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비유와 하나님 나라_은밀하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 [막 4:26-34]
 – 2024년 02월 18일
– 2024년 02월 18일 –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마태복음에서는 ‘천국(하늘 왕국)’으로 표현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꺼렸던 데서 유래한다. 실제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이 ‘하늘나라’를 사용한 평행 구절에서 대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신원(伸寃_원통한 일이나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풀어 버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 안에서 임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랐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계시적인 성격을 띤다.
    
본문은 부지중에 자라는 씨 비유(26~29절)를 통해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 비유가 가지고 있는 계시적 특성을 보여주신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대로 전 우주적인 사건이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요란한 모습으로 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농부에 의해서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 맺는 모습과 같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신다. 주님께서는 또한 미미한 시작과 영광스러운 결말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겨자씨 비유(31~32절)를 드러내신다.
    
    
    
1. 부지중에 자라는 씨 비유(26~29절)
이 비유는 복음서 가운데 마가복음에만 등장한다. 네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 비유처럼 구약 안에서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 나라 속성을 설명하는 비유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때 나타날 여러 가지 현상들을 구약성경, 특히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근거하여 기대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 통치가 실현되면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신원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심판과 신원은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적 사건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런 종말론적인 사건들은 선지자들이 선포한 대로 여러 가지 징조들이 함께 할 것이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기초하여 가지고 있었던 기대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여러 가지 징조들이 성취되어 분명한 증거가 되었음에도 그들이 기대하였던 종말론적인 회복의 모습과 전 우주적인 심판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즉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임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을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씨를 뿌렸으나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싹이 나고 자라는 과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라는 개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비유였지만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27절)”라는 표현은 농부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서 결실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자람이라는 낯선 과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농부의 수고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 맺는 것은 전적으로 땅의 힘에 달려 있다.
    
또한 29절은 요엘 3:13을 배경으로는 선포인데, 원래의 문맥에서는 추수가 종말론적인 심판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으나, 본문에서는 주님의 인격과 사역 가운데 드러나지 않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것은 미미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때가 이르면 반드시 추수하게 될 터인데, 이 모든 일의 시작과 끌이 인간의 힘이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2. 겨자씨 비유(31~32절)
이런 관점으로 겨자씨 비유의 핵심은 씨 그 자체가 아니라 씨가 뿌려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작은 것의 대명사는 “겨자씨”였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긴 후에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겨자씨는 그야말로 가장 작은 씨앗은 실제로 아니다(31절), 하지만 격언처럼 아주 작은 것을 지칭할 때 자주 예를 드는 것이었다. 이 비유의 초점은 “겨자씨”처럼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시작과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라는 표현처럼 대단한 결과를 대조하는 데 있다.
    
이스라엘에게 예언되고 기대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는 모습은 아주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 다수는 하나님 나라가 나타났는데도 적절하게 감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겨자씨에 비교함으로써 그 나라의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모습을 드러내신다.
    
이 비유는 상식에서 벗어난 과장된 묘사가 비유의 핵심을 적절하게 강조해 준다. 한철에 보통 3m까지 자라는 겨자는 놀라운 속도로 자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큰 가지를 낸다는 것은 과장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겨자를 큰 가지를 내는 나무라고 암시하신 것(마 13:32은 명시적으로 나무라고 부른다)은 구약에서 나무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염두에 두신 것이다. 큰 나무는 자주 큰 제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특히 다니엘 4:12, 20~21절은 겨자씨 비유와 상당히 일치한다. 이 말씀은 거대한 한 나무의 성장을 보여주는데, 광활한 제국을 상징한다. 그런 것처럼 주님과 제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뿌린 말씀, 예수님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는 세계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즉,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이방 민족까지 포함할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구약적인 배경에 따라 겨자를 나무라고 지칭하여 하나님 나라를 큰 제국의 모습으로 제시하시려는 것이다. 여기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그늘에 깃든다’라는 표현들도 구약성경의 구절들과 유사한 평행구들을 갖는다. 이는 새가 그 제국의 보호 아래 모여든 나라들을 의미한 것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큰 제국에 비유하시고 이방의 큰 나라들이 하나님 나라 영향력에 들어오게 될 것임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다. 시편 104:12, 16~17에서도 이를 노래하고 있다.
    
