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복을 받았으니, 복을 나누어라 [신 15:1-23]
 – 2024년 01월 30일
– 2024년 01월 30일 –
본 장은 면제년 규정을 다룬다. 면제년은 이웃과 채권 관계를 면제하는 해를 가리키는데, 신명기 14:22 이하와 연결된다. 또 히브리 종 해방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종을 해방할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는 규정이다. 이 규정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원칙(1~18절)과 가축의 맏배(처음 난 것)를 드리는 규정(19~23절)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과 그에 부합하는 책임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누가 생계가 어려워 빚을 진 경우에 채주인 다른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준다(1~11절). 또한 빚을 갚지 못해서 남자나 여자가 종으로 팔릴 경우,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그 종도 자신과 함께 여호와의 종주권 아래 동등한 언약 신분을 누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이에 따른 규정을 지켜야 한다(12~18절). 가축의 맏 배(처음 난 것)에 관한 규정(19~23절) 역시 언약 사상을 근간으로 해석해야 한다.
    
    
    
1. 안식년의 초막절과 관련된 규정(1~11절)
면제가 선포되는 매 칠 년 끝(1절)은 초막절이다(신 31:10). 안식년과 초막절이 공유하는 사상은 면제 선포와 관련된다. 땅을 묵히는 것은 땅을 모든 수고에서 면제하여 쉬게 하는 것이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구출되어 광야에서 40년간 유랑하는 동안 장막에 살면서 여호와의 보호와 공급하심을 경험한 역사를 기억하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하는 절기이다. 매 칠 년 끝 초막절은 토라를 공식적으로 낭독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확인하여 충성을 새롭게 다짐하는 언약 갱신이 범국민적으로 이루어진다(신 31:10).
    
    
2~4절은 면제의 규정과 준행 결과를 다룬다. 담보를 받고 빚을 내준 자는 매 칠 년 끝 초막절에 꾼 자에게 빚 자체를 면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단서 조항이 있는데 상업상 체류하는 이방인(노크리)에게는 상환을 독촉할 수 있다(3절). 이 규정의 목적은 이스라엘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게 하기 위함이다(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차지하라고 주신 땅에서 이스라엘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기에 이 목적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이다(4b절).
    
    
5~6절은 면제 규정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다. 가난한 자가 없을 것 이라는 표현은 가난의 종결을 의미하기보다 가난을 감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이스라엘이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 것(6절)이라는 약속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생존을 위한 물품을 수입하지도, 자본을 빌리지도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의 신분에 부합하도록 다른 구성원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생계에 위협이 없도록 배려할 때 공동체적인 연대성이 탄탄해진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존속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보호하셔서 번영하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최선을 다해야 할 유일한 덕목은 오직 삶의 지침인 “토라(율법, 말씀)”를 준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하신 언약의 의무와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실 것이다.
    
    
7~11절은 가난한 형제를 향한 자세를 가르친다. 식량이 필요한 궁핍한 형제가 생계를 이어가도록 꾸어 줄 수 있는 자는 매정하고 인색한 마음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7절). 오히려 “넉넉하게(네 손을 활짝 펴서)” 무엇이든 필요한 대로 꾸어 주어야 한다(8절). 면제년이 다가온다고 해서 꾸어 줄 수 있는 자가 궁핍한 형제를 외면하고 꾸어 주기를 거절하면 안 된다(9a절). 궁핍한 형제가 그를 하나님께 호소하면 꾸어 줄 수 있는 자에게 죄(헤트)가 되기 때문이다(9b절). 모세는 이 죄는 여호와를 대적한 행동이고 언약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한 자에게 언약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불순종에 따른 여호와의 처벌이 따른다.
    
이 처벌의 영향은 문맥상 개인적,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타날 수 있다(5~6절 참고).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각 구성원과 협력하여 연대 책임을 지는 것은 사회적인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아니다. “가진 자가 가난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10~11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소유물과 재산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것임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2. 팔려 온 종을 위한 규정(12~18절)
12~14절은 동족/형제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를 종으로 산 주인은 그 종을 육 년 동안 부리고, 칠 년째에는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고 명령한다(12절). 그 종을 내보낼 때는 빈손으로 내보지 말라고도 명령한다(13~14절). 이는 그 종이 주인과 함께 보내는 동안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셨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에 상관 없이 주인과 종은 동일하게 언약 백성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에(레 25:42, 55)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소출을 함께 누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15절은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서술한다. “당신들이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한 것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거기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이러한 것을 당신들에게 명하는 것입니다.” (새번역_15절) 이스라엘이 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애굽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량(구속)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과 자신들의 장자 생명을 값으로 치르고 구출된 백성이다. 생명을 담보로 구출 받았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16~18절은 히브리 종이 아닌 경우 영구적으로 종으로 부릴 수 있으나(레 25:44~46), 이스라엘 사람은 영구적으로 종으로 부릴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종으로 자신을 판 자는 희년에 그의 자녀들과 함께 자유롭게 된다(레 26:39~41, 54).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면 주인을 영원히 섬길 수 있다(17절) 라는 원칙도 희년까지만 유효하다.
    
