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명령_십일조 [신 14:22-29]
 – 2024년 01월 29일
– 2024년 01월 29일 –
이스라엘은 해마다 수고한 토지 소산물의 십분의 일과 가축의 맏배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먹으며 매 삼 년에 드리는 십일조와 함께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분배해서 그들이 배불리 먹도록 해야 한다. 십일조에 대한 문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매우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성읍”에 드리는 십일조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신명기 본문에서 두 차례나 나올 정도로 중요한 이슈이다(14:28~29; 26:12). 왜 모세는 신명기에서 십일조에 대해 두 차례나 언급했을까? 가나안 사람들은 비의 신 바알과 다산의 신 아세라가 풍요와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이런 세계관에 물들지 말고, 가나안의 기후와 땅의 소출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통제 아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존재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리는 축복의 근원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고백을 십일조를 드림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풍요를 누리길 원한다면 오직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생명이 여호와의것임을 고백하는 예물이다.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 여호와께 매년, 또한 삼 년마다 농산물과 가축의 수확에서 십분의 일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농산물의 십일조와 가축의 맏배를 드리는 절기는 공동체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하기는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난다. 신명기 법전의 서두(12:1-19)와 끝(26:15)이 예배에 대한 가르침으로 채워진 것은 이런 구도 때문이다. 그러나 신명기 법전에서 하나님 사랑하기는 이 땅에 공의를 펼치는 청지기 직을 실현하는 것으로 구체화한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를 세우도록 부름을 받았어도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공의가 펼쳐지지 않으면 그 나라는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 사회가 될 수 없다. 공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의와 공평이 물 같이 흐르는 사회를 통해 이웃 사랑은 완성된다.
 
절기에 대하여 가르치는 14:22~16:17의 내면은 공의와 실천에 관한 내용이다. 이와 같은 정신을 십일조 규례(14:22~29)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본문이다.
 
 
 
1. 십일조에 대한 규례(22~27절)
십일조는 매년, 그리고 매 삼 년에 드린다. 그 햇수는 안식년을 기점으로 이해된다. 첫 번째,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해에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장소에, 세 번째와 여섯 번째 해에는 지방 각 성읍에 드려졌다. 안식년인 일곱 번째 해에는 땅을 묵히고 경작하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가 없다.
 
 
22~23절은 모든 수고의 십일조를 내라고 명령하시는 부분이다. 십일조 규례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애굽의 장자와 가축의 맏배가 죽는 열 번째 재앙으로 이스라엘과 그들의 가축이 출애굽을 했다. 출 13:11~16에 따르면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는 여호와의 것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에 대한 바로의 종주권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하고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모든 민족 가운데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이 되었다(출 19:5~6). 따라서 이스라엘의 생명과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며 매년 드리는 “십분의 일(22절)”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담아내는 대표성의 의미가 있다. 또한 성소에서 십일조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잔치는(23절), 씨를 뿌리고 수확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날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가는 모든 과정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그분의 임재안에서 즐기는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라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수고의 대가가 언약의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고백하는 축제가 된다.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의 행위는 십일조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그분을 두려워하며 존경하기를 삶 속에서 지속해서 익혀갈 수 있다(23절).
 
