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가나안의 삶, “함께”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신 12:20-32]
 – 2024년 01월 26일
– 2024년 01월 26일 –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점차 그 땅을 소유하여 거주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행해야 할 것과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고기를 먹는 규정, 제물과 성물을 드리는 규정을 언급한 후 계명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실지를 말한다. 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가나안 민족을 진멸하라는 명령도 주신다.
 
제사를 정한 곳에서만 드리도록 한 것은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 그중에서 일반적인 도축은 중요한 변화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일반 도축의 허용은 또 다른 염려를 일으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을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동물의 부위 중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모세는 그것을 가르쳐야 했다.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세속 도축을 허용함과 동시에 무분별하게 도축이 될 수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동물을 언급한다. 신명기 14장에서 이와 관련하여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또한 모세는 정한 짐승이라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부위와 먹어서 안 되는 것을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간략하게 언급한 후에 다시 “택하실 그곳”에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가져가서 드려야 함을 반복 강조한다. 29~32절은 또다시 이방신 숭배 금지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것이다.
 
 
 
1. 네가 고기를 먹고자 하면(20~28절)
20~25절은 고기를 먹는 규정에 대해 언급한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점차 지경이 넓어질수록 중앙 성소로 인해 생기는 부수적인 변화에 대해 언급해 주신다. 그것은 고기를 먹고자 할 때 도축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기를 먹고자 할 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20절).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이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각 성에서 가축을 잡아 마음껏 먹을 수 있다(21절)고 하셨다. 이때는 정한 자나 부정한 자가 모두 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22절), 짐승의 생명인 피는 땅에 쏟아야 한다(23~24절). 이에 대한 이유로 25절은 피를 고기와 함께 먹지 말라는 규정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누릴 번영과 연계되고 있음(25절)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언급하는데, 어느 곳이든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작정한 곳으로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의 예루살렘으로 기준으로 보면 단(갈릴리 북쪽)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걸어와야 했다. 고대 사회에서 도축은 일반적으로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이렇게 되면 육식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본문은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라고 하여 일반적인 도축을 허용하고 있다. 20절의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라고 번역된 마음(네페쉬)은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지경이 넓어져서 멀어진 “택하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이에 따라 삶의 패턴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앞서 육식 문제를 서술했음에도 다시 언급할 정도로 도살 문제는 중요한 것이었다(15, 20, 21절). 거주지가 “택하실 그곳”에 서 멀다면(21절), 일반 도살은 명령한 대로 “너의 성읍”에서 하되 “피를 완전히 쏟아낸 다음”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26~27절은 제물과 성물을 드리는 규정을 다시 언급한다. 11~13절과 17~19절의 내용을 보충하는 성격을 띤다. 번제와 시원 제물을 드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성물(코데쉬)은 번제를, 서원 제물(네 대를)은 제물을 가리킨다. 성소에서 번제를 드릴 때 피는 “제단 위에” 부어야 하는데(27절), 이는 불판 위에 피를 붓는 의미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서 제단 주변에 뿌리고 양푼을 들고 제단에 가서 제단 사면 벽에 끼얹어 뿌린다는 뜻이다(레1:5; 3:2; 7:2).
 
 
28절은 1~27절 단락을 마무리한다. 특히 “여호와의 눈(목전)에 옳은 것”을 강조한다. 모세의 명령을 이해하여 삶에 실천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앞에서 선과 의를 행하는 삶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택하실 장소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의 땅 전체에 해당하는 까닭은 “그분의 눈”이 항상 그 땅 위에 머물기 때문이다(신 11: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땅의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지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라는 약속은 언약에 충실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복(야타브)”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누릴 번성과 번영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개인적이나, 국가적으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레 26:3~13; 신 28:1~14)이라는 의미이다.
 
 
 
2.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29~32절)
모세는 우상 숭배가 유입되지 않도록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 문제를 다룬 후에 다시 한번 가나안 우상들의 위험성을 언급한다. 29절은 여호와께서 가나안 주민들을 멸절하실 것을 확언하는 것인데, 12:2~3절과 관련이 있다. 12장은 이방 성소의 파괴로 시작하여 이방 신 숭배를 금지로 마무리된다. 이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를 어길 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13장에서 설명한다.
 
