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막 1:1-11]
 – 2024년 02월 08일
– 2024년 02월 08일 –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복음으로 규정한다. 이 복음은 예수께서 시작하고 가르치신 복음이요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다. 마가는 이러한 복음을 구약의 출애굽기와 이사야의 본문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종말에 하나님 나라가 성취될 때 일어날 일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예언하였다. 그중에 주목할 만한 곳은 에스겔서인데, 에스겔은 종말론적 비전 가운데 성령이 부어져 하나님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겔 36장). 또한 요엘서의 예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요엘 선지자는 메시아 시대에 부어질 성령에 대하여 언급했다(욜 2장). 물론 요엘의 예언은 대개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세례받는 장면에서도 이미 성취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8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모든 인류(말 2:10), 이스라엘 민족(출 4:22), 천사들(욥 1:6) 또는 왕들(삼하 7:14; 시 2:12)을 염두하고 사용되었다. 마가는 이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사용하며 추측하기로는 문맥상 진정한 이스라엘, 혹은 진정한 왕이라는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헬라어 본문에서는 소유격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동시에 주격 속격이나 목적격 속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주격 속격으로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혹은 가르친 복음”으로, 목적격 속격으로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가복음의 문맥에서는 이 두 가지 이해가 다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혹은 가르치신 복음이기도 하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기도 하다.
 
또 “복음(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1세기 당시 황제의 아들이 탄생하거나 전쟁에서의 승리 소식을 가리킬 때 사용한 단어였다.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이 단어를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왕으로 오셨다는 소식과 그분이 이 세상 나라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도래하게 하셨다는 소식으로 치환하여 선언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복음(기쁜 소식)”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보편적으로 기뻐하는 소식들보다 진정한 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다.
 
2~3절은 구약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는데 실제로는 이사야 40:3과 출애굽기 23:20과 말라기 3:1이 합성된 인용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라는 출애굽의 표현은 세례 요한을 가리키고, 이후 이사야 40:3을 거의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인용한다. 4~5절에서 “세례 요한이 이르러”라고 표현한 것은 우연한 등장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예견된 등장임을 드러낸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는 번역은 문자적으로 “죄 사함에 이르도록 하는 세례”로 직역할 수 있다. “회개하다(슈브)”라는 단어는 크게 뉘우치는 마음의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하나님께로 삶 전체가 온전하게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고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한다는 의의를 두었다.
 
6절은 세례 요한에 대한 묘사이다. 그는 약대 털옷과 가죽 띠를 띠고 있었다.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었다는 묘사는 열왕기하 1:8의 엘리야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을 비롯하여 이러한 모습은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시대에 했던 역할을 상기시킨다. 세례 요한의 세례 특징은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는 사람들(전 유대인들)을 향한 언약 갱신의 의미가 있다. 그의 세례는 자신의 죄를 자복한 사람들에게 징표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 특징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으로 묘사한다(8절). 이는 구약 선지자들의 선포와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에스겔은 종말론적 비전 가운데 성령이 부어져 하나님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할 것을 예견하였다(겔 36장). 또 요엘은 메시아 시대에 부어질 성령에 대해서 (욜 2장), 광야의 하나님 백성을 인도하고 참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 성령을 제시한다(사 63장). 마가는 예수님께서 이러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자로 제시한다.
 
 
 
2. 예수님의 세례(9~11절)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이 장면에서는 세 가지 현상이 주목된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임했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확증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성령의 임함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할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신적인 계시가 임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소개해 준다.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처형하는 로마군의 백부장에 의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확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증언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세례를 받으시자, 성령께서는 비둘기처럼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셨고,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셨다. 세상을 구원하고 뜻을 이루시기 위한 삼위 하나님의 종말적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나는?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와 말라기의 예언을 마침내 실현하시는 것을 증거한다(2~3절). 선지자를 통해 장차 영광으로 임하실 여호와를 예언하시고(사 40:3~5), 그 길을 예비할 사자를 약속하셨다(말 3:1).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이사야의 글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광야의 대로를 걸어 귀환하시는 영광의 왕으로 선언한다.
 
 
-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자,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다(4~5절). 영광으로 임하실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정결케 하는 행동이자,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가 요청하는 백성의 자격이다.
 
-하나님 나라가 요구하는 지금, 여기에서 자복해야 할 죄와 버려야 할 내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요한은 약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6절). 선지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광야의 소리로 존재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어떠할까? 입고 걸치고 있는 옷과 가죽띠를 통해, 먹는 음식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을까?
 
-물질 숭배의 소리와 강요가 가득한 세상에서 광야의 소리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고 있는가?
 
 
-요한은 자기의 뒤에 오실 분에 대해 겸허히 증언한다(7~8절).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눈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증언하는 입술의 고백이 이처럼 주님의 증인답게 주님만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복음을 가져오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소식이다.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소식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선지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고,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지배를 받아왔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약속만은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 언약을 지키려고 메시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왕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내 소속과 정체를 결정한다. 복음 자체인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드러내며 사는 인생이어야 할 것이다.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임하실 하나님 나라를 수용하고 그 나라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요한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게 하였다. 이는 몸으로는 바벨론 포로에게서 귀환했으나, 영적으로는 여전히 포로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세례는 새 출애굽의 상징이요,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의식이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의 소리로 살아냈다. 그가 전하는 말은 “오실 메시아”를 위한 소리뿐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입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어야 하지 않을까!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싶은 심정으로 강에 뛰어드는 것이 “세례”이다. 세례 요한은 아합 시대부터 부정한 권력과 결탁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광야로 오실 메시아를 전하였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평판이나 안전이 아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역할을 전하는 소명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받아들인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요단강의 세례 요한에게 찾아가 세례를 받으셨다. 죄인도 아니면서 죄인을 위해,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과 함께 죽음으로서 죄인을 살리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소명에 충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말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죽음까지 수용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것만이 “칼의 나라”가 아닌 “사랑의 나라”를 세우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다.
 
 
*복음, 아름다운 소식, 좋은 소식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이 좋은 소식임을 안다면 가장 먼저 자기 보좌에서 내려올 것이다. 내가 왕 된 자리에, 주님이 왕 되셔서 좌정하시도록 나의 인생 왕좌를 꿋꿋하게 떠나야 한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힘차게 시작되었다. 그 복음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복음임을 믿습니다.
*주님, 입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걸음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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