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스라엘의 왕은? [신 17:14-20]
 – 2024년 02월 02일
– 2024년 02월 02일 –
왕에 대한 규례이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려거든 어떤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는가? 왕의 자격부터 시작해서, 왕이 금지해야 할 것과 의무를 서술한다.
 
성경은 왕정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주는가? 왕권에 대한 성경의 첫 번째 언급이 본문이다. 문맥상 신 16:18~18:22까지 소위 “공직자 법”의 일부에 속한 본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공직자 법이 가장 먼저 “왕”을 언급하지 않고 재판관을 언급했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본문에서는 왕의 의무에 대한 서술보다 “왕의 금기”를 먼저 언급한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이는 왕의 권한에 대한 철저한 견제의 시각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왕의 권한과 특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기에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오늘날의 삼권 분립과 같은 권력의 분립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1.왕의 자격_하나님이 선택한 사람(14~15절)
이스라엘에서 왕정은 필연적(필수적)인 상수가 아니라 조건적인 변수에 불과하다. 즉 왕권은 특정인이 스스로 권력을 차지해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14절,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백성들에 의해 선택될 수 있었다. 이 점이 이방의 왕정과 가장 다른 점이다.
 
지상의 왕권 제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도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무엘상은 왕권에 대하여 부정적이지만, 신명기는 “반드시 세우라(15절)”는 명령을 통해서 보면 부정적이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왕을 반드시 세우라고 말하면서 그를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로 언급한다. “택하다(바하르)” 라는 동사는 신명기에서 제의 장소(12:5, 11), 제사장(18:5) 그리고 왕(17:15)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여호와의 “선택 사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용어임을 보여준다. 또한 신명기가 왕권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의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네 형제 중에서”이다. 이는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는 것”을 금하는 명령과 의미가 유사하다. “형제”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므로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왕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제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타국인”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왕이 될 수 있다. 또, 사사기와 사무엘서에서 언급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나, 왕권 세습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뜻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먼저 반드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한다. 둘째,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셋째, 언약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은 안 된다.
 
 
 
2.왕의 금기_군사, 외교, 경제권의 한계 설정(16~17절)
왕이 해서는 안 될 금기의 핵심은 “스스로 힘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6절은 군사적 금령을 선언하는데, “군마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 군마를 늘리기 위해 그의 백성을 애굽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다시는 너희가 이 길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떄문이다(16절). 말(군마)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군사력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그런 가나안의 전략을 맞서는 길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왕은 말(군마)을 많이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
 
또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 명령은 고대 근동의 왕들이 다른 나라와 정치 동맹을 맺어 정략적으로 아내를 많이 두었던 관습을 따르지 말라는 명령인 것이다. 당시 일반적이고 중요한 외교전략이었던 정략결혼으로 인해 오히려 이방 여인들이 왕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 충실하지 못할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했다(왕상 11:1~4). 이 명령은 일반 백성에게도 중요한 금령이었다.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과 결혼하면 안 되는 까닭도 여호와를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신 7:2~4).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과 왕은 여호와의 기업(소유)된 백성이며, 그분만 섬기는 제사장 나라로 구별되었기에(출 19:5~6), 결혼이나 안보, 외교 정책이 이방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위하여 부를 축적하지도 말라 하신다(17b절). 부의 축적은 탐욕을 낳고 탐욕은 왕권을 오용하는 위험에 빠뜨린다. 또 부의 축적을 지향하는 마음은 여호사밧처럼 언약을 파기한 왕인 아합과의 교류도 마다하지 않게 한다. 궁극적으로 왕이 경제력을 키우기 위하여 부를 쌓는 것은 여호와 의존적인 통치를 접고 자신이 얼마나 힘 있는 왕인지 과시하는 행위이다. 부는 왕이 스스로 노력하여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 레위기 26장과 신 28장은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사는 왕과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3.왕이 지켜야 할 덕목들(18~20절)
오직 이스라엘의 왕이 지향해야 할 덕목은 자신이 왕으로 섬기는 여호와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왕은 모세가 토라를 완성한 후 제사장에게 건네준 원본(신 31:9~13, 24~26)에서 부본을 만들어야 한다(18절). 토라를 필사하는 것이 낭독하는 것보다 선행해야 하는 까닭은 토라의 내용을 이해하고 익히는 데 단순히 소리내어 읽는 것보다 필사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사한 토라를 평생토록 공부해야 한다(19a절). 공부 방법은 낭독이다. 낭독은 여호와께서 수여하시는 토라를 주의깊게 듣고, 그 토라에 반응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토라를 낭독함으로서 왕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울 것이다(19절). 구체적으로 토라의 모든 말씀과 이 규례에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 경외하기를 배운다. 규례(하후킴)로 번역된 히브리어 복수 명사“하후킴”은 토라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 백성으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범위”를 정해 준 것이다. 당연하게 이 범위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토라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단계를 명확하게 순종해야 실천에 옮기며 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순종과 실천은 이해와 맞물려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왕은 토라를 낭독하며 토라에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 얻어낸 이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모본이 되어야 한다.
 