29절은 “그가 멸절하실 것이다(야크리트)”로 표현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과정은 일회성의 전쟁으로 평정되지 않고 지속해서 그 땅을 차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신들의 자취를 고수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신을 찾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30절). 그렇게 되면 스스로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소멸하여 갈 것이라고 했다.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 앞에서 한 짓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꺼리시는 “혐오스러운 것(토에바)”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마저 불살라서 바친 자들이었다(31절). 고대 근동의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생의 불확실성 가운데서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 저승 신인 몰렉에게 자녀를 불살라 바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 가나안 사람들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모세는 가나안 신들에게 호기심을 품지 말라고 단단하게 경고한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보면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긴 풍요와 번영을 주관하는 그 땅의 신들, 곧 바알과 아세라에 주목하여 그 신들을 탐구하지 말라는 것이다(30절). “탐구하다(다라쉬)”라는 “면밀하게 알아본다”라는 뜻으로 가나안 신들에게 매료되어 심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라며 가나안의 제의 의식과 신학에도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백성의 올무가 될 것이다. 올무(덫)에 걸리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가나안 사람들은 올무에 걸려 심지어 자녀 희생 제사까지도 불사하며 그 신들을 섬겼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는 가증한 일, 혐오스러운 일(토에바)이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신을 섬긴다면(아바드), 그들은 여호와가 “가증히(토에바)” 여기는 것도 행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여호와는 결국 이스라엘을 멸할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을 “가감하지 말라”고 말한다(32절). 이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가나안 민족들과 같은 운명을 겪지 않으려면, 모세가 제시한 제1~3계명의 원칙에 근간을 둔 규정들을 임의로 변경하지 말고,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32절).
 
 
 
나는?
-제1, 2계명에 대한 해석과 적용으로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식으로 예배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가나안의 풍습과 우상 숭배를 따라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먹는 즐거움을 배려하신다. 이스라엘이 수고한 결실을 마음껏 누리게 하신다.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부정한 자나 정결한 자 모두 잡아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피는 생명을 가리키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금하신 경계 안에서 그들은 즐거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피를 먹지 말라(20~25절)는 조항이 인간의 먹는 즐거움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는 먹기 위한 짐승도 오직 회막에서만 잡게 했었다(레 17:3~6).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성전과 거리가 멀고 불편한 사람들에게 각 성에서 고기를 잡아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즐기기를 원하신다.
 
-피를 먹는 행위는 이방신을 믿는 가나안 족속들의 행위이고 또한 피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나아가 구속 역사에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속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기에(히 9:22) 금지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 하나님 안에서 즐겨야 한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생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성물과 서원물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가지고 가게 하셨다(26~28절). 자신이 먹을 고기가 아니고 주님께 드리려고 생각했던 것은 마땅히 주님의 전으로 가져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신다. 나의 삶 속에서도 마땅히 주님께 돌려야 하는 것을 잘 돌려야겠다.
 
 
-멸망한 자들의 자취를 따르지 않도록 경고하신다(28~32절). 가나안 족속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심지어 자녀들을 불살라 제사를 드리는 등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을 하다가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들의 행위를 본받지 않도록 금하신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정신에 물들지 않도록 금하시며, 이들의 종교에 관해서 연구하는 것조차 금하신다.
 
-단순한 호기심에 해가 없어 보이는 행위를 따라 하다가 결국 이들이 밟아 간 과정대로 멸망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악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나를 멸망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때에 세상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 그 관심이 멸절당할 가나안의 뒤를 따르는 길이 될 수 있다. 가나안은 정복의 대상이지 복종과 추종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정한 자나 부정한 자나 어우러지는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끌어내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애굽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약속의 땅은 다르다. 그 땅에서는 모든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차별 없는 생명의 나라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가나안은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살고 있다. 바알이 땅의 주인임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성적인 타락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알 신앙은 생명을 이용할 수 있는 부류와 이용당할 수 있는 부류로 나누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니, 그 피를 땅에 쏟으라고 명령한다. 땅에 피를 쏟는 것은 곧 생명이 창조주께 속해 있으며, 인간이 서 있는 모든 땅은 신성하고, 창조주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고, 모든 곳,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억하고 선과 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25절).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들의 방식대로 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가나안 사람들은 종교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린 자녀들의 생명까지 희생하셨다.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사람보다 선과 의를 실천하는 자(25절)를 찾으신다.
 
 
 
*주님,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방식을 고수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말씀을 더욱더 집중하며, 세상 방식을 탐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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