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님 손만 얹어 주시더라도, 나의 손을 주님의 옷자락에 대기만 해도 [막 5:21-34]
 – 2024년 02월 21일
– 2024년 02월 21일 –
주님은 갈릴리 동쪽 이방지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후, 유대 지역인 갈릴리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신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또다시 큰 무리가 맞이한다.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청원하고, 혈루증에 걸린 여인의 이야기가 야이로의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네 개의 기적(큰 광풍, 거라사 광인, 야이로의 딸, 혈루증) 이야기 중에서 두 개의 기적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전체적인 구조는 “믿음 없는 제자들”에게서 “믿음 있는 두 남녀”로 대조된다. 그것도 사회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지위 높은 회당장과 사회 종교적으로 소외된 부정한 여인이 각각 절박하고 절망적인 딸의 죽음과 십이 년 묵은 오랜 병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 받으려는 몸부림이다. 이 이야기는 마태는 간략하게 다루었으나 마가는 구체적으로 다룬다.
    
    
    
1. 회당장 야이로와 주님(21~24절)
주님께서 갈릴리 지역의 동쪽 이방지역인 데가볼리의 거라사 지역에서 유대인 지역인 갈릴리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셨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셨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지고 많은 무리가 주님께로 모여들었다. 그중에 회당장 야이로가 있었다. 그는 매우 다급했다. 23절은 주님 앞에 엎드린 야이로가 간곡히 구하여 “내 이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라고 청원을 시작했음을 알린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나의 어린 딸이 마지막 순간을 가지고 있다”이다. 즉, 그의 딸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절박한 순간에 주님께서 오셔서 그의 손을 어린 딸에게 얹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손을 얹는” 것은 당시 치유할 때 취하던 행동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주님은 결과적으로 소녀의 “손을 잡아” 고치신다. 주님은 야이로의 간청을 듣고 그의 집으로 향하신다(24절). 그런데 이미 큰 무리가 모였고 주님과 일행을 에워싸고 있었으므로 밀치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2.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과 주님(25~34절)
마태는 이 기사는 매우 간결하게 서술했지만, 마가는 여인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서술한다. 여인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를 만났고, 재산을 다 허비했으나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오히려 질병은 심해지고 말았다. 마가의 이런 묘사는 여인이 주님 앞에 나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효과를 지닌다.
    
당시 혈루병은 단순히 여성질환으로 여기는 차원에서 종교적으로 부정함과 연결되어 매우 심각한 질병이었다. 혈루병은 자궁 출혈을 말하는데, 레위기 15장에서 율법이 규정한 바에 따르면 몸에서 피를 흘리는 여인은 그가 앉은 자리에 접촉하기만 해도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는 의식상의 정결 규례를 행하여야 했다. 이런 질병으로 십이 년을 고생했다는 것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져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런 여인은 결혼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결혼했더라도 부부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은 그녀가 뒤로부터 접근하여 주님의 옷자락 끝을 만졌다는 것만으로도 경건한 유대인들은 공포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을 상황이다. 하지만 여인은 주님께서 치유의 능력을 갖추고 계심을 확신하였기에 이러한 모든 위험 요소를 뛰어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공통으로 보여준다. 반면, 여인의 은밀한 접근과 야이로의 공개적인 간청은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데, 이는 그녀가 사회-종교적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격리되고 소외당하는 처지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혈루증은 즉시로 멈췄다. 여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29절). 주님의 옷자락만 만진 여인이 즉시로 치유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극적이다. 그만큼 여인의 믿음은 절박하고 간절했다. 여인뿐 아니라 주님도 자신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아셨다. 그래서 누가 자신의 옷을 만졌는지를 질문하신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주님께서 실제로 누가 옷자락을 만졌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니다. 32절은 이미 알고 계신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그렇다면 왜 이 질문을 하셨을까? 이는 주님을 만진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서 제자들에게도 교훈을 주시려고 의도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제자들은 주님의 질문에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새번역_31절) 라고 상식적인 차원에서만 반응했다. 여인은 주님께서 자신을 보려고 둘러보시자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 떨며 모든 사실을 고백하였다. 여인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레위기 토라의 규정에 따라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고, 그럼에도 주님을 만졌기에 부정한 일을 했다고 책망을 들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가가 이렇게 자세히 기록을 남긴 의도는 유대인의 정결법상 부정한 행위를 한 여인의 보도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토라의 규정을 뛰어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주님은 정결 규례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인이 정결법을 파기한 것에 대하여 꾸중하시는 것 대신에 구원과 치유를 선포하신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새번역_34절)
    
이 여인의 치유 사건이 믿음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선포는 주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선언이다. 이 선언에는 치유사역에 있어 유일한 조건이 주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나는?
-치유의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주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부탁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를 고치신다.
    
-주님은 언제나 그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병든 자의 고통과 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잘 아시기에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와 함께 가신다. 사람이 헛된 우상들은 무자비하여 강한 자의 편이 되지만, 주님은 언제나 약한 심령을 돌보신다. 주님께 주저하지 말고 내 문제와 고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주님을 믿고 간절히 붙잡는 여인에게 평안을 선포하셨다. 주님은 여인이 옷을 만지기 전에 마음에 가진 믿음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다. 주님은 야이로와 같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의 소원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되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신다. 한 사람의 구원은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 복귀하여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까지 포함된다. 주님 안에서 전인적인 회복이 일어나는 공동체이기를 소망해 본다.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열두 살 난 딸의 구원을 간청한다. 당시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지탄받고 있었기에 주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딸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이처럼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주님 앞에 엎드려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 엎드리는 공동체이어야 하리라.
    
-한편 많은 무리가 주님을 에워싸고 밀쳤지만,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만이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은 그들 중에 이 여인처럼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손을 댄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의 말씀과 능력을 신뢰하고 주님께 손을 뻗고 있을까?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참여하고 믿음으로 그 통치의 은혜를 누리는 나라이다.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 발아래 엎드려 어린 딸을 치료해 주시도록 간곡하게 간구한다. 그는 주님께서 딸에게 손을 얹기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으며 고통을 당하고 모든 재산도 탕진한 여인도 주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무리 가운데 끼어 주님 옷에 손을 댄다.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님 손만 얹어 주시더라도…. 나의 손을 주님의 옷자락에 대기만 해도….” 얼마나 놀라고 강력한 믿음인가!
    
*여인이 주님을 만지자 곧 혈루 근원이 마른다. 여인은 병이 나은 줄 즉각 알았다. 주님께서는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바로 아셨다. 주님께서 구원의 능력의 근원이시다. 여인은 병을 앓은 지 십이 년이 넘도록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수많은 의원의 수입원만 될 뿐이었다. 누구도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병증은 심해졌다. 세상의 과학기술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주님의 능력을 기대어 보자…. 주님께서 능력의 근원이 되신다.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다. 믿음이 여인의 병을 낫게 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더 살든지, 혹은 죽든지 내 몸에서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구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상황과 여건을 뛰어넘는 더 믿음의 삶을 꿋꿋하게 드러내야 하리라.
    
*여전히 주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 삶의 연약함, 궁핍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건강하든지, 병에 걸렸든지 내 안에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소원하는 믿음으로 삶의 항해를 이어가야 하리라.
    
    
    
    
*주님, 손만 얹어 주시더라도, 나의 손을 주님의 옷자락에 대기만 해도…. 이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언약 백성일지라도 [신 29:14-29]

이스라엘은 모압 땅에서 언약을 체결한다. 그것은 율법 순종에 대한 언약이라는 점에서 출애굽기의 언약 법전과 연결된다. 본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이 미래의 이스라엘 백성을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