하여 한낱 구더기와 같은 미천한 인생을 언급하자, 욥은 하나님의 창조에 나타난 위대한 능력을 한껏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미천한지를 알려준다(26:1~14절).
 
 
 
1. 어찌 의롭다고 하나? (25:1~6)
인간이 하나님과 비교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빌닷이 마지막으로 욥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로서 천상에 있는 그의 천군 천사나 광명체와는 견줄 수 없는 놀라운 주권과 위엄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천상의 존재보다 훨씬 미약하고 죄악이 가득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서거나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1~3절은 절대주권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곳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천상의 존재이든, 지상의 존재이든 주님의 권능과 다스리심에 복종하지 않을 존재는 아무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모든 피조물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시는 지혜나 권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빌닷은 강조한다.
 
4~6절을 통해 빌닷은 달과 별들도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무색해지는데 하물며 구더기와 벌레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욥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옳으시기에 욥의 모든 재앙과 고통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빌닷은 하나님에게 사람의 가치가 벌레나 구더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면 받은 인간의 가치를 부인한다. 이런 사람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까?
 
 
 
2. 누가 능히 헤아리겠느냐? (26:1~14)
2~4절에서 욥은 빌닷이 큰 지식을 잘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의 지식은 주워들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욥이 고민하는 악인의 흥함과 의인의 고통이라는 난제에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들의 짧은 지혜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위로와 충고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람을 찾아다니며 지혜를 구하기보다 하나님께 나아와 지혜를 구하는 것이 낫다.
 
5~6절에서 욥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죽음의 세계까지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죽음의 세계도 하나님의 지식과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죽음과 그 이후의 모습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온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7~13절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은 놀라운 것임을 밝힌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으로 하늘을 허공 위에 펴시고 땅을 공간에 매다시며 그 구름 위에 물을 담아 놓으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시며 빛과 어두움의 경계를 정하신다. 또한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모든 세력을 제압하셔서 온 세상을 질서 있고 공의롭게 다스린다. 하나님은 혼돈과 변덕으로 가득한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지금 나의 삶이 고난으로 인해 혼란스럽다고 해도 질서의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심을 신뢰해야 한다.
 
14절 크고 광대한 분이시기에 통치와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실은 하나님의 권능 중에서 아주 작은 속삭임만 듣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이해나 경험 안에 가두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나는?
-빌닷은 욥에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를 제시하며 침묵을 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통과 교제의 파트너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언할 수 없는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하나 빌닷은, 이 사실을 너무 부각한 나머지 욥의 일체의 결백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한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며 만물과 사람들이 경외하고 그분의 창조와 구원 역사를 보면서 감탄을 보내야 할 분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그분이 작정하신 대로 진행되며, 그분의 역사를 따라 세상은 지금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존재할 수 있다. 혼자만의 통치가 아니라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행하고 있으니, 아무도 대적할 수 없고 넘볼 수 없다. 지금도 은혜의 빛을 비춰 주시기에 모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 어느 한순간도 그분의 통치 바깥에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 곳도 그분의 다스림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인간은 그 하나님과 비교할 때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빌닷은 인간을 구더기와 벌레 같은 인생이라고 비유한다.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는 혐오스럽고 죄악이 많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비하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여기신다고 고백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여 자기 아들의 형상까지 자라게 하시고 그들에게 영광과 존귀를 부여하여 이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
 
*인생의 주도권을 갖기에는 너무도 하찮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로 존귀케 하셔서 교체의 상대로 불러주신 것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빌닷이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은 “비굴함”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안에 사는 우리는 “겸비”하여 감사함으로 누리면 된다. 겸비하되 비굴하지 말자.
 
 
*빌닷의 짧은 비난이 있고 난 뒤에 욥이 26장부터 31장까지 친구들과의 논쟁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긴 대답을 한다. 친구들이 가진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지혜를 헤아릴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피조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감탄하지만 이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는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속삭임과 같다.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그의 능력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인간임을 고백한다.
 
*인간의 지식의 한계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그저 혼돈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안목을 가질 때 고난 속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에 나타난 신비를 “수용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은 구더기가 아니다. 욥은 하나님을 모르면서 더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친구들의 말을 듣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신학교 시절 가장 무서운 이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미천한 지식을 마치 전부라고 착각하며 정죄와 판단의 칼을 휘두르는 선배였고 동기들이었다. 학문을 이제 겨우 조금 맛보았을 뿐인데…. 그렇더라….
 
*그런데 그 지식을 평생 써먹는 이들도 있다. 그것참….
 
 
*신앙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단정적으로 규범적 지혜에 근거해서 설명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욥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 질서의 시계를 질서로 다스리지만, 질서 너머의 세계도 통치하시는 분으로, 사람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또 신앙은 사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기에 신론이 가장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인간론도 중요하다. 신앙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신앙하는 사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창조의 걸작,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의 유일한 대상이다. 함부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면 곤란하다.
 
*건강한 신앙이란 하나님도 바르게 알아야 하나, 인간도 바르게 이해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빌닷은 사람을 벌레와 구더기로 비유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저의가 의심스럽다. 그저 욥을 향해 벌레와 두더지라고 욕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을 정도로 욥이 형편없는 삶을 살았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생각과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가감 없이 내뱉는 저열함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비일비재하다. 상대를 함부로 단정하는 태도는 인격적인 모독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을 비하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직접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은 자신을 닮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비하하는 것과 같다. 이런 언행 심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발산하는지 모른다.
 
 
 
*주님, 그저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깨진 세상이어서 그렇다고 위안으로 삼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더 하나님과 사람을 모독하는 언행이 난무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주님, 책 몇 권 읽은 것으로 모든 것을 아는체 하지 않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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