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비유와 하나님 나라_네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앗 해석과 등불비유[막 4:13-25]
 – 2024년 02월 17일
– 2024년 02월 17일 –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해석해 주신다. 이 비유는 기대하지 못한 모습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모습을 드러내 준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드러나도록 전파되어야 함을 등불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신다. 이 비유는 주님께서 비유를 설명하실 때 비유가 가지는 감추는 기능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오해될 수 있는 소지를 염두에 두고 의도된 것 같다. 그리고 듣는 방식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도 이어가신다.
 
비유에 대하여 먼저 이해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 단순한 윤리적 가르침을 위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계시사적 관점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계시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 계시는 점진적 발전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만개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점진적 계시라는 관점에서 구약성경에서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1.네 밭에 뿌려진 씨 비유 해석(13~20절)
제자들과 일부 사람들이 “그 비유들(10절)”의 뜻을 물을 때,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13절)며 “이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그리고서 네 밭에 뿌려진 씨의 비유는 모든 비유를 이해하는 열쇠처럼 해석을 들려주신다.
 
먼저 “씨를 뿌리는 자(4:3)”가 뿌린 씨가 “말씀”임을 알리신다. 마태는 “천국 말씀”,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했다. 복음서에 말씀이 지칭하는 것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머지 복음서는 “예수가 가르치고 전해주신 말씀, 곧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총칭한다. 이 말씀은 씨와 같아서 그 속에 “하나님 나라”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씨는 “뿌려진다.”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선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선포된 말씀은 사람들이 듣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킨다. 올바른 작용은 말씀의 생명력을 맛보고, 반작용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내포하는 것이다.
 
 
네 종류의 밭도 각각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길 가”에 뿌려진 씨(말씀)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말씀을 들었을 때 새들(사탄)에게 씨(말씀)를 빼앗긴 것(15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새를 사탄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하셨고, 말씀이 뿌려지자마자 “즉시” 와서 방해한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지만 즉시 사탄에게 빼앗긴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고 사탄이 그 씨를 그 상태로 그대로 거둔다. 말씀이 가지는 어떤 유익도 누려보지 못하고 뿌려진 그 상태로 사탄이 거두어 간다. 씨 뿌리는 자의 뿌림이 무색해진 것이다. 이 비유에서 새(사탄)는 전통적으로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당연히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두 번째 돌밭은 “이들”을 가리키시는데, 곧 말씀이 뿌려졌을 때, 먼저 즉각적인 긍정적 반응(기쁨)을 보이는 이다(16절). 겉으로 보기에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듯하여 고무적이지만, 그 말씀이 갖는 진정한 기쁨인 열매 맺음까지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뿌려진 말씀이 뿌리는 내렸으나 건강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으나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잠시 견디다가(임시적)” 곧 넘어진다(17절). 예수님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한다. 그들은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후로는 자신들의 감정과 이해에 근거하여 주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다(요 6:14~15). 하지만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히고 산헤드린과 빌라도 앞에서 심문과 고문을 당하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지르며 돌변했다.
 
세 번째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 역시 말씀을 듣고 일차적으로는 기쁨의 반응을 보인다. 분명 뿌리내림과 자람도 경험한다.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인해 결실하지 못한다. “세상의 염려”라는 표현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 점령당하고 그것에 푹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염려, 유혹, 욕심 등과 연관되어 있고, 이 모든 것은 똑같이 마음을 빼앗아서 결과적으로 결실하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염려와 유혹, 욕심이 말씀이 자라는 기운을 막아 열매 맺지 못하게 한다. 이는 염려, 유혹, 욕심이 세상 나라가 맺는 열매인 것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말씀이 뿌려져서 견실하게 맺는 열매에 대해서는 갈 5:22~23이 대표적이다. 예수님 당시 이러한 사람들의 두드러진 예는 마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 율법도 지키며 살았으나 재리의 유혹으로 인해 결실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갔다(10:22).
 
