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인간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때문에 [신 9:13-29]
 – 2024년 01월 21일
– 2024년 01월 21일 –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광야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완악했는지 그 증거를 나열한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포기하기로 결심하실 정도였다. 모세의 중보기도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의로워서 가나안 땅을 받은 것처럼 교만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축복을 누리는 것은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게 하려고 이스라엘이 얼마나 지속해서 하나님께 등을 돌렸는지 열거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한 사건을 거론했다.
    
    
    
1. 모세의 두 돌판 파기(13~17절)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 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담했다. 영적인 외도 현장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분노하시면서 백성들이 극단적인 패역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멸하고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하시면서 모세에게 막지 말라고 말씀하신다(14절). “이름을 없애다”라는 표현은 고대 중동의 전형적인 저주 문구이며 대적을 전멸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름을 완전히 지운다는 것은 사후에 어떠한 명예도 받을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의 징벌이었다. 또한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 것이다(창 12:2)”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파기하고 그 약속의 계승자를 모세로 바꾸시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파국적인 선언을 들은 모세의 반응을 출애굽기에서는 곧바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장면으로 지어지지만(출 32:11), 본문은 이 장면이 생략되고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만 언급된다(15절, 출 32:15). 산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는 표현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지만, “불”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 쓰이기도 했지만, 가나안 족속을 멸할 때는 “심판”의 역할을 했다(9:3). 그런데 시내산 아래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마터면 이스라엘을 “멸하는 불”이 될 뻔했다(14절). 그 이유를 16절에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경배한 것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 결과로 모세는 여호와께서 주신 두 돌판을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깨뜨렸다(17절).
    
여호와의 불이 여전히 타오르는 임재의 자리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고 있는 참담한 영적 외도의 가증스러운 죄를 직면하고 만 것이다. 그들의 죄는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을 어긴 것이었다(5:7~10). 이 죄의 심각성은 17절에서 묘사되듯, 백성들의 눈앞에서 두 돌판을 두 손으로 던져 깨뜨리는 모세의 과격한 반응으로 표현되었다. 돌판이 깨졌다는 것은 언약이 깨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은 것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2.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18~24절)
돌판으로 상징되는 언약은 깨졌다. 그러나 언약의 중보자 역할을 하고 있던 모세는 즉각적으로 중보기도를 한다. 먼저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18절), 이들이 저지른 모든 일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아론을 위해 기도하였다(19b절). 모세는 사십을 동안 금식하는 중에 두려워하며 기도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행동으로 인해 분노하여 이들을 멸하려 하셨고(19절), 아론은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여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신다.
    
모세는 음식과 물을 모두 끊었다. 백성을 위해 고행을 자처한다(18, 25절). 모세는 이때 여러 차례 중재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용서가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임하게 한다. 모세의 결사적 탄원 기도와 중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19절). 이후 깨진 돌판이 다시 제작되는데 이때는 모세가 친히 깎는다(출 34:1, 3, 28~29). 이는 언약의 회복을 상징한다.
    
모세는 배교의 상징물인 금송아지를 조직적으로 파괴한다. 불에 살라 송아지의 형태를 제거한 다음 녹아내린 금덩이를 찧고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었다. 이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다(21절). 출애굽기에서는 그 가루를 백성이 마시게 했다고 기록했다(출 32:20). 이는 금송아지 숭배에 대한 공동 책임을 확증하기 위함임과 동시에 배교의 상징을 백성들로부터 완전히 제거했음을 의미한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언급한 다음에 송아지의 잔재가 시내를 통해 흘러 내려간 것을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모세는 계속해서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의로움 때문이 아닌 것을 강조하기 위해 호렙에서의 금송아지 배역 사건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 기간 내내 지속해서, 혹은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다베라에서 하나님을 악한 말로 원망하였다(민 11:1~3). 맛사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하였다(출 17:1~7).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에서 백성은 고기를 요구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였다(민 11:31~35).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랑하게 되었다(민 13~14장; 신 1:19~40).
    
모세는 이 모든 거역의 예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24절).” 마치 모세 자신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거역하는 백성임을 알아봤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이스라엘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3. 모세의 기도(25~29절)
13~17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백성을 멸망시키고 그를 통해 새로이 큰 나라를 이룰 결심을 피력하셨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다. 대신 백성을 위해 40일간 금식을 하며 탄원의 기도를 드린다. 출애굽기 32장과 본문이 이어지는 신 10장을 통해 모세의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확증한다. 이 기도 이후 모세는 조목조목 하나님을 설득한다.
    
