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 땅에서는 정한 대로, 정한 곳에서, “함께” [신 12:1-19]
 – 2024년 01월 25일
– 2024년 01월 25일 –
율법 순종을 여러 번 강조한 이후 모세는 12장부터 비로소 율법의 내용에 대해 강론하기 시작한다. 12~26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먼저 가나안의 우상숭배 문화와 구별된, 예배 규례와 법도를 가르친다. 십계명의 구조를 따르듯 가장 처음에 나오는 것은 제1계명에 대한 해설이다. “한 분 하나님”을 “함께” 모여 여호와가 선택하실 “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과 제단들을 소멸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에서 제사 지내며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이 단번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힘입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제1계명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듯 모세는 모든 이방 성소를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명령한다. 12장에서 반복하여 나오는 표현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으로”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장소도 한 곳이다. 이스라엘이 각기 소견대로 행하던 시기도 있지만, 신명기를 그것을 거부하고 “한 장소”에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명령한다.
 
 
 
1. 한 하나님과 한 장소(1~7절)
1~7절은 약속의 땅에 언약 질서 확립을 위한 기본 규정을 설명한다. 먼저 1절은 가나안에서 실천할 삶의 지침을 선포한다. 이것은 평생 곧이 새겨들어야 할 “규례와 법도”다. 율법 준수는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생에” 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기준이 된다. 율법 순종이 가지는 의의는 “애굽에서의 삶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언약적 행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법들을 26장까지 자세하게 제시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땅 곳곳에 설치된 우상 제단을 파괴하고 각종 주상과 아세라상과 조각 신상들을 부수고 불사르는 일이다(2~3절). 가나안 민족들이 누린 종교와 문화의 근간이 된 제단들과 신상들을 제거하는 것은 가나안 땅을 정화하고 새 질서를 세워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가나안 민족들은 신상에 그들이 믿는 신이 내주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활함으로 가나안 땅과 자신들을 타락한 종교 생활로 더럽혔다(레 18장).
 
“높은 산, 언덕, 무성한 나무 아래”는 이방의 성소와 제단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가나안 지방의 제의 처소는 돌이나 벽돌로 지은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2절 원문은 “완전히 파멸하라(아베드 테아베둔)”는 명령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반복하여 “반드시 파멸하고, 철저히 파멸하라”고 요구한다. 3절에서도 “헐라, 깨뜨리라, 불사르라, 찍으라, 멸하라” 같은 명령 동사가 이어진다. 이방 신들의 제단들을 비롯하여 그곳에 세워진 주상(돌기둥), 아세라 목상, 조각된 신상들을 부수고 찍어내고 불살라야 한다. 그 이들들을 지워서(3절),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남게 해야 한다(5절).
 
5절부터는 하나님께서 합법적인 예배 장소를 지정하신다. 사람들이 지정한 곳은 불법 장소로 간주하고 “오히려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지파 가운데 그분의 이름을 두고 그분의 거처를 삼으려고 택하신 그곳으로 찾아 나아가(새번역_5절)” 제의를 드리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이 어디인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히브리어 원문은 “택하신 곳(하마콤)” 정관사를 비롯하여 단수로 기록되어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한 장소를 가리킬 것이다(왕상 8:44). 5절의 직역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곧 자신이 거기 거하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라”이다. 따라서 그곳은 어떤 형상이 있는 곳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곳”에서만 제의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6절은 이렇게 정한 곳에서 드려야 할 제물의 일곱 형태(희생제물, 십일조, 거제, 서원제, 낙헌제, 소와 양의 첫 태생)가 설명된다. “일곱”이라는 숫자를 통해 “모든” 제물을 이곳으로 가져와야 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여호와께 바쳐진 제물은 제물을 바치는 자와 그의 집에 거주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즐거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택하신 그곳”에서 여호와께 드려지는 제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축제의 성격을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다.
 