 
24~26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가 성읍에서 먼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언급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가 성읍에서 먼 경우에는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 가서 곡식과 동물을 사서 그곳에서 먹어야 할 정도로 모든 소유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의 임재 안에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십일조 규례의 기원이 이스라엘의 존립과 연관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십일조는 반드시 드려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27절은 십일조를 드리는 예배자는 십일조의 축제 자리에 가족들만이 아니라 레위인 들을 동참시킬 것을 명령한다. 이 명령과 십일조는 사제들의 몫이라는 민수기의 십일조 법을 따라 일부를 먹고 즐긴 뒤 남은 모든 십일조 품목은 사제들의 몫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2.각 성읍에 비축하는 삼 년째의 십일조(28~29절)
매 삼 년째 마지막에 거두는 모든 소산물의 십일조는 성안에 모아서 레위인과 성 중에 거류하는 나그네와 고아, 과부에게 분배해야 한다(28~29절). 이때 성안의 십일조를 받을 수 있는 레위인은 열두 지파 가운데 흩어져서 백성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레위인이다. 성중에 거하는 나그네는 이방인이었지만 이제는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호와를 믿는 자다. 그러나 경작할 땅이 없었기에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 경험한 여호와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또한 고아와 과부 역시 언약 공동체의 언약적인 성실함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소유이며 왕으로 통치하시는 제사장 나라(출 19:5~6)이다. 그러므로 각 성읍에서는 그분을 믿는 이방인, 또 고아와 과부의 생계에 필요한 것을 채워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동물에게도 충분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땅이다. 그 좋은 땅에서 그분께 속한 언약 공동체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자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삼 년마다 십일조를 거두어 기업이 없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을 대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된 이스라엘에게는 당연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정기적으로 드리는 것은 그들의 생계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체험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매 삼 년에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모든 이들이 그들과 같이 물질의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된다.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인 수단이 없는 고아나 과부, 나그네(게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갈망하고 의존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순종함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지속해서 경험하여 번영이 유지되게 된다(29절).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고 경외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십일조를 가르치신다(22~2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모든 소산의 십일조를 매년 정하신 곳에서 드리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모든것을 주셨음을 감사하게 드러내야 했다.
 
-모든 생명과 수확의 십일조는 생명과 수확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고백하는 의미이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주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창조주임을 인정하고 그분을 경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일조는 한 해 자신이 소출한 모든 것(곡식, 과일, 기름, 소 혹은 양)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으로 단지 10% 드린다는 형식적 의미가 아닌, 하나님을 내 삶에서 첫째로 둔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또 첫 부분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의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규칙적으로 드린다는 것은 내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드리며 내가 가진 것이 누구의 것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만든다.
 
 
-이와같은 십일조는 괴롭고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의무이다(22~27절). 하나님이 곡식을 심고 거둘 수 있는 땅, 그것들을 경작할 수 있는 힘, 그것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해와 비를 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고백의 기회였기에 십일조를 드린 후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며 즐거움을 나누도록 하셨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고 그것을 먹고 즐거워하는 잔치를 벌이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많은 것을 소유하여야 즐거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할 줄 알고, 내 수고와 노력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인정할 때 참된 만족이 있다는 것을 이 잔치를 통해 가늠하며 누릴 수 있게 하셨다.
 
-십일조를 먹고 누림으로써 나머지 ‘십분의 구’ 역시 내 소욕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답게,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어울릴 수 있도록 더불어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삶은 개인 삶의 의무로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돌아보는 공공의 삶을 요청받는다. 모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소득에 대해서 하나님의 우선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표시일 뿐 아니라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삼 년마다 분깃이 없는 레위인이나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 추가로 십일조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자신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셨다. 곤경에 처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나와 우리 공동체는 이 즐거운 의무를 잘 감당하고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을 인정하는 자들은 자기 배를 채우는 데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또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땀과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게 돌보아 주신 사랑에 반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에서,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지시하는 내용으로 드리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훈련하게 하셨다. 인간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죄는 불순종이다. 그런데 불순종은 교만에서 나온다.
 
*자신의 모든 삶이 자기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졌다고 믿으며, 그것을 임의로 사용하는 교만이다. 십일조 명령에 대한 자기 해석과 자기 적용이 자연스러운 이 시대, 신명기의 원칙적인 명령은 꼼꼼히 되새겨 보아야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방법일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날은 축제였다. 기꺼이 베풀며 함께 즐거워하는 자리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산물로 가족과 이웃, 레위인들과 즐겁게 기뻐하며 누리라고 하셨다. 놀랍지 않은가? 의무에 치우진 십일조는 속박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인도하심을 기뻐하는 이들에게 십일조는 축제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나안뿐 아니라, 온 세상 민족들에게 전파되기를 바라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때 지속적인 복을 부어주시고 더욱 풍요롭게 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사명으로 살아가는 삶은 시간과 물질이 낭비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9절) 라고, 약속하셨다. 나는 이 약속을 믿는다. 고로 십일조의 삶을 기꺼이, 즐겁게 드리고 누리며 산다.
 
 
 
 
*주님, 십일조 명령에 깃든 주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치가 기쁩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로 읽힙니다. 더욱 순종하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