먼저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속량”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니 멸망시키면 안 된다고 한다(26절). 모세는 여호와께 이스라엘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청원하며, “주의 백성, 주의 기업(암메카 붸나할라트카_29절)”으로 표현한다. 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있음을 전제하는 문장으로 자신의 요청이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억해서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27절). 이는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본성을 가지고 계신 것에 기대어 탄원하는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을 힘들게 애굽에서 끌어내신 하나님이 결국 그들을 멸망시키면 애굽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이라고 말한다(28절). 이 또한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예가 입증되어야 하는 것을 강하게 되새기는 것이다. 만일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하게 된다면 애굽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이 약속을 이룰 능력이 없고, 자기 백성을 미워하셨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을 되짚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세는 이런 기도의 내용을 듣는 출애굽 2세대를 포함하여 오고 오는 모든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각성하기를 원한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을 깨우치고 있다.
    
    
    
나는?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의로움에 따른 보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의로움은 없다. 오히려 목이 곧은 백성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심으로 완악한 가나안 부족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의롭지 못한 존재였는지를 본문의 내용이 고발한다.
    
-하나님께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려 하자 모세가 금식하고 하나님의 명예를 내세우며 용서를 구한다. 시내산 꼭대기에서 신부된 이스라엘과 함께 거할 성막에 대한 청사진을 알려주고 있을 때 산 아래의 신부 이스라엘이 외도를 하고 말았다. 질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분노하셨다. 이스라엘의 이름마저 기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멸하시겠다고 선언하시고 만다. 이 말씀이 곤혹스럽게 내 마음을 뒤흔든다. 혹시 더온누리교회와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은 어떨까? 혹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시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진노 음성을 듣고 또 직접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의 현장을 목격한 모세는 그들의 눈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린다. 하지만 돌판을 받을 때와 동일하게 40일을 금식하며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그리로 형 아론을 위해 간절하게 구한다.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찧고, 티끌같이 가늘게 빻아서 시내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내에 뿌리고 그 물을 백성이 마시게 하였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그렇게 구원받은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 나라 제사장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길을 따라 살아내야 한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역사는 반역과 외도의 역사였다. 은혜를 망각했고, 다짐을 저버렸으며,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다. 약속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진멸되어야 할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며,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고심하면서 한 번 더 자비를 요청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기도가 그들의 간절한 욕망과 소원을 함께 탄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이름의 명예를 위하여 베푸셔야 할 은혜를 구하는 기도여야 함을 모세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그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이스라엘에 다시 한번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에 신실하신 성품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사는 삶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인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과 희생이 나의 삶을 통해 값지고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꿈꾸며 모압 평지에서 말씀을 들은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말씀을 듣는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그 나라를 누리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먼저 자기 잘못을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과거 잘못을 정직하게 직면하게 한다. 출애굽 1세대가 저질렀던 심각한 잘못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다. 그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생생하게 끌어낸다. 그만큼 출애굽 2세대들이 뼛속 깊이 이 일을 새기길 원했다. 처절한 실패의 기억이 전수 되지 못하면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다베라에서, 맛사에서, 기브롯 핫다다와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실패를 직면하게 한다. 또다시 그때, 그곳에서의 실패가 지금, 여기에서의 실패로 반복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눈물의 탄식, 기도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은 목이 곧고 완악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는 백성을 위해 눈물로 탄원하였다. 사십 주 사십 야를 엎드려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죽기를 각오한 모세의 기도에 마음을 돌이키신다. 그리고 백성을 멸하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는 비통함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다. 체휼과 동정을 상실한 무감각한 시대를 거닐고 있다. 선지자의 영성인 우리 사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서 있는 이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모세의 중보하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용기를 배울 수 밖에 없다.
    
*생명을 건 기도와 간구로 교회 공동체와 세상을 위해 기도로 엎드린 이는 모세만이 아니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행하셨다. 눈물이 피가 되도록 간절함과 애절함으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는 채워졌다. 십자가에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온 인류의 대속물로 내어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똑같이 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날로 무정하여지고, 무감각해지는 세상에서 영혼들을 향한 민감함과 영적 감수성으로 목장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이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였으면 좋겠다. 눈물을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약을 굳게 붙드는 성실함이 중요하다. 모세가 과거의 잘못과 이에 따른 중보의 노력을 자세하게 들려주는 의도가 무엇일까?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언약을 붙들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달라고 요청한다. 또, 하나님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셔서 이스라엘을 기업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깃들어 있음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다면 언약에 신실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또한 언약을 능히 이루어 가시는 큰 능력과 펴신 팔이 우리를 붙잡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자신의 언약에 충실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잊은 이에게 과거의 실패는 오늘을 실패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이에게 과거의 실패는 오늘을 승리하도록 이끈다. 과거를 돌아볼 줄 모르는 영적 무지와 탄식과 애통을 잃어버린 무감각과 날로 희미해져 가는 언약 정신은 다음 세대에 대한 근심을 더욱 깊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도 실제하며 그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생동하며 세워져 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눈물로 탄원하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과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믿음의 걸음을 떼어가는 삶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
    
    
    
*주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임을 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도 역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 은혜 안에 늘 거하기 위해, 과거의 실패를 직면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우선 되게 하며,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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