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 마음에 가득한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신 11:18-32]
 – 2024년 01월 24일
– 2024년 01월 24일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오래 거주하려면 반드시 언약 규정인 율법(토라)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삶의 전 영역에서 자녀들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에서 여호와의 임재와 함께하심을 누리는 특권을 누린다. 그런데 이 특권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이스라엘이 선택할 수 있는 순종의 길과 불순종의 길에는 각각 “축복”과 “저주”가 반드시 동반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앞서 세겜에서 그 축복과 저주를 그들 자신에게 선포하여 율법(토라)을 지킬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신명기 12장부터 본격적으로 율법이 시작되기에 앞서 모세는 마지막으로 율법 순종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손목과 미간에 두고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대대로 망각하면 안 된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으며 그들을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선포한 후 “복과 저주”를 선포하는데, 신명기 28장과 연결된다. 그리고서 모세는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며 율법에 대한 서막을 연다.
    
    
    
1. 율법 순종과 땅 약속(18~25절)
12장부터 본격적으로 율법의 내용들을 언급하기 전에 모세는 다시 한번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6:4~9의 쉐마 헌장의 일부를 반복한다. 언약 공동체의 안정은 각 가정의 율법 준수의 수준에 좌우된다. 부모들이 먼저 “이 모든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둔다”라는 것은 말씀을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18절_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이렇게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율법을 행하는 것을 지향하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깨닫고 기억하며 실천하는 말씀을 꾸준하게 말로 가르쳐야 한다(19절_집에 앉아 있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워 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활동할 때든지, 하지 않을 때든지 하루 일과 전체를 인간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순종해야 한다.
    
율법을 가르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일상생활에서 눈에 띄는 곳에 말씀을 글로 써 붙여놓는 것이다(20절). 집의 문설주에 붙여서 누구나 집 안에서 쉴 때나 일할 때, 출입할 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또 누구나 성문을 출입할 때 성문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가정뿐 아니라 성읍 전체가 말씀을 준행하며 언약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부모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지도자들은 성문에서 백성들에게 공동체 모두가 한마음으로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율법을 가르치는 부모들과 자녀들, 스승들과 제자들은 가나안에서 장수할 것이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여 장수하는 것으로 성취된다(21절).
    
    
22~25절은 율법(토라)을 모두에게 가르쳐야 할 이유를 밝힌다. “만약”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성을 다하면(22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분의 약속을 신실하게 시행하실 것이다(23절). 말씀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 모든 족속을 쫓아내고 점유하게 될 것이다(23절). 이를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과 “너희가 밟는 모든 땅”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면 어디든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차지할 약속의 땅의 범위(24절)는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남:아라바 광야, 동:레바논, 북:유브라데 강, 서:지중해, 1:7에서 모세가 이미 설명한 범위)”다. 이 범위는 출애굽기 23:30~31에서 예고된 대로다. 이 국경선은 훗날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립되었다.     
    
그런데 약속한 땅의 범위는 최초 약속의 땅과 확대된 약속의 땅으로 나뉘어 설정된다. 애초 약속의 땅은 단지 요단 서편이었다. 민수기 34:1~15에서 이 경계를 상세하게 설명한다(북:하맛 어귀, 동:요단강, 남:가데스 바네아, 서:지중해 연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 약속의 땅의 범위를 확대하여 주시겠다고 출애굽기 23:30~31에서 예고하셨다.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이 예고는 본문의 범위와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을 다 얻을 때까지 대적들을 “조금씩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출 23:30).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요단 동편은 넓은 의미의 “약속의 땅”의 범위에 들어간다. 본문은 이 확대된 약속의 땅의 경계에 들어간다.
    
    
    
2. 축복과 저주 그리고 율법 순종 요구(26~32절)
26~28절은 언약에 대한 순종에 따라 좌우될 축복과 저주를 다룬다. 축복과 저주는 가나안에 세워질 율법의 질서와 맞물려 있다. 율법을 순종함으로 누리게 될 축복은 5:1~11:25까지의 문맥에 따라 “약속의 땅의 정복과 그 땅에서의 장수(5:16, 33; 6:2; 11:9, 21)와 번성(5:33; 6:2~3; 7:13~14; 11:21)과 번영(6:10~11; 8:9~10, 12~13, 17) 누림”을 가리킨다. 이 축복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복인 먹을거리가 풍성한 삶을 전제한다(6:11; 8:7~13, 17; 11:10~15).
    
