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죄에 무뎌진 사람의 특징 [삼하 13:24-39]
 – 2022년 10월 09일
– 2022년 10월 09일 –

한 사람의 죄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 수 있는 본문이다. 동시에 죄에 무뎌진 인생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도 깨달을 수 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이와 같은 영향력을 예측이나 했을까? 만약 예측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죄의 씨앗이 얼마나 큰 불행의 열매를 맺었는지를 살핀다.

다윗의 범죄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 재난이 임할 것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삼하 13장부터 20장까지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주신다. 그 출발이 암논의 근친상간이다. 압살롬의 여동생인 다말을 암논이 짝사랑하고 암논의 사촌 요나답이 제안한 간교한 방법을 따라 다말과 강제로 동침한다. 하지만 다말을 욕보인 후에는 그녀를 더욱 싫어한다. 암논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정욕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암논은 이 일로 인해 자기 무덤을 파게 되었다. 왜냐하면 레위기 20장 13-17절에서 나타나듯 이스라엘 내의 근친상간은 수간과 남색하는 죄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 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 일을 보고 받고 격노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다윗의 가정에 많은 문제점을 가져오고 이스라엘에 어려움을 불러 왔다.

이 일로 인해 결국 아들끼리의 살인이 벌어진다. 압살롬은 여동생 다말의 사건이 벌어진지 2년 후 암논을 살해한다. 그의 살인동기는 겉으로는 근친상간에 대한 처벌이었지만, 내적 동기는 복수심이었다. 그는 암논을 죽이기 위해 2년 동안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리며 철저하게 복수심을 불태우며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노가 올라올 수 있으나 그 분노가 복수심으로 이어진다면 또 다른 큰 죄를 짓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압살롬은 곧바로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그술로 도피하여 3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한편 이 모든 일을 알게 된 다윗은 옷을 찢으며 슬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편으로는 압살롬을 그리워하며 염려한다.



1.기회를 놓친다(23절)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하나님은 매몰찬 분이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 암몬, 압살롬등을 바라보며 방관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다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돌이키도록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

먼저 23절을 살펴보자 “만 이년 후에…” 본문은 암논이 다말에게 몹쓸 짓을 한 후 이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암논에게는 사건이 잘 해결되었구나 라는 안도의 착각을, 압살롬과 다말에게는 치욕스러운 고통의 상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와 시퍼런 칼을 어찌할지 와신상담하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을까? 만약에 그 사건이후 2년 동안 암논이 치열하게 다말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쉽게 열려질 마음과 용서를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책임지려 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만약 그런 과정을 통해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면 훌륭한 왕이 될 기회를 얻었을 수 있다. 하지만 암논은 2년 동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암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신 것이다.

*죄가 조용히 넘어 갔다고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죄는 크기만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죄를 암덩이로 비유한 것은 가장 적절한 것이다. 암 환자가 생활 태도와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암덩이가 더 커지듯이 죄에 대하여 해결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면 오히려 더 커질 뿐이다.



2.도무지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압살롬은 이년 동안 마음에 가지고 있던 시퍼런 칼날을 꺼내든다. 23절은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바알하솔이란 동네는 벧엘에서 북동쪽으로 8-10km 떨어진 해발 1,000m의 고산 지대로서 목축업을 하기에 적절한 지역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20km정도 떨어져 있어서 다윗 왕이 조치를 취하기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이점도 있기도 했다. 또 양털을 깎는 시기인데, 이 날은 대단한 축제일로 지켰다. 모든 가족들과 주민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는 날이다.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압살롬이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죄로 치닫는 인생은 이처럼 그것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임에도 올바른 길이라고 착각하여 죄악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더욱 치밀하고 대담하게 죄를 기획한다.

