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의 영원하신 기업, 주 하나님! [신 18:1-14]
 – 2024년 02월 03일
– 2024년 02월 03일 –
레위 지파를 위한 규정(1~8절)과 여호와의 심판을 불러온 가나안의 가증한 관습에 대한 경고(9~14절)를 서술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올바르게 섬긴다면 레위 지파를 위한 규정을 잘 지킬 것이다. 가나안은 가나안 신들과 연계된 종교 행위로 물든 땅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마귀들과 악한 마술사들이 위협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앞날을 알기 위해,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또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술사를 찾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여타 주변 사람들처럼 “인생의 불확실성” 가운데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곧 언약 규정을 준수하면 축복,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따를 것을 알고 있다(레 26장, 신 28장).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 언약 질서를 세우고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 땅에서 정착하여 사는 동안 토라를 배우고, 실천하여 언약 질서를 확고하게 세워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거나 그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따르면 안 된다. 또한 가나안 종교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언약 공동체 안에서 용납해서도 안 된다. 가나안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땅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사는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1. 레위 지파를 위한 기업(1~8절)
1~2절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분의 기업에 관해 서술한다. 제사장을 포함한 모든 레위 사람은 다른 열한 지파 사람들과는 달리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다(1a절). 이렇게 레위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직무와 관련이 있다.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의 자손은 제사장직을, 다른 레위인들은 성막(성전)의 일을 자자손손 이어가도록 택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택하신 이유는 시내산에서의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다. 시내산 언약 체결로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언약이 체결된 동일한 장소인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샀다. 이때 모세의 지시를 따라 여호와의 심판을 대행하는 일에 레위 지파가 자원한 것이 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출 32:25~29).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대신하여 택함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민 8:17~19).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레위 지파의 직무를 자자손손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과 그분의 기업은 제사상을 포함한 레위 지파 전체가 살아 나갈 방도다(신 18:1b). 여호와의 화제물은 제단 위에 재물 일부를 불살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 곡식을 찧은 가루, 그 가루로 만든 음식을 드리는 소제(레 2:1~9), 화목제(레 4장), 또 속죄제와 속건제(레 5:14~6:7)가 있다. 또 여호와의 기업은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에게 주신 생계를 위한 몫을 뜻하므로 레위 지파의 기업은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과 불사르지 않은 헌물이다. 대표적으로 십일조와 같이 불사르지 않는 예물은 레위인의 생계 수단이 되는 기업이 된다.
    
3~5절은 제사장을 위한 몫을 설명한다. 희생제물의 앞다리와 두 볼과 위, 곡물과 포도주, 기름과 양털의 첫 소출이 제사장의 몫이다(3~4절). 이렇게 하신 까닭은 여호와께서 아론과 그 자손을 선택하셔서 그들 평생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제사장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5절).
    
6~8절은 레위인들의 특권에 관하여 서술한다. 지방에 거주하는 레위인이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성막/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생기면, 거주하던 성읍을 떠나서 그의 소원대로 할 수 있다(6절). 즉, 레위인들은 지방에 거하면서 부여받은 소명을 행할 것인지, 아니면 성막/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성막/성전에서 섬기기를 원하면 그 레위인은 다른 모든 레위인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다(7절). 또한 그가 받을 몫도 차등이 없다(8a절). 그러나 제사장의 몫(3~5절)과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제사장에게만 돌아가는 몫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레위인은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 헌물로, 지방에 거주하는 그의 가족도 그것을 먹을 수 있다(민 18:21~26, 31). 십일조는 레위인의 기업(민 28:16)이고 레위인은, 이 기업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준다(민 18:28). 또한 지방에서 올라온 레위인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판 돈을 가질 수 있다(8b절).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분배받은 영토 가운데 48개의 성읍을 목초지와 함께 분배받았다(수 21:1~42). 그들의 가축을 기를 방목지가 필요한데, 그 가축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을 대속한 여호와의 것이었다. 이 가축들은 국가적으로 드리는 절기 제사, 상번제, 또한 안식일에 드리는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민 3:41).
    
    
    
2. 약속의 땅에 세워질 새로운 질서(9~14절)
9절은 여호와께서 주실 약속의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을 전제하며 그 땅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야 할 것을 당부한다. 히브리어 문장은 접속사 “키”로 시작한다. 이는 강조 용법인데,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며, 분사 “주시는(노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전 과정에 걸쳐서 그 땅을 주실 것을 함축한다. 즉 이스라엘은 “서서히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민족들이 행하는 가증한 것들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 “가증한(토에바_혐오스러운)” 것은 진멸의 대상이므로 언약 질서 아래 있는 약속의 땅과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습득해서는 안 된다(신 7:25). 가나안 민족들의 인격과 삶에 깊이 채색된 가증한 것들은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관습들이다.
    
10~12절은 이스라엘 본받으면 안 되는 자들에 대하여 가나안인들의 삶의 뿌리까지 영향을 미쳐서 그들의 삶을 통제했던 가나안 종교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받는다. 그런 자들은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가증한 관습으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민족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지속해서 몰아내신다.
    
13~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세워 살아가야 할 본문을 말씀하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13절). 여기에서 “~앞에서(임)”로 번역한 전치사는 두 대상이 가장 밀접하게 함께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삶의 각 영역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늘 완전해야 한다.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한 일들을 습득하지 않고 토라를 일상에서 실천하여 여호와께 전심으로 충성하라는 것이다.
    
    
    
나는?
-레위인의 기업은 여호와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또 그들의 기업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먹여 살려 주신다는 뜻이다.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정체와 같다. 그들도 이 땅의 나그네이며 순례자이다. 땅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레위인은 어디를 가도 레위인이다. 거기서 다른 형제 레위인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다. 그들의 몫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인도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일의 종류나 성취의 정도나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레위인은 여호와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온 민족 가운데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방의 가증한 것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가나안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하나님을 대신할 만한 것들을 쫓아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온전히 따를 것을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점쟁이와 무당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이것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누구의 말,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을까? 세상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윗은 고백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이 땅에서 변변한 기업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니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시 23: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13절). “완전(타밈)”은 “흠 없는, 건전한”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이렇게 되도록 도우시며 이끌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실 것이다. 나의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고(빌 1:6),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리라.
    
*3~5절은 제사장의 몫이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와 제물의 일부임을 밝힌다. 이러한 명령은 제사장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임을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백성은 제사장의 몫을 그들에게 줌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책임을 맡았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사역자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실함으로 주님 앞에서 행하여야 하고, 공동체는 그 사역자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균형 잡힌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14절에서 본받지 말라는 가나안의 가증한 것들의 중심에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나안의 주술 행위들은 신을 조종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멈추지 않는 행위들인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 탐욕이 얼마나 큰지, 자기 자녀들까지 바칠 정도였으니 할 말 다 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이런 악습을 따르면 안 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침투해 있는 세상 가치로 뭉쳐진 악습은 무엇일까? 지금, 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무속 문화가 과연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어떨까?
    
    
    
*주님, 나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주심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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