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의 감사를, 나의 찬양을 받으소서 [시 100:1-5]
 – 2024년 02월 04일
– 2024년 02월 04일 –
이 시편은 표제가 “감사의 시”로 명명되어 있다. 여호와의 통치에 대한 반응이 감사와 찬송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본 시편은 찬송시 중의 찬송시로 불린다. 여호와를 향한 기쁨의 함성으로 여호와 앞으로 가라고 권면한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명령과 함께 그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라고 증언한다. 그리고 성소로 향하는 예배자들을 향해 그의 궁정에 들어가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외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 관계를 기초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는 감사와 찬양의 시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표제는 [감사의 시]로 되어 있다. “감사”로 번역된 단어는 “토다”이다. 감사, 찬양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역시 “감사하다, 찬양하다”의 의미를 지닌 “야다”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시편의 표제 중에서 “감사의 시”는 시편 100편이 유일하다. 시편 90~99편의 내용인 언약의 지도자인 다윗의 왕권을 넘어선 궁극적인 왕권인 여호와의 왕권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내용을 다섯 구절로 요약하여 “감사의 시”로 정리했고, 101~106편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시편이다.
    
    
    
1. 여호와를 찬양하라(1~2절)
1절은 온 땅이 여호와께 소리를 지르며 찬송할 것을 명령하며 “감사의 시”가 시작된다. 온 땅은 왕이신 여호와 앞에 입을 열어야 하며, 외쳐야 한다. 온 땅이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입을 열어야 하며, 외쳐야 한다는 것을 간결하면서 강하게 외친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2절)”라는 원문에는 두 개의 명령형으로 구성되었다. “섬기라”와 “나아가라”이다. 1절과 연결하면 여호와께 외치는 찬양의 행위는 곧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섬기다(아바드)의 명사형은 “종”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섬긴다는 것은 헌신적으로 희생적인 종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을 높이며 경배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기쁨의 외침은 여호와 앞에서 드려지는 것이므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기쁨의 찬양과 감사의 섬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해야 할까?
    
    
    
2. 찬양의 이유(3절)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새번역_3절) 1~2절에 강조된 찬양과 감사의 명령에 대한 근거이다. 그런데 “너희는 알라! (야다)”라는 명령형으로 이 문장을 시작한다. “야다”의 의미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경험과 체험을 통한 실천적인 앎”을 가리킨다.
    
무엇을 경험하고 체험함으로 알아야 할까? 바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것이며,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서이고, 그의 기르시는 양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모두 “언약”이라는 개념과 연결된 공통점을 가진다.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우리가 그에게 속했다.”, “그의 백성”, “그의 기르시는 양”은 모두 언약적 표현들이다. 특히 “여호와”와 “그의 백성”은 시내산에서 언약 체결 과정에서 나타난 표현들이다(출 3:14; 6:7).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신의를 지키시고, 약속을 성취하시며 그들을 돌아보신다는 고백을 역사의 증거와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여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령한다.
    
찬양과 감사의 이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다.
    
    
    
3. (그러므로) 여호와를 찬양하자(4절)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두 번째 초청이다. “들어가서”로 번역된 단어(보)는 2절에서는 “나아가다”로 번역된 같은 단어이다. 또 “감사(토다)”라는 단어도 표제에 이어 반복 사용된다. 표제와 1~2절을 요약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그의 문과 그의 궁정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앞으로 나아가는(2절) 것을 표현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무엇을 하는가?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는” 것이다. “송축하다(바라크)”는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찬양하다”라는 의미이다.
    
언약의 하나님을 경험하면 그의 임재 앞에 들어가서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반복하고 있다.
    
    
    
4. 왜 성전에서 송축해야 할까? (5절)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시면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친다(새번역_5절).”라고 밝힌다.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선하시기” 때문이다. “선하다(토브)”는 단순하게 “좋다”라는 감정만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대로 창조를 해나가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표현하셨던 그 “토브”이다(창 1장). 그런데 “토브”는 구약성경에서 종말론적인 의미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완성하신다는 기대와 신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선하시다는 고백은 또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하심과 관련이 있다. 그 근거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다”라는 고백이다. “인자와 성실”은 여호와의 성실성을 뜻하는 다윗 언약적인 표현이다. 여호와는 그가 허락하신 언약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선하신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선하심의 통치이다. 이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하며 환호성을 지르며(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신 성전으로 달려와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배다!
    
    
    
나는?
-시인은 “온 땅”을 향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성전 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초대한다. 그러면서 단지 입술의 찬양만이 아니라 “기쁨의 섬김”으로 나아가자고 가르친다. “기쁨의 섬김”은 기쁘게 주의 길을 걷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에 기쁘게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헌신에 어울리는 삶을 기꺼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감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인격 전체를 다하여 그의 앞에서, 그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섬기고) 찬양하는 것을 바라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기쁨의 섬김”과 전인적인 드림”이 있는 삶이다. 삶이 곧 찬양이요 예배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땅”을 찬양으로 초대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을 돌보시는(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기억하여 즐겁게 찬양하고 기쁨으로 섬기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통치를 경험했다면 마땅히 요청받고 마땅히 반응하는 것이 바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다.
    
    
-참된 찬양과 기쁨의 섬김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호와를 아는 데서 온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로운 통치를 경험한 데서 오는 앎이다.
    
-기쁨으로 섬기며 노래하며 예배해야(나아가야) 할 오직 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의 백성인 우리는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양인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나를 창조하심을, 나를 다스리심을, 나를 기르심을 경험함으로(몸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알 때) 기꺼이 기쁘게 섬길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찬양은 가락으로 흥얼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체화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감격에 영혼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것임을 알 때(고전 6:19~20), 온몸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될 것이다. 매일 묵상과 순종을 통해 온몸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 때, 우리는 더 즐겁게, 더 간절하게, 더 진실하게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이 변치 않으신다. 언약에 대하여 인자와 성실하심이 불변하시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인자, 헤세드)과 성실하심으로 언약을 잊지 않고 성취하시기에 우리의 영원한 감사의 대상이 되신다.
    
-자기 백성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창조하신 목적대로 그 백성에게 샬롬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악이 보란 듯이 승리한 듯 보이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꺾이는 것처럼 보여도, 그럼에도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만은 영원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 때문이다.
    
    
-성문에 들어갈 때 감사하고, 성전 뜰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명령한다. 시인에게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시다. 변덕이 심한 인생과 달리 인자와 성실이 영원하시다. 영원한 인자와 대대에 이르는 성실하심이 언약하신 대로 자자손손 그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
    
-선하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을 보기에 좋게 창조하실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고 찬양하고 송축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주님, 나의 감사를 받으소서, 나의 찬양을 받으소서,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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