저주/형벌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이 진멸될 것(7:26)과 약속의 땅에서 장수하고 번성하지 못할 것(6:15; 7:4)이며,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는 데 성공하였을지라도 가나안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6:15; 8:19~20; 참조, 10:8; 11:6). 이와 같은 멸망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11:17)과 다양한 질병(7:15; 참조, 11:3~4)으로 인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11:17). 그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잡혀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마땅히 꾸려나가야 할 “삶”이어야 했다.
    
    
29~30절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충성 수위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원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도록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시면(29a절) 그들은 세겜의 남쪽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북쪽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해야 한다(29b절).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장소나 지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지파는 언약에 충실해야 할 책임이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모든 언약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선포하라는 의미이다.
    
세겜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이다(창 12:7). 그렇다면 가나안 땅 소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왜 세겜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해야 할까? 이는 여호수아 8:30~35과 함께 살펴보면 축복과 저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령인 율법(토라)를 실천하느냐, 혹은 실천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내려질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약속된 땅을 차지하기 전에 세겜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함으로써 언약 공동체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께 율법(토라)을 준수하고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언약식과 같은 의미가 있다.
    
    
31~32절은 이와 같은 언약에 대한 확신에 따라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책임을 다룬다. 이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데려가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29a절),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확실하다(31절). 이렇게 확실한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이 반드시 행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내놓는 모든 법도(후킴)와 규례(미쉬파팀)을 명심하여 실천하는 것이다(32절).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짐시키고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에 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들어간다.     
    
    
    
나는?
-복과 저주는 고대 사회에서 주군 국가와 신하 국가 간에 맺는 조약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형식을 빌려 복과 저주를 이스라엘 앞에 두고서 뒤이어 나오는 모든 규례와 법도(12~26장)를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판에만 새겨져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모든 행동과 생활의 지침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주어진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말씀을 서로 나누고,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함을 강조한다. 하루 일과의 모든 순간에, 어느 곳에 있든지 말씀이 눈에 띄는 곳에 있도록 해야 하며, 그것을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한다(18~21절).
    
-나는 과연 더온누리 공동체의 가정이나 교회 건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눌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받고 있는지 살펴야 함을 깨닫는다.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내게 의미 있는 분인지를 일상에서 드러내고 알리고 있을까?
    
    
-일상에서 모든 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백성에게 아무도 그들을 대적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22~25절).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자, 곧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부장한 자는 세상 권세가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주께서 주시려는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오늘 나에게 약속하신 땅을 취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길에 최선을 다해 주신다.
    
    
-축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는 하나님이시다(26~30절).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원하시지만, 그 마음과 의지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고 자발적인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 선택에서 중립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지킨다면 그 땅을 받을 것이고 적들을 쫓아내며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좇아 섬기면 가나안 땅의 모든 풍요로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침략을 당하여 그 땅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도 동일한 선택 앞에 놓여 있지 않겠는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순종하는 생명의 길을 택하고 있는가?
    
    
*가르침과 믿음의 전수 중요성을 반복한다. 광야를 경험한 출애굽 2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후대들에게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그전에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이 된 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출애굽과 광야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수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민족이 되고 말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믿음의 전수 방법이고, 대를 이은 축복의 길이다. 하나님을 배우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
    
*신명기에는 모세가 열정적으로 강조한 것 중에서 빈번하게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심으로 가르치라(4:10; 6:7; 31:13; 32:46)”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 마음에 담아 지키고 행하는 것만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가나안은 안전한 땅이 아니다. 안전은 가나안 땅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아야 한다. 국력이 커질 때 안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커질 때 안전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은 세상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을 능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축복이 있으면 저주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축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축복을 취할 수도 있고 저주를 취할 수도 있다. 누구도 핑계할 수 없고 자랑할 수 없다.
    
*이스라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말씀 앞에서 그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땅에서 받을 복을 누리는 한 가지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지키고 행하는 것뿐이다. 약속의 땅을 소유하는 기준도, 그 땅에서 임할 복을 누릴 기준도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 말고는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가 복을 소유하고 누리는 기준이다. 그 복은 단지 땅을 차지하는 것 이상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장수하며, 풍성하고 풍요로운 열매로 평안한 삶을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교훈 받아야 할 것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 말씀을 경청하며, 그가 말씀하신 것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을까?
    
*일상의 모든 상황과 여건 속에서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누리는 첩경이라면, 참된 복중의 복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복음을 소유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앉으나 서나 걸으나 뛰나 주님을 생각하여 다른 신을 담아 두지 않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고 사는 것이다.
    
    
    
    
*주님, 내 마음에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주십시오.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님, 마음에 가득한 말씀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며 행하겠습니다. 그 길이 복의 복된 길임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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