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긍휼과 회복의 하나님 [시 102:12-28]
 – 2024년 02월 07일
– 2024년 02월 07일 –
극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는다. 희망을 붙잡는다. 이 믿음과 희망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여 주시면, 모든 민족이 이곳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인은 1~11절의 고난에 대한 묘사를 넘어서서 여호와께 구원을 요청한다. 그 근거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면서 언약 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시온에서 열방을 다스리시는 여호와께서 영원하시니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고 시인을 돌보실 수 있음을 노래한다. 시인은 고난 중에 절망하였지만, 시온에 계신 여호와의 영원하심은 덧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넘어선다. 하나님은 시인뿐만 아니라 신인의 후손들까지 구원하셔서 은혜의 대반전을 이루어 주신다.
    
    
    
1. 영원하신 하나님(12절)
“그러나 주님, 주님은 영원히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주님의 이름은 대대로 찬양을 받을 것입니다.” (새번역_12절) 12절을 시작하며 “그러나”로 시작한다. 시인은 자신의 날이 그림자처럼 순간이라는 탄식에 찬 고백(11절)과 대비된다.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여호와의 영원성”이다. 개역 개정은 “주에 대한 기억”으로 번역한 부분은 새번역은 “주의 이름”으로 번역했다.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을 어떻게 도우실까?
    
    
    
2. 시온을 통해 일하시는 여호와(13~22절)
13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그 정한 기한이 다가오고 있음을 선언하신다. “정한 기한”으로 번역된 “모에드”는 “정해진 장소”, 혹은 “정해진 시간”을 뜻한다. 정해진 장소는 회중이 모이는 회당 등을 가리키고, 정해진 시간이란 절기, 혹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시점 등을 의미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뜻한다.
    
14절은 그때가 되면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게 될 것을 노래한다. 이는 시온성 전체가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주의 종들”과 “시온의 티끌”이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여호와께서 시인을 구원하시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시온 공동체 모두를 건지실 것이다. “시온”은 102편에서 총 4회 등장한다.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원래는 예루살렘 성이 있는 땅의 시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시온과 예루살렘은 “다윗 언약”을 가리킨다. 영원하신 여호와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시온을 택하시고 다윗의 언약 공동체를 선택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
    
17~18절은 여호와의 구원 결과가 어떠한지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빈궁한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빈궁한 자들이란 “벌거벗은 자들”이라는 의미다. 곧 여호와의 도우심이 없는 절망 속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시온에 계시는 영원한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셨다. 18절은 이와 같은 여호와의 일하심은 다가올 장래 세대까지 알려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장래 세대는 “창조함을 받을 백성(18절)”이라고 부른다. 창조함을 받는다는 것은 “전적인 여호와의 능력으로만 된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는 이제로부터 후대까지, 영원부터 영원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셨고(19절),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게 된 후손을 해방하여 주시기에(20절) 기꺼이 찬양할 이유가 된다고 소개한다. 여호와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굽어보시고, 살펴보시고, 들이시는” 분이시고 후에는 해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이 시온에서, 그의 영광이 예루살렘에서 선포되기 위함이다(21절). 그때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22절).
    
*12절부터 22절까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여섯 번 반복된다(12, 15, 16, 18, 21, 22절). 이와 함께 “시온”도 세 번 반복한다(13, 16, 21절).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그의 이름을 시온, 곧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온 열방이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선포할 것을 확신한다.
    
    
    