네 번째 좋은 땅이다(20절). 뿌려진 말씀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이다. 이런 결실은 “말씀을 듣고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16절의 돌밭이 기쁨으로 “받다”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일반적인 수용을 나타내는 “람바노”이고, 좋은 땅의 “받다”는 “어떤 것을 사실로 믿고 그에 따라 반응하다”라는 의미의 “파라덱소마이”이다. 좋은 땅은 앞선 세 땅의 방해요소가 없다.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비유 상 “좋은 땅”은 열매 맺을 조건을 갖춘 땅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밭 스스로 완비할 수 없는 것이다.
 
문맥상 예수로 말미암아 하늘의 비밀을 깨닫도록 허락된 자들이 말씀이 풍성한 결실을 볼 운명적 조건을 확보하는 좋은 땅이 된다. 천국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열매 맺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보았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다. 주님의 사역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이들은 적지 않은 경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고,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역전이 주님의 사역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 통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비밀(미스터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인데, 이것은 가히 폭발적인 결실로 나타날 것이다.
 
 
 
2. 등불 비유와 드러남과 들음(21~25절)
등불 비유는 그 자체로 매우 애매한 표현을 담고 있어서 자체적인 표현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바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4:12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언급된 듯하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의 의도를 불필요하게 오해하지 않도록 누구라도 등불을 켜서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려 함이 아니고 등잔대(등경) 위에 두려고 가져오는 것처럼 주님의 비유도 그 비유의 종말론적인 의미가 근본적으로 가려지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어서 주님 안에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우치는 비유이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22절)” 새번역은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고 번역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은밀하게 주어진 가르침을 가리킨다. 이 가르침들은 이제 제자들의 복음 전도로 명확하고 분명하게 전해질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분명하게 나타나게(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등불이 되어 등경 위에서 비춰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속되는 말씀 속에서 제자들이 듣는 것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새번역_24~25절) “되질하여 주는 만큼 되질하여 주실 것(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는 말씀은 마태와 누가는 “용서”를 강조하며 이 구절을 사용했지만, 본문에서는 주님에 의해서 전해진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 비밀은 오직 들을 귀 있는 제자들만이 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있는 자(25절)”에게는 비유의 방식으로 비밀이 계시가 되어 하나님 나라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지만, “없는 자”에게는 그것이 단지 매일 듣는 일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결국 하나님 나라의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게 된다.
 
또, “헤아림(되질)”도 역시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자들은 비밀을 듣고 받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듣는 것을 “스스로 삼사라”고 경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귀 기울여 듣고 깨달을수록(4:12) 하나님은 비밀의 신비를 더하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깊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무엇이 씨의 운명을 가르는가? 말씀(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 깨닫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았음에도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비유의 뜻을 설명하신다(13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유를 들은 제자들은 더 온전한 이해를 위해 반복해서 듣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읽고 들으며 묵상해야 하리라.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씨앗은 각각 다른 결과를 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시점에 열매를 맺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그 씨들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좋은 땅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했다.
 
-새와 돌과 가시떨기가 씨앗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듯이, 마귀는 우리에게서 말씀을 빼앗고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다. 내가 말씀을 잘 듣지 못하도록, 그리고 말씀을 잘 간직하지 못하도록, 말씀에 온전하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이러한 방해를 이겨내고 말씀의 열매를 맺기 위해 더 힘써야 하리라.
 
-하나님 나라 복음이 당장에는 곳곳에서 실패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아무도 예상 못 할 만큼 승리할 것이고,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순간에도 꾸준히 승리의 역사는 지속되고 있다. 이 진리를 믿고 수고에 비해 미미한 성과에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등불은 등경 위에서 어둠을 비추는 것이 목적이듯이, 하나님 나라 비밀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깨닫고 반응하는 것이 목적이지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해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나타내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듣는 자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알아듣게 말씀하실 것이다.
 
-사람이 등불을 등경 위에 두듯이, 주님의 비유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가능한 한 진리를 더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주님의 공생애 당시 숨겨졌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된 사건에서 밝히 드러났으며 주님의 재림 때에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드러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리를 내 삶에서 어떻게 드러내고 있을까?
 
-듣는 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욱 풍성하게 깨닫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내 생각과 삶에서는 선명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주님, 하나님 나라 복음이 미약하게 보일지라도, 결국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승리할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 이 복음을 등경위에 등불을 올려놓는 것처럼, 세상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