또, 왕은 “그 마음이 형제들/종족 위에 교만하지 않게” 행하여야 한다. “마음(레브)”으로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생각과 계획이 나오는 사람의 중심”이다는 뜻이다.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형제다. 왕의 중심에 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높아져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이 표현은 왕의 통치가 그의 형제들인 백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자기 생각대로 정책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왕의 정책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계명에서 좌로나우로 벗어나지 않는데” 있다. 즉, 이 계명, 토라에 순종하여 행하라는 반복적인 명령인 것이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명령이다. 왕과 그의 자손들이 이렇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순종하면 그 결과로 그와 그 자손들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다스리게 될 것이다(20절). 왕정의 존속은 왕의 탁월한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에 달려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나는?
-왕은 지도자, 재판장,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사명으로 통치해야 한다(14절). 왕이 많은 힘과 부를 소유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더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다스리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공동체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섬기며, 누구보다 더 하나님 경외하는 것이 뒤처지지 않는 삶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으로 읽힌다. 목사는 누구보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장 먼저,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에게 왕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15절). 왕을 세우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백성이 원할 경우 세울 수 있는 조건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법에 누구보다 순종해야 할 의무가 더 크다.
 
-이스라엘의 왕은 참되신 왕이신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나 재판장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왕은 이방의 왕들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의 힘은 가장 먼저 자신을 향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의 삶도 이와 같다. 내가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이가장 먼저 나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들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위하여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왕은 하나님 대신 병마(군마)나 은금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아내를 많이 두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빼앗겨도 안 된다(16~17절). 힘과 명예, 쾌락으로 마음을 채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다른 것이 마음에 차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왕의 권한은 율법에 순종하며 동시에 율법을 집행하는 것이다(18~20절). 왕은 나라의 법을 제정하고 공포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법에 가장 먼저 순종하고 그 율법의 뜻대로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평생 제사장에게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것이 왕의 가장 큰 임무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뜻대로 가정과 삶을 다스리는 존재이다. 이를 위해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의무이다. 다른 이를 말씀으로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판단하여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그 입술의 고백으로 가장 먼저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왕은 이스라엘 형제 위에 군림하여 자기 마음대로 다스려서는 안되며 다른 이스라엘 형제들과 동등하게 말씀의 다스림을 받으며 앞장 서서 순종해야 할 책임 있다. 나에게 주신 목사의 직분도 마찬가지이다. 말씀 앞에 가장 겸손하게,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순종을 가장 앞장서서 살아내는 것이 교회를 섬기는 첩경임을 깊이 되새겨 본다.
 
 
*이스라엘의 왕은 주께서 마음에 두신 자를 세워야 하며, 그는 그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채워서 군마, 은금, 여인들을 취하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도록 늘 토라를 필사하고 낭독하며 행하여 순종하는 마음으로 왕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왕이 계신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정하신 왕이시고, 성육신하셔서 백성과 함께 질고를 나누신 왕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한 왕이었고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목숨까지 버리신 왕이셨다.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체화하며 살아내신 놀라운 분이셨다. 우리에게 이런 왕이 있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은 복되고 복된 것이다.
 
 
 
*주님, 우리의 참된 왕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서 더예수님처럼 말씀에 집중하며 순종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왕은 참되신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순종하고, 가장 최후까지 순종을 이루어내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저도 지금, 여기에서 그런 각오로 살아낼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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