종으로 육 년 동안 섬긴 노동을 값으로 환산하면 품꾼이 받는 삯의 두 배가 된다(18a절). 이는 종과 주인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왔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주인이 종을 후덕하게 대하면 여호와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18b절).
    
    
    
3. 가축의 처음 난 것에 관한 규정(19~23절)
가축의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활용해서는 안 된다(19절; 참조, 신 12:6~7, 17~18; 14:23).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해마다 처음 난 것을 드려야 하는데, 그 제사에는 예배자의 전 가족이 참여해야 한다(20절).
    
처음 난 것을 제사로 드리며 먹는 만찬은 그들의 소유와 생명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의미와 함께 일상의 삶에서 언약의 가르침인 토라를 성실하게 실천하여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류가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흠 있는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수 없으나(20~21절), 성안에서 피는 땅에 쏟고 고기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다(22~23절).
    
    
    
나는?
-하나님은 면제 해의 규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나누고 돌보게 하시고 이를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닮아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시고 가난한 자가 없도록 복을 주신다. 이 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도록 섬김과 나눔의 삶을 요구하신다.
    
    
-은혜와 빚 면제…. 칠 년째가 되면 모든 빚을 탕감해 주라고 하신다. 약속의 땅에서는 적게 누리든 많게 누리든 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축복을 결정하기에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것 없이도 잘 살게 하셨으니, 앞으로도 그 빚을 받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으라는 것이다. 한편 여태 갚지 못했으면 앞으로도 갚지 못할 터이니 괴롭게 하지 말라는 의미도 되겠다.
    
-칠 년째가 되면 노예로 있던 지체들을 해방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셨던 은혜를 그들도 일상에서 베풀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종이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살게 하라고 하신다.
    
    
-처음 난 것을 바치라는 명령에는 하나님께 온전한 것을 바쳐야 함도 포함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짐승을 제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완전하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온전함으로 드리는 것은 사람에게도 요청된다. 나 자신이 더럽고, 추하고, 죄로 얼룩져 있다면 온전한 제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먼저 난 것을 드려야 한다. 흠이 있어서도 안 된다. 절거나 눈이 먼 것도 안 된다.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의 신앙, 우리의 감사,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 곧 예배이다.”
    
    
*본문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복을 받았으니, 복을 나누어라.” 일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복의 관점으로 15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선명하게 깨달아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을 누리려면 새로운 질서를 수용해야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빚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칠 년마다 이웃에게 꾸어 준 빚을 조건 없이 면제하면,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5절). 이웃의 빚을 면제해 주면 가난한 자가 공동체에서 줄어들고, 여러 나라에 꾸어 줄 것이며, 여러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라고 하셨다.
    
*나누어 주면 모든 일에 복을 받는다.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 손을 펴라고 말씀하신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꾸어 주라고 하신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10절). 집에 있는 종을 풀어줄 때 주인이 받은 복을 그에게 주면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까지 하신다(18절).
    
*15장은 “복을 빌기보다, 복을 나누라고, 복된 일을 행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행복(行福) 신앙이다. 하나님은 인생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것도 모든 일에 복을 주기를 원하신다. 반드시 주시겠다고 확언까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복을 나누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 그것을 복 받는 길로 정하셨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하나님께 꾸어 드리고 못 받는 것은 없다.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 자체가 복이다(14:1).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여호와의 성민이라는 사실이 복이다(14:2). 무엇보다 우리도 죄의 삯을 면제받은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도 빚을 면제해 주며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다.
    
    
*분문에서 특히 눈길이 멈추는 구절은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새번역_15:1~2)이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취하는 태도가 압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아니겠나!
    
*빚을 면제해 줄 때와 가난한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와 자세는 너그러워야 한다. 거지를 구제할 때도 인격적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사람을 존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와 관련하여 면제년에 빚을 감면하는 일과 종에게 자유를 주는 행위는 이스라엘의 구원, 곧 출애굽 사건과 맞닿아 있다(15절).
    
*종에게 자유를 주어 보낼 때는 빈손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 ‘넉넉하게’ (14) 주어야 했다. 만일 면제년에 빚을 탕감하지 않거나 6년 동안 일한 종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부정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일원이기를 거부하는 행위이다. 하나님 은총 없이 살겠다는 심보이다. 이와같은 모습을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는 왜 보지 못할까?
    
    
    
    
*주님, 가늠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으니, 주님의 이름을 따라 주님의 은혜와 복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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