3. 여호와에 대한 신뢰와 확신(23~28절)
23~24절은 다시 암울한 현실 세계를 인식하며 탄식한다. 하나님이 내 힘을 인생 여정 중반에 쇠약하게 하시고, 내 날을 짧게 하셨다고 토로한다(23절). 시인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는 않겠다고 단호하게 의지를 표명한다. “나의 하나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주님의 햇수는 대대로 무궁합니다(새번역_24절)” 연기처럼 소멸하고 풀처럼 시드는 인생의 본질을 알지만(3, 11절), 그 짧은 생애 주기에서 이대로 더 일찍 끝나지 않기를 간구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를 마무리한다. 25~28절은 “한결같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후손이 항상 안전하게 살며, 그 자손도 당신 앞에서 굳건히 설 것이라고(28절) 신뢰를 표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들이 가득한데, 놀라운 것은 그 고백들을 가장 고난 당할 때 의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근거하여 고백하고 있으나, 지식이 실제가 됨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고백하는 시인의 모습이 도전된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중에 나타나실 분이시다(12~16절). 이에 열방이 주의 이름과 영광을 경외할 것이다. 바벨론 포로가 배경으로 여겨지는 이 시편은 일차적으로 우상숭배와 사회 정의의 죄악으로 적대국(원수)의 훼방(8절)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정한 기한에 회복될 것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처럼 고통 중에 있는 시인 자신의 처지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바라본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것을 보면서 나의 당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빈궁한 자의 기도를 멸시치 않고 들으시는 분이시다(17~22절).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절망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시인은 하나님께 그분이 약속하신 일을 성취하시도록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다. 자기의 욕망이 아니라 이미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 기도하고 있다. 모든 민족이 시온에 모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말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내다보고 있다. 약속을 따라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신다.
    
    
-영원무궁토록 계시며 그의 백성을 위하여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23~28절).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고통 중에서도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의 종들이 영원히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 (새번역_18절)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일을 보면서 새롭게 창조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이 찬양할 것이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구원의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나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시인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외치는 것이 “나의 하나님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무궁하니이다(24절).”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그의 긍휼을 바라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비록 시온에 무너진 성전 돌들과 티끌들이 가득하여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면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이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온에 영광스러운 성전이 서고 그곳을 향해 기도하면 빈궁한 자까지도 멸시받지 않고 응답을 받을 것이다.
    
*숨어 버리신 줄 알았던 하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굽어보시고, 살피셔서 갇힌 자와 죽음을 앞둔 자에게 자유를 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탄식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실 것이다. 죄로 인해 무너졌던 샬롬의 공동체가 다시 기쁨과 치유가 있는 샬롬의 공동체로 돌아갈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실한 이끄심을 믿는 자신들의 찬양을 기록에 남기라고까지 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이스라엘(시인)을 위해 일하시면 지금 시인을 조롱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것이다. 뭇 나라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모든 민족과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고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온 세상의 주가 되게 하시고 그를 인정하는 자들을 새 이스라엘과 주의 성전으로 삼아 그들로 땅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이 약속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셨다. 지금, 여기에서 땅끝에서부터 하나님을 인정하는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셨다.
    
    
*인간의 날은 풀 같고, 연기 같고, 그림자 같지만, 여호와는 영원하시다. 심지어 천지도 낡은 의복처럼 없어지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무궁하실 것이다. 우리의 날은 짧아도 그분 안에 있으면 항상 안전하고 영원히 굳게 설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불안과 염려를 감추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은 없다. 영원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유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 짧은 인생을 위해 영원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헐벗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기도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입니다.”(새번역_17절) 아… 얼마나 감동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실 뿐 아니라 업신 여기지 않으신다. 고난을 직면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기도여야 할 충분한 이유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이렇게 들어주신다. 아멘.
 
 
*지인의 묵상글이 감동 되어 소개한다.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죽게 된 사람들을 풀어 놓아 주셨다.”(새번역_20) 만일 하나님이 강한 자와 부자의 편이라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을 닮는데 있다고 노래하는 이철 신부님의 시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돈 세는 것이 서툴고,/물정에 어수룩해도/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중략)/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책망하기보다/용서해 줄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면/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반대하는’ 특기를 갖기보다/‘찬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서로 믿어주고,/서로 희망이 되어주고/서로 사랑할 줄 안다면/우리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후략)”
 
*에고… 나는 하나님 닮기 아직 멀고 멀었구나…. 그래서 더 발버둥 쳐보겠다.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것을 나도 그렇게 닮아야지… 주님을 닮고 싶다. 번뜻이는 지성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구비하고 싶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약자의 서러움에 더 민감한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좌절스럽기만 하다….
 
    
    
*주님,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흑암 속을 걷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잡아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긍휼과 회복의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을 더욱 닮고 싶습니다. 지성도 주시고 그것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도 더욱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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