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네 공의가 아니라 나의 언약에 신실하신 은혜로 [신 9:1-11]
 – 2024년 01월 20일
– 2024년 01월 20일 –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보다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족속을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포함한 이방 민족만 하나님의 진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세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셨다”라고 회상하며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도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가나안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뿐이다. 이것을 안다면 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부터 줄곧 완악한 백성이었다. 이를 잘 보여준 사건이 호렙에서의 반역 사건이다.
 
출애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사건 이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전형적인 구원 서술 양식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었음을 강조한다(5-6; 출 20:2). 그러나 본문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 아니라 “네 백성(모세의 백성)”이라 부르시고, 출애굽 사건 또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모세가 이들을 인도하여 낸 사건이라고 말씀하신다. 호렙에서의 반역 사건이 가져온 깨어진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자신들보다 크고 강대한 나라들을 정복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의로움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셨다고 생각하게 될 위험을 경계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조상에게 약속을 지키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임을 가르친다.
 
 
 
1. 승리의 이유(1~5절)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정복의 문턱에 왔다. 강 건너에는 이스라엘보다 힘이 강한 나라들과 하늘까지 닿은 난공불락의 도시들, 그리고 키가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승리의 원천과 소망이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절에서 삼인칭 대명사 “후”를 세 번이나 사용하며 가나안 정복이 전적으로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방관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하라”라는 명령이 주어진다(3b 절).
 
고대 전쟁의 승패에서 승자는 결백한 것으로 간주되고, 패자는 유죄로 인정되는 이해가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의 도취감으로 인해 자신이 도덕적으로 의로운 존재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4~6절에는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3회 반복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는 이유가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자신들 앞에서 쫓아내실 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셨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신 이유는 이들의 사악함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4절).
 
둘째, 이스라엘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이들이 공의로웠기 때문도 아니고 이들의 마음이 정직하였기 때문이다(5a절). 가나안 족속들의 완악함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신다는 언급에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함이다(5b절).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단순히 땅을 선물로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 주민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까지 포함된다.
 
셋째, 이스라엘이 전쟁의 승리를 자신들의 의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이유는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기 때문이다(6절). 만약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의에 대한 보상이라면 이스라엘은 결코 이 선물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결코 의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질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다.
 
 
 
2. 거역하던 일을 잊지 말라(6~12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인해 약속의 땅을 차지했다고 여긴다면 심각한 건망증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의롭지 않고 패역한 백성인 것을 예증하기 위해 모세는 출애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현장인 호렙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황금 송아지 사건이다(8절).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진멸할 위험을 초래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약속의 땅을 주시는 것이 결코 이스라엘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건을 회상하므로 모압에서의 언약 갱신이 호렙에서 첫 번째 맺은 위대한 언약의 갱신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호렙에서조차 백성들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다. 그렇다면 언약을 갱신하는 모압에서 그와 같은 위험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세는 첫 번째 언약을 체결할 때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금식한 후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하신 언약의 두 돌판을 받았다(9~10절). 그는 이 기간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 가운데 있었던 모세와 달리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있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다(12b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자기 백성이 아닌 모세의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출애굽 사건도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모세가 행한 것으로 돌리셨다.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거부하신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아니라 가나안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또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 맹세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의 거인 아낙 자손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것이다(1~3절). 아낙 자손의 성읍은 높고 견고하여 객관적인 전력상 이스라엘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앞서가시면 군사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지이다. 하나님이 나서야겠다고 하셔야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쓰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내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내가 부리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면 믿고 수용하면 된다.
 
 
-이스라엘이 아낙 자손을 치고 가나안을 점령해도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게 하실 것이다(4~5절). “그들의 공의” 때문이 아닌 “가나안의 악함” 때문이고,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아니라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은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하지만 교만하게 자랑하면 안 된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은혜를 기억하고 자랑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을 차지할 만한 자격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심판받아 마땅한 “목이 곧은 백성”이었다. 하나님께서 언약에 한결같이 신실하신 동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던 날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불평하고 시험하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금식하며 돌판을 받아오는 동안 그들은 산 아래서 아론을 앞세워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 아니라 네(모세) 백성”이라고 말씀하실 만큼 분노하셨다. 그들은 순종하는 데는 더뎠고 불순종하는 데는 빨랐다. 그런 자들에게까지 가나안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그러니 과분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이와 같다. 그 은혜를 진정 실감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전과 다른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인생은 언제나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매 순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들을 이기고 가장 복된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참 주체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언제든지 자기들 곁에서 자기들을 위해 봉사할 신을 만들었다.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복락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이가 새겨야 할 이스라엘의 반역이다. 상황과 여건이 되면 누구든지 이럴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온전히 순종하고, 은혜를 기억하며, 겸손하게 그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
 
 
 
*주님, 이스라엘의 반역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얼마든지 나의 욕심을 따라 주님을 반역할 수 있음을 경각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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