 
 
2. 가나안 정착 이전과 이후(8~12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자기 소견대로 살았다. 이런 생활 양식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없다. 광야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드렸으나(8절) 가나안 땅에서는 여호와의 제단이라 불린 곳에서만 봉헌물을 바쳐야 한다. 성막을 완성한 직후 레위기 17장에서는 사적인 제단의 불법적인 운영을 강력하게 금지하며 경고한다(레 17:1~9). 성막이 존재한 광야에서는 광야의 상황 때문에 사적인 제단에 제의를 드리는 관행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다시 애굽에서부터 지켜온 관행을 따라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를 통해 가나안의 거짓 신들과 그들의 우상들을 따라갈 위험이 컸기 때문에 모세는 조상들의 오랜 관행을 철저하게 금지하면서 “지정된” 성소에서만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정된 성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그 이름을 두실 곳이다. 그곳에서 속죄의 목적으로 가장 많이 드리는 번제(레 1:4), 희생 제사(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십일조, 또 거제물과 서원예물이다. 또 번제, 속죄제, 속건제를 제외한 모든 예물 일부를 예배자와 그의 가족들이 누리는 “식사”가 제의에 포함된다(12절). 이때 각 성읍에 사는 레위인은 기업으로 받은 땅이 없으므로 초청하여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언약 공동체의 기본 질서이다.
 
 
 
3. 금지 명령과 허락 명령(13~19절)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이는 가나안 사람들이 신들을 섬기던 모든 장소도 포함된다)” 번제를 드리며 여호와를 예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13절). 가나안 땅은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 질서가 새롭게 확립되어 가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께서 택하실 장소에서만 번제를 드리고 명령하신 모든 것을 행하여야 한다(14절; 참조 5절).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되면 그들의 거주지에 성막이 있었던 광야의 상황과 확연하게 달라진다. 12지파가 요단 동편과 서편에 퍼져 살게 될 것이므로 특히 고기를 먹고자 할 때는 각 성읍에서 가축이든 사냥감이든 자유롭게 잡을 수 있게 하였다(15절). 단, 식용을 위해 고기를 잡을 때 정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 먹을 수 있으나 피째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 피는 물처럼 땅에 쏟아야 한다(16절). 가축의 피는 죄를 범한 이가 회개한 후에 그의 속죄를 위해 여호와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생 제사를 위한 도살은 반드시 앞으로 “택하실 성소”에서만 해야 한다(14절).
 
 
제물로 드려지는 도살뿐 아니라 각 집안이나 성안에서 먹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소로 가져가야 하는 네 가지 예물들도 설명한다. 먼저 땅의 소산물과 가축의 십일조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돌보아 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신 8:3)”라는 존속 원리와 관련이 있다.
 
둘째, 서원예물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각 개인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면 하나님께 어떻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을 드리는 것이다(민 21:2; 삼상 1:11). 셋째, 낙헌예물이다. 낙헌 예물은 문맥상 땅의 모든 소출에 풍작을 주시고, 가축을 번성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예물이다(출 35:29). 넷째, 거제물이다. 거제물은 각종 거룩한 예물에서 제사장들이 성전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양식으로 드리는 예물이다(민 5:9; 15:19~21; 18:8; 대하 31:10; 느 12:44). 17절의 “네 손의 거제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고한 땅과 가축의 소출을 가리킨다.
 
이 네 가지 예물이 가지는 공통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수고하여 누리는 모든 소산물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을 인정하며 드리는 예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기억할 것은 이 예물들을 드리고 난 후 예배자가 초청한 사람들이 나누는 즐거운 식사인데,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즐기는 ‘언약 만찬’으로 공식적인 제사(예배)의 일부라는 점이다(18~19절, 참조 7절).
 
예배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함으로써 그분과의 언약 관계를 갱신하고, 지속해서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의식으로 여기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새 힘을 얻게 된다. “너희는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단것을 마시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도 나누어주어라. 오늘은 우리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니 너희는 슬퍼하지 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 될 것이다.”(새번역_느 8:10)
 
이렇게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의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는 것은 아마도 희생 도살을 지정된 성소로 제한하여 불법한 성소의 우상숭배가 유입되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는?
-12장부터 26장까지는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린다. 율법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를 다루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율법 순종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의 바탕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말씀을 순종하고 방식을 따라야 한다. 신명기는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원리와 이에 담긴 의미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성경이다. 원리를 잊지 않으면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게 하신다(4~18절). 수많은 장소에서 자신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던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과 달리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만 정해진 규례대로 거룩하게(구별하여)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셨다. “택하신 곳”은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보전케 하고, 열두 지파로 분할된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숭배 하던 곳들을 허물고, 우상들을 불태우고, 주상을 깨뜨려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단 한 곳에 제단을 쌓아 예배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훗날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는 이유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을 “함께” 경외하기를 추구하고 있는가? 내가 좋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이 참된 예배의 시작이다.
 