압살롬은 왜 양털깍는 날에 다윗을 초청했을까? 본문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암논을 초청하겠다고 하면 복수하겠구나 라고 눈치를 챌 것이다. 압살롬은 다윗의 마음을 먼저 안심 시킨 후 아들들을 초청한다. 아버지를 이용하여 아들을 끌어들이는 계략은 놀랍게도 암논이 아버지를 이용하여 다말을 끌어들이는 모습과 똑같다. 그런데도 다윗은 아무말 없이 암논을 비롯해 아들들을 함께 보낸다. 이런 다윗의 모습이 적잖게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보통의 판단력이라면 그 치욕스러운 가정 내의 근친상간의 사건의 후폭풍이 얼마나 심각할지 간파하고 있어야 했고 압살롬의 이런 행동에 저의가 담겨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음에도 다윗에게 이런 판단력과 총기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밧세바와의 간은 사건 이후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암논이 다말을 보내달라는 비상식적인 요청을 그대로 허락하는 장면이나, 암논이 근친상간을 했을 때 분노만 할 뿐 말씀에 따라 처벌하지 않는 모습, 압살롬이 암논과 아들을 양털깍는 날의 축제에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쉽사리 허락하는 모습 등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한 모습이다. 왜 이렇게 판단력과 분별력이 떨어진 것일까? 그가 죄의 대하여 무뎌지고 무뎌져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판단하고 분별하는 총기가 사라졌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죄에 무뎌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아는 광야의 다윗, 즉위 초기의 다윗의 모습과 비교하여 이런 다윗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분명하다. 삼하 2:1, 5:19를 보라. 어떤 일을 하든 그는 하나님께 물었다. 그런데 본문은 어떤가? 다윗을 비롯해 암논, 압살롬 모두 하나같이 묻지 않는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무뎌진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지혜롭게 묻는 사람이 묻지 않는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있다. 삶의 지혜들이 묻는 행동 속에 들어있다. 우리의 관계가 틀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묻지 않고 홀로 생각하다 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지지 않는가! 하물며 하나님께 묻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묻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물음에 응답해 주신다. 다만 내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답을 정해 놓고 묻기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즉 묻는 태도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묻는 질문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응답을 겸손하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3.늘 뒷북만 친다(30-31)
28-29절은 압살롬은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28절 “이미”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압살롬은 그 사건 이후 삶의 초점이 암논 제거에 두고 준비한 듯 보인다. 암논은 차기 왕위 서열 1순위다. 이에 관련하여 “압살롬은 이미 자기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암논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질 때를 잘 지켜 보아라. 그러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쳐죽이라고 하면, 너희는 겁내지 말고 그를 죽여라. 내가 너희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이니, 책임은 내가 진다. 다만, 너희는 용감하게, 주저하지 말고 해치워라!”(새번역_28절) 라고 독려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는 압살롬의 말에 맹신하고 암논을 찔러 죽인다. 한편 암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2년 전 자신의 행동을 인지한다면 조심했어야 횄다. 그런데 그는 술 취해 있다. 통상 죄를 지은 사람은 예민하기 그지 없다. 늘 주위를 둘러보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는 술 취해 있다. 이 모습은 그렇게 악한 일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기 커녕 무디고 무디어진 모습이 충격적이다. 오히려 아무 거리낌 없이 평상시와 다름 없는 삶을 사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30-31절을 함께 읽어보자. 죄에 무뎌진 인생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인가? “뒷북”이다. 죄로 인해 판단이 무뎌진 이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금만 생각하고 그보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방관했다가 일이 발생하면 옷을 찢고 통곡을 하고 재를 뿌린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된다. “뒷북”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렇기에 내가 죄를 멀리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뒷북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죄에 대하여 민감해 져야 한다.

또 다윗은 이 일을 소문(소식)으로 듣는다(30-31절). 그런데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인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소문만 듣고도 통곡하고 슬퍼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행동한다. 확인하지 않는다.



4.공감이 결여된다. 자기만 생각한다.
이 때 한 사람이 등장한다. “요나답”이다. 32-33절 이다. 이 사건의 발단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아주 간교한 사람이다. 요나답은 정말 노답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암몬의 죽음 소식이 들려오면 뭔가 잘못 되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일말의 슬픔도 없다. 오히려 왕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다 죽지 않았다.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차가운 말인가! 위로와 공감부터가 아닌가? 걱정하지 말라니… 다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를 믿으라니..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을 보라 사건만 생기면 더 부풀리고 군중심리를 이용해 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 사건을 통해 이익만 보려한다. 성경은 이런 요나답의 모습을 우리에게 투영한다. 내게 유리한 것이 생기면 기회다 싶어 아픔과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좁은 모습이 얼마나 많은가!



결과적으로 압살롬은 2년 동안의 와신상담 끝에 복수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인가? 34, 37-38절을 살펴보자. 자기딴에는 정의구현으로 복수에 성공하나 그것의 댓가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도 멀어진다. 그술 땅은 가나안 전쟁 때 바산왕 옥이 다스리던 땅이다. 우상이 가득했던 땅이고 헤렘 명령을 받았던 땅이다. 그 땅에서 3년을 거한다. 하나님을 섬겼을까?

또 다윗은 어땠을까? 39절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70인역 번역은 시간이 흘러 압살롬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4장은 이로 인해 다윗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했다.

다윗, 압살롬, 암논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죄에 무뎌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밧세바 사건 이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죄에 무뎌진 이들의 특징이다.

죄는 나쁜일을 한 것을 죄라 하지 않는다. 하난미을 떠난 상태를 죄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지금 죄 아래 있는 것이다. 모두 고통 중에 있다. 다윗은 큰 아들은 죽고, 한 아들은 망명중이다. 암논은 회개에 무지했다. 압살롬은 우상의 땅에서 우상에 물들어 있다. 요나답은 어떤가 이 기록 이후로 더 이상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

롬 1:28-31절이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바울이 이렇게 죄에 무뎌진 인생을 묘사한다.

*우리는 이러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한다. 죄에 무뎌진 인생 되지 않도록 성령께서 각성 시키실 때…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자!



*주님, 죄에 무뎌지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겠습니다
*주님, 기회를 붙잡고, 늘 묻고 물으며, 뒷북치지 않는 삶이고 싶습니다.
*주님, 이기적이고 공감하는 마음이 없는 메마른 삶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부어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