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광야의 은혜를 기억하여 “지금 여기에서” 순종하라 [신 11:1-17]
 – 2024년 01월 23일
– 2024년 01월 23일 –
출애굽과 광야에서 여호와께 반역했던 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께 충성하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을 온전히 차지하며 번영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교만해져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의 언약 규정인 율법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1~7절을 통해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과정에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1~5절)을 예로 들며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애굽에서 탈출했던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기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호와께 반역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을 서술한다(6~7절). 이를 통해 하나님의 한량없는 구원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반역을 대조한다. 8절 이하에서는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굳은 약속이 있기에 차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땅에서의 생존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어야 가능함을 강조한다.
    
    
    
1. 여호와의 위대하심(1~7절)
11장의 내용도 율법 순종의 중요성과 불순종에 따른 치명적인 결과를 언급한다. 그 전에 한 번 더 하나님께서 행하신 출애굽의 구원과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의 위대한 역사를 회고한다. 이를 근거로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권면하고 그의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언제나 잘 지키라고 명령한다.
    
1절 원문을 직역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로 시작한다. 율법 순종은 단지 문자적인 조문 지킴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이어야 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어서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는 구체적인 명령을 내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주신 율법의 모든 것을 지키는 구체적인 일상을 통해 증명된다.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추상적이라면, 책무, 법도, 규례, 명령을 지킴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 특히 원문에서는 “그의 책무와 그의 법도와 그의 규례와 그의 명령”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의”라는 표현을 네 번이나 반복하며 모든 율법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2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하는” 것을 언급한다. 이는 이 일을 “알지 못하는” 자녀 세대와 “너희의 눈으로 보았다(7절)”라는 표현을 통해 의도적으로 보지 못한 세대와 구별하고 있다. 이렇게 대조하는 이유는 “출애굽 이후의 모든 이적과 기사는 출애굽 당시의 압도적인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나와 메추라기, 물 공급은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큰 권능의 역사와 홍해를 건넌 사건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출애굽 당시의 기적과 이적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세가 지난 역사를 총정리하면서 출애굽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마저 신뢰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배교와 반역을 반복하고 잠시의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불평하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그 패역한 백성이 광야의 숱한 역경과 난관을 뚫고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것이다.
    
출애굽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역한 사건 중에서 하나를 예로 든다. 그것은 놀랍게도 민수기 16장의 고라 자손의 배교사건이다. 당시 고라 자손이 주동한 이 반역은 아론과 그 가문의 제사장 권한을 찬탈하려는 무리들과 모세의 정치적 권력을 차지하려는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의 추종자들이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하여 하나님의 권위와 공동체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민수기의 강조점은 고라가 주동하여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함께 하였다고 서술하지만, 본문은 고라의 반란은 생략되었다. 이에 대하여 랍비들은 모세의 설교에서 고라가 빠진 이유는 당시 심판의 불길을 피해 살아남은 고라의 아들들을 모세가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실제로 민수기 26:9-11은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라고 진술한다. 고라의 자녀들 중 일부가 하나님의 경고를 따라 심판의 장소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경고를 중히 여겨 심판의 장소를 피한 이들은 훗날 큰 축복을 받는다. 그들의 삶의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성전의 음악을 맡아 감당하면서 아름다운 시편들을 남겼다. 사무엘이 고란 자손이다(대상 6:34~38). 모세의 배려에서 그의 온유한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2. 여호와께서 약속한 땅에서의 삶(8~17절)
8~9절에서 언급하는 것은 출애굽과 광야 인도하심의 은혜와 단호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되는 마땅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지키면 약속의 땅을 얻고 거기서 축복을 누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번영과 장수 축복의 원천이 된다. 이 율법을 지키면 세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이 땅에서 풍요의 복을 누리고 장수할 것이다.
    
심지어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애굽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일 뿐 아니라 곡창지대이다. 하지만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 이야기를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임을 다시 피력하고 있다.
    
    
10~11절은 애굽과 이스라엘을 비교하고 있다. 먼저 모세는 애굽이 나일강이 범람할 때를 이용하여 물을 저장하고 관개수로를 통해 농사를 지었고 발로 기구를 조절하여 밭에 물을 대는 것을 회상한다. 하지만 가나안은 사람이 물을 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을 대신다. 가나안 땅에는 많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산과 골짜기들을 채우고 그 땅은 물을 흡수해서 식물의 뿌리까지 충분하게 물을 공급한다. “물을 흡수한다”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물이 수시로 내려와 땅이 그 물을 빨아들여 계속 수분을 공급하여 식물들이 넉넉하게 자란다는 의미이다.
    
