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신 10:1-22]
 – 2024년 01월 22일
– 2024년 01월 22일 –
9:1~29에 연결된 1~11절은 금송아지 반역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는 표징을 서술하고(1~5절), 그 표징은 가나안을 향한 여정의 근간이 된다(6~11절). 12~22절은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술한다.
    
여호와께서 다시 돌판에 십계명을 써서 모세에게 주시고, 대제사장직과 레위 지파의 직무가 유지된 것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본받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며 충실하게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돌판을 주시는 순간마저 반역을 일삼은 완고하고 고집이 센 백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다시 십계명을 주시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자들을 사랑하도록 요구하신다.
    
    
    
1. 다시 받은 돌판과 레위 지파의 책임(1~11절)
“그 때에(1절)”는 반역한 이스라엘이 진멸 당할 위기에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으신 시점이다. 첫째 돌판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다듬어 들고 올라온 두 번째 돌판(1~3절)에 여호와께서 직접 써 주신다(4~5절). 이는 여호와의 용서와 언약 재체결의 표징이며,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개인 소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5~6)으로 회복된 징표이기도 하다.
    
    
6~9절은 언약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직 이양(아론에서 엘르아살)과 언약궤를 질 수 있는 레위 지파의 선별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위해 수행해야 할 임무이므로 언약 관계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계승한다(6절). 문맥상 대제사장의 직무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하나님을 이스라엘에게 중보하는 역할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 안전하게 거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셔서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감당하도록 맡기신 사역은 세 가지이다. 먼저 언약궤를 메도록 하셨다(8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여정에 함께하셨음을 시사한다. 또한 여호와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게 하셨고, 여호와의 이름을 축복하게 하셨다(8절). 이는 성막에서 제사와 제의를 드리는 예배자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9절).
    
    
10~11절은 모세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서술한다. 금송아지 반역으로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위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사 진멸하지 않으셨고(10절), 이스라엘 중에 거하셨다. 이제 모압 평지에서 요단강 도하를 눈앞에 둔 이스라엘이 직면한 과제는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하는 것뿐이다(11절).
    
    
    
2.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12~22절)
진멸의 대상에서 다시 주의 백성, 주의 기업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에 대한 헌신을 촉구하는 질문을 제시한다(12절). 세 가지 권고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삶의 원칙으로 제시된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광야 4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체험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둘째,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향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존재에 깊이 뿌리 내린 필연적인 것이다. 셋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13절은 개개인이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여호와께 헌신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명령하신 모든 언약을 충실하게 준수하라고 명령한다.
    
    
이를 명령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우주의 주권자이며, 소유자이시다(1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스스로 당신을 “매셨는데(하샤크_기뻐하시다)” 이는 그들을 사랑하시기 위함이다(15a절). 그 사랑으로 그들의 후손을 모든 민족 중에서 선택하셨다(15b절).
    
이와 같은 특권에 부응해야 할 이스라엘에게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와 “목을 곧게 하지 말라”라고 명령하신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를 직역하면 “마음의 표피를 제하라”인데 이는 순종하라는 다른 표현이다. 이스라엘에게 광야 40년은 불순종으로 얼룩진 역사였다.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명령은 출애굽 2세대가 그런 불순종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경고하는 것이다. 그들은 목이 곧았던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세대 가운데서 “마음에 할례를 행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이 명령들은 이스라엘이 일상에서 여호와를 향하여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명령이다.
    
17~18절은 이렇게 일상에서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최고의 신”, “최고의 주”이시며, 천지 마물에 주권을 행사하시고, 전혀 제한받지 않으시는 이스라엘을 통치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임을 피력한다. 그 여호와는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17절). 또한 고아와 과부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세우신 “정의”를 행하시며,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나그네(게르)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시다(18절).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성품을 따라야 한다.
    
    
19~22절은 하나님을 본받고, 그분만을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서술한다. 이스라엘이 ‘게르(나그네)’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그들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19절). 또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만 따라야 한다(20~22절).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하나님을 깊이 존경하고 순종하여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명령이다.
    
그를 섬기라는 둘째 명령은 이스라엘의 삶 전 영역에서 제의 규정을 포함하여 모든 언약 규정을 준수하고 여호와께 충실하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셋째는 “그에게 의지하라(다바크_매달리다, 충실히 대하다)”인데 이스라엘의 모든 영역에서 오직 여호와께만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마지막 넷째 명령은 언약 공동체 안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증인이 없어서 애매한 경우에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장이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출 22:11; 삼상 20: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테필라)이심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나님과 불변함의 관계성과 오직 그분만이 찬양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에 대한 찬양을 “네가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여호와를 즐거워함이 삶의 원동력”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는?
–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악행을 범하여 언약을 어겼는데도,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들으시고 다시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이어가신다. 이스라엘의 회개를 받으시고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게 하신다.
    
-언약의 체결과 유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열심과 의지의 결과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간은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언약을 다시 체결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가장 먼저 “경외”였다. 경외함은 단지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의 감정만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며, 순종하는 마음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따르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교만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주는 마음이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는 이는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나그네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당연히 하나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구현하도록 실제적인 방식에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시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그네에 불과한 이스라엘 백성이었던 자신들을 돌아보아 주셨다.
    
-나그네에 불과하고, 죄인들이었던 자신들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셨다. 이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은 자신들을 사랑하여 주신 것처럼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이나 경제적인 지위에 따라 편애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줄로 아실 것이 분명하다.
    
    
    
*주님, 중보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주의 은혜를 알고 누리고 있다면 주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함을 고백합니다. 더 예수님처럼 살아내기 위해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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