 
-가나안 땅에서의 모든 삶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15~19절). 희생제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만 잡아야 했지만, 식용 짐승은 자기 거주지에서 마음대로 잡아도 무방했다. 단, 짐승을 죽일 때는 먹기 전에 피를 완전히 다 쏟아야 했다. 이는 생명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강조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장소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도 관심을 두신다. 일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삶의 자연스러움이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감사 제사는 온 가족과 온 공동체가 그 즐거움을 누리는 제사(7, 12, 18, 19절)임을 깨닫게 된다. 예배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연합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드리는 제사에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레위인도 함께 제사를 즐기도록 배려해야 했다. 이 말씀의 중심 원리는 “공동체 중에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제사한 후 고기를 먹음으로 온 가족이 즐거워하라는 명령은 오늘날 예배와 교제를 의미 있게 되돌아보게 한다. 우상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신 구체적인 방법이 “잔치”였다. 자녀들은 물론이고 노비까지 그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이는 제사가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축제로 즐기도록 마련하신 것임을 깨닫게 한다. 공동체성을 일구기 위해 함께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식구(食口)란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괜히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함께 웃고(예배드리고), 함께 먹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족, 식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홀로 드리는 예배에 만족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내 가족과 이웃들, 공동체가 함께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나는 함께 밥 먹을 교회 식구를 두었는가?
 
-또한 레위인을 챙겨서 같이 잔치에 참여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레위인 에게는 따로 기업이 없다. 그래서 따로 신경을 써서 챙겨주어야 한다(19절, 저버리지 말라). 그들이 제사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생계를 잘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타협이란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온전함으로 자신을 섬기는 일에 전혀 다른 여지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 어떠한 다른 신들을 하나님 앞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의 믿음과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계명은 확실하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서 그 땅 족속들이 섬기는 여러 신들을 만나게 될 것을 백성에게 다시 한번 경고한다.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신들을 겸하여 섬길 수 있는 여지는 단 1%도 내어주지 않으신다. 가나안의 신들은 그들을 구원한 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하나님은 “홀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출 3:14)”이시다. 오직 여호와뿐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계명은 “이집트에서 너희를 구원해 낸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섬기고 순종하는 것(신 5:6~11)”이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장소를 제거해야 한다. 각종 우상들은 완전히 멸해야 한다. 온전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100%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인생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증표이다. 이방신 제단과 우상을 두고 산다는 것은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식대로, 명령하신 것을, 명령하신 곳에서 드려야 참 예배로 인정하실 것이다.
 
*각기 소견대로 행하였던(8절) 광야의 습관을 따르면 안된다. 정한 대로, 정한 것을 정한 방식으로 드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주시려고 택하실 그곳”(11절)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 제사는 지금 누리는 복의 결과를 표현하는 것이지 복을 얻는 원인이 아니다. 그래서 은혜로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분의 구분이나 상태의 구분이 없다.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한다(15절). 종이나 레위인 모두가 함께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은 이웃 사랑을 통해 더욱 즐겁고, 폭넓게 나누어져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겸손한 반응이어야 한다. 아무리 드려도, 어떻게 드려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 예배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 반응을 “내 소견대로”가 아닌, “정한 대로(바치라고 한 것만, 바치라고 한 날에, 바치라고 한 방식대로, 바치라고 한 사람을 통해)” 그때의 예배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즐거움이 된다.
 
 
*평생 지켜 행하여야 할 신앙의 도리(道理)는 이렇다. 먼저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 모든 우상제단과 우상들을 철저히 제거하라, 내가 편하고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제사를 드려라. 그것은 “자기 이름을 두려고 택하실 그곳”에서 드리라고 정한 제물을 드리며, 어느 누구도 배제하거나 차별이 없이 함께(자녀, 노비, 레위인) 즐거워하며 드리라는 것이다.
 
 
 
*주님, 내 안의 우상을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여전한 욕심이 불러오는 내가 만들어 내는 우상이 없는지 살피겠습니다.
*주님, 정하여 주신 대로 “함께” 예배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공동체에 즐거움의 잔치가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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