이는 철저하게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늘에 달려있음을 듣고 깨닫게 한다. 약속의 땅에서는 “하늘 농사법”으로만 가능하다. 가나안은 하늘의 하나님이 보살펴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모세는 믿음으로 선포한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으로 연중 내내 여호와의 눈이 항상 지켜보시고 보호하시며 공급해 주시는 땅이다. 가장 안정한 하나님의 축복의 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가장 처참한 죽음의 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3~17절은 가나안 땅에서 순종하는 백성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농사법을 소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될 것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모세는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비가 내리는 시점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파종할 시기(음력 7월)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 해 농사는 나중에 많은 비가 쏟아져도 흉작을 피할 수 없다. 또 수확 직전(음력 1월)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는다면 곡식의 낱알이 제대로 차지 않아 역시 흉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충분히 주신다면 햇곡식과 새 포도주와 새 감람유를 넉넉하게 수확할 것이다. 가축들도 들판의 무성한 초목을 마음껏 뜯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신을 의지하고 가나안의 바알을 농경신으로 섬기면서 복을 빈다면 하늘의 수문이 닫힐 것이다.
    
본문은 식량을 얻기 위해 “발”을 이용하여 노동하는 것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이 “비”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셨던 “만나”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율법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약속의 땅에서는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순종해야 한다.
    
    
    
나는?
-모세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깃든 땅에서 얼마나 장구히 살 수 있느냐의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거하느냐에 달려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1, 8, 13절). 이렇게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지 않으면 언제든지 타락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하여 주시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 것을 기억해야 한다(1~7절). 출애굽부터 요단 동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놀라우신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하고 돌보신 일들 속에서 하나님만이 크고 위대하신 분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사와 자연 뒤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활동에 늘 주목해야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길에서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안목이 말씀과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과 경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을 돌보신다(8~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 가나안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하게 내려주셔서 중노동을 하지 않아도 농사를 짓게 하고 풍성하게 수확하게 하신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백성에게 적절한 은혜를 내려주신다.
    
-다른 신을 섬기는 자에게 진노하신다(16, 17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온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스스로 만들어 낸 풍요의 신들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을 본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진노 하셔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경계하고 각성해야 한다. 나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 하는 대신에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셨다. 그들의 눈으로 보게 하시고 몸에 기록하여 주심으로 잊지 않게 하셨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하고, 불순종이 가져오는 뼈아픈 결과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이 기억을 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또 다른 광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광야에서 여호와의 권능을 기억할 때 그 광야에서 보았던 큰일이 재현될 것이다.
    
*애굽은 비가 적지만 커다란 나일강이 있어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가나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산과 골짜기가 흡수한다. 하나님의 눈이 이 땅에 머무는 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 하지만 가나안은 큰 강이 없다. 하나님께서 제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지 않으시면 황무한 땅이 되고 만다.
    
*가나안이 축복의 땅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삼가하여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비를 내려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얻게 하신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면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않고 소산을 낼 수 없게 하신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구할 것은 가나안 땅과 같은 조건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바라보는 믿음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켜 순종해야 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삶을 오직 은혜로 이스라엘에게 주셨음을 기억할 것과 그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다단과 아비람이 광야에서 모세를 거역한 사건을 비교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을 하나님의 은혜와 대조하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은혜로 출애굽과 광야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면 약속하여 주신 땅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의 눈길이 항상 머무는 그곳에서 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비로 인해 풍성하게 소산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하나님만을 창조주로, 한 분이신 주권자로 모시고 사랑하는 것이다.
    
*가나안의 번영은 인간의 노력이나, 뛰어난 농업기술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함으로 얻을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우려한다. 출애굽 세대들이 광야를 지나며 보인 불신과 거역의 그림자 때문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서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다. 무엇에 달렸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기억하느냐?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선명하게 그 기억을 전수하고 계승하여 자주 상기시켜 주는지에 달려있다. 동시에 이를 듣는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또한 하나님의 경고를 뼈아프게 듣는지에 달렸다.
    
*은혜가 절로 순종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은혜가 늘 감사와 찬양의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고난은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번영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광야의 은혜를 기억하며 순종할 것인가? 풍요로움 속에 배역의 역사를 되밟겠는가? 어렵더라도 순종의 길을 붙잡고, 넓고 쾌적해 보일지라도 불순종의 길을 분별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주님, 광야에서의 은혜의 기억을, 지금 여기에서 기억하고 늘 순종의 길을 걷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나의 미래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함으로 차곡차곡 채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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