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받은 민족 [신 7:1-11]
 – 2024년 01월 16일
– 2024년 01월 16일 –

가나안은 빈 땅이 아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문화가 존재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들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라고 권면한다.

 

본문은 신명기에서 처음으로 가나안에 거주하는 일곱 족속의 이름이 열거된다. 그런데 구약에서 소개되는 가나안 족속의 목록들은 그 숫자가 여섯 또는 일곱으로 차이가 난다. 이는 신명기가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이 족속들을 수사학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의 주제와 관련하여 “충만함”을 나타내는 이상적인 수인 “일곱” 족속들을 열거한 것이다. 이와같은 표현은 가나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제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도 연결된다(적합하다).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은 빈 땅이 아니라 가나안의 일곱 부족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모세는 그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인 사랑을 받아 누릴 이스라엘은 율법 준수(순종)로 화답해야 한다.

 

 

 

1.가나안 땅에 들어가면…(1~5절)

가나안을 차지하고 거주하는 일곱 족속의 이름을 나열한다. 이렇게 가나안 부족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될 땅은 그들의 힘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다. 여기에 언급된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수가 많고 힘이 셌지만 이스라엘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넘기시고 진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2절).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 땅의 족속들과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2~5절에 소개한다. 먼저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아야 한다(2b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맺는 것은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신실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들과 혼인하면 안된다(3~4절). 이스라엘은 이들과 정치적 조약뿐 아니라 결혼 관계를 포함한 그 어떤 형태의 조약도 맺지 말아야 한다. 구약은 단순히 인종적 이유에서 다른 종족과의 결혼을 금하지 않는다(신 21:10~14). 그러나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를 혼합시키는 위험을 항상 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왕상 11:3; 16:30~34). 가나안 여인들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언약의 성실성을 와해시키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고한다(4a절). 가나안 족속들은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을 예배하게 하는 올무다. 따라서 그들과의 언약이나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4b절).

 

셋째, 종교적으로 타협하지 말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이들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가나안 종교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형상물을 전적으로 파괴해야 했다. 제단은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의 신들을 예배하던 장소였고,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주상(돌기둥)과 왕성한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의 이미지인 아세라 기둥은 고대 가나안의 제사 처소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파괴는 이들 족속들이 행하던 종교행위를 따르고자 하는 유혹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2.타협하지 말아야 할 이유(6~8절)

가나안 족속들과 타협하는 행위(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혼인관계)를 하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1~5절에서 요구된 행위들은 이스라엘의 독특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특성은 이들이 본래부터 내재적으로 우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었다. “기업의 백성”(6절)이란 구절에 사용된 “기업(세굴라)은 왕의 사적인 재산(대상 29:3; 전 2:8)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는 여호와의 사적인 소유된 백성이라는 이스라앨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구체적인 순종으로 지켜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신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다. 하나님꼐서 이들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이유는 이들의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적었다(7절). 이스라엘의 우월성은 이들이 내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질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한계가 없는 사랑에 근거하여 아브라하과 그의 자손들을 부르셨고, 언약의 약속을 주셨다. 이 언약에 근거하여 애굽의 압제에서 이들을 “속량”하셨으며(8절), 이들을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시으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가늠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다.

 

이 사랑을 받은 것을 알고 인정하며 체감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3.이스라엘의 반응(9~11절)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10~11절은 십계명의 제2계명(5:9~10)을 상기시킨다. “언약(베리트)”이라는 용어가 “인애(헤세드)”와 함께 나타난다. 여호와는 언약과 신실한 사랑을 지키시는 신뢰하기에 충분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느 자는 “그를 사랑하는 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9절) 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다(6:4~9).

 

이와 대조적으로는 그를 미워하는 자(다른 말로는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신속한 보응과 심판을 초래한다(10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은 모세가 그들 앞에 베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준수해야 한다(11절).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천 대까지(영원히) 언약을 이행하실 것이다. 언약적인 사랑인 인애(헤세드)를 베푸신다. 그러나 주의 계명을 무시하하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보응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조아려 듣고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일이요. 그분을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중립지대는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하나님은 가나안을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는 전투에 앞장 서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할 일은 그들과 상종하지 말고 진멸하는 것이다. 그들의 우상을 헐고 찢고 불살라야 한다. 매우 잔인하게 들리지만 가나안 족속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가 시효가 찼고, 그들의 죄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관영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진멸은 잔혹하게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들 속에 들어가 섞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구별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고통과 탄식과 멸망을 가져다 줄 올무가 된다. 채찍이 된다(수 23:13).

 

-진멸은 가나안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이었다(9:4~5). 이 전쟁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는 철저한 심판의 전쟁이었다. 우상 숭배뿐 아니라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잔혹한 제사를 행하고 음란한 삶과 약자들에 대한 학대로 죄악이 관영한 땅이었다. 약탈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기에 포로를 살려두지 않았고, 재물과 짐승들을 노획하여 자기 재산으로 삼지 않았다. 가나안 전쟁은 철저히 인간의 이해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는 철저한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진멸 명령을 잘못 이해하면 타종교와 세상 문화에 대해서 적대저깅고 파괴적인 태도를 취한다. 과거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진멸하지 못하여 가나안 종교에 물들어 거듭 부패하고 신앙의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세상의 풍습을 제거하고, 내 속에 잔존하는 세속의 영향력과 그릇된 가치관을 철저하게 제거하여 “지금, 여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성도가 무너지는 것은 거창한 영적 전쟁이 아니라 죄의 유혹과 불의에 대해 아주 작고 사소한 타협에서 시작될 수 있다. 오늘날 음란과 우상 숭배가 가득한 환경에서 사는 나는 과연 거룩한 정결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남다르게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선민(選民)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특권을 누릴 자격도 없었고 그들이 쌓은 공적도 없었다. 오히려 땅도 없고나라도 없는 가장 적은 민족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약속에 하나님꼐서 신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오늘 내가 주 안에 있게 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게 하였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향한 즐거운 순종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은 순종이다. 험한 세상 속에서 숱한 위험과 유혹을 경험한다. 가나안 땅의 모든 거민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출애굽과 광야 생활에 이은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가장 단호하게 실행해야 할 일이 가나안의 잔재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때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깊은 뜻과 계획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로지 순종만을 요구한다.

 

 

 

 

*주님,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언약에 충실하신 인애(헤세드)로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감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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