당시 제국의 수도 로마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갈릴리에서 시작된 주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은 세상의 안목으로 보아도 너무도 눈에 띄지 않는 미미한 시작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은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까지 퍼져 나갔고, 마침내는 온 제국과 그 주변 나라들이 하나님 나라 복음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 민족이 그 나라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선명하게 확증해 준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유대인들의 기대처럼 웅장하고 폭발적인 모습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끝은 너무나도 다르다. 겨자씨 씨앗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시작이었으나, 그 끝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대조를 이룰 것이다.
    
    
    
3. 비유로 가르치시는 주님(33~34절)
마가는 주님께서 많은 비유로 가르침을 주셨지만, 자신은 특별히 세 비유를 소개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실 때 왜 “비유”라는 형태를 사용하셨는지에 대한 손쉬운 대답은 없다. 그러나 마가는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라는 기록을 통해 이를 설명하려 한다.
    
주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 비밀을 담아 “너희”와 “외인”을 구분하는 기능이 있음을 밝혔다(11절). 실제로 무리들은 주님의 비유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 도드라졌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라는 비유의 표현과 34절의 ‘혼자 계실 때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라는 설명과도 대조가 된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표현은 당시 비유를 듣는 백성들에게 익숙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의미이고, 그 이야기에 담긴 의미와 비밀을 알아들었다는 표현이 아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들을 해석해 주신 것이다.
    
주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일반적인 서술식으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잘 알아듣기도 힘들고 오래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기억에도 오래가고 그 의미도 분명하게 전달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비유라는 장르는 주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비유를 듣는 이들은 주님의 비유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신 것이다.
    
    
    
나는?
-주님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를 통해 말씀이 지닌 힘과 영향력, 그리고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신다. 작지만 크게 자라는 겨자씨처럼 하나님 나라는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성장하고 확장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자라는 나라이다. 농부는 씨를 뿌릴 뿐 자라나게 할 수 없다. 싹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충실한 곡식으로 자라가고, 자라 있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도 인간의 능력과 지혜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달려 있다. 하나님 나라가 성장해 가는 것을 매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 안에는 생명이 있기에 그 나라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왕의 지혜와 능력으로 진행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자라는 나라이다. 겨자씨 한 알을 보면서 모든 풀보다 더 크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가지를 내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미약한 시작을 보면서 아무도 그 창대한 결말을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로마의 피지배국 변방 갈릴리의 목수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 복음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로마의 수도까지 퍼지고, 로마 황제에게까지 전달되어 복음에 굴복하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생동하여 상상을 초월하여 번성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진리이다.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더 가르치셨다. 잘 배워야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 나라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위해 일하기 전에 예수님께 배워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배워야 한다.
    
    
*주님은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쳐주신다(33~34절).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지만, 비유의 의미를 깨닫길 원하는 제자들에게는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말씀을 추구하는 자들을 진리로 이끄시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씨를 뿌린 농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26~29절). 아무리 열심히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물줄기를 끌어서 물을 주어도 농부에게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할 능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결실도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때문에 이루어진다.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 과정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한꺼번에 많은 열매가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탁월한 설교와 열정과 전략이 결실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사명은 오직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믿음과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이 열매 맺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겨자씨는 작은 씨의 대명사지만, 새들이 깃들일 만큼 놀랍게 자란다. 주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큰 제국의 모습에 비유하시고 이방의 모든 족속이 하나 나라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게 될 것을 보여주신다. 지금 우리 공동체, 그리고 한국 교회의 모습이 세상 앞에서 너무 미약하고 보잘것없어도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계속해서 자라고 있으며, 가장 위대한 나라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은밀하지만 확실하게 자라는 나라에 제가 살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작게 시작하지만, 영광스럽게 자라는 나라임을 믿습니다.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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