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헛된 전통, 헛된 경배, 헛된 순종 [막 7:1-13]
 – 2024년 02월 27일
– 2024년 02월 27일 –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의 정결 규례를 따라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문제 제기에 이사야 29:13을 인용하여 대답하신다. 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전통을 지키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다고 비판하신다.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행위는 마치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었다.
    
1세기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구별됨을 강조했는데, 이는 바벨론 포로 이후 이방인들과 섞여 사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정결 규례를 강조하였다.
    
    
    
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 제기(1~5절)
지금까지 마가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기록은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4방 이후 하나님 나라 비유들을 제시한 후로 예수님의 기적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본 단락에서부터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이 길게 소개된다. 이 과정에서 종교 지도자들과의 긴장이 가속화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의 사소한 문제 제기를 의도적으로(?) 급진적인 대답과 선언으로 맞받아치면서 긴장 관계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 문제 제기하는 장면을 통해 마가는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직면하게 될 도전과 수난을 미리 암시한다.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더러운 손, 즉 정결 규례를 따라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레 15:11을 근거한 규례였다. 제자들이 이렇게 정결 규례를 엄격하게 지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스승이신 예수님 때문인 듯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장로들의 정결 규례를 잘 지키고 있지 않았다(5절).
    
장로들의 정결 규례와 관련하여, 실제의 율법은 출 30:18~21에서 제사장들이 손 씻는 규정을 제공하는 수준인데, 후대 바벨론 포로 시기를 지나면서 이 규정을 일반 유대인들이 음식 먹는 데까지 확대해서 적용한 것을 일컫는다. 또 마가는 마태의 기록과 달리 ‘시장에서 돌아와서 물을 뿌리는 것’에 대해서도 기술하는데, 시장에서 부지중에 부정한 자들과 빈번한 접촉을 예상할 수 있기에 자기 정결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와같은 유대인들의 율법 이해는 예수님 당시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시행되었는데, 이는 율법을 더 잘 지키려는 목적으로 시행된 것들이었다. 이러한 이해를 보통의 유대인들은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안식일 법과 정결 규례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국제 정세에 따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어쩔 수 없이 섞여 살게 되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좀 더 강조하는 문맥에서 더 두드러졌다.
    
    
    
2. 행위보다 마음 먼저(6~8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 제기에 주님은 이사야 29:13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다. 주님이 보기에 그들의 행위는 마치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던 이사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과 비슷했다. 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가 실상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바로 경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며 지도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들이 행하는 행위의 정곡을 찌르신다. 그들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에 사로잡혀서 율법의 본래 정신을 놓쳐버린 것이다. 당시 장로들의 전통은 실제 율법을 확대 적용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이러한 확대 적용의 목적이 구체적이지 않은 율법을 삶 속에서 구체화해서 그 율법을 좀 더 잘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3. 장로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예(9~13절)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전통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구체적인 예로 “고르반”을 드신다.
    
당시 “고르반”이라는 법은 하나님 앞에서 한 번 행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에 기반한다(민 30:2~3).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려질 특별한 돈이나 제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고르반이라는 법을 악용한 것이다.
    
즉 자기 부모님이 도움이 필요한데, 자식은 부모를 돕지 않기 위해서 자기 돈을 ‘고르반’이라고 하면 자신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나아가 고르반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아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고르반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는 인간의 악한 품성을 주님은 지적하셨다.
    
결국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만들어서 토라에 나와 있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규정(출 20:12)과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자는 죽이라’라는 출 21:17의 규정을 결과적으로 폐하고 있었다. 고르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악한 도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모를 욕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주님의 언급처럼 이러한 전통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고르반’만이 아니라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와 같이 전통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이 당시 유대 사회에 적잖이 시행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사람이 만든 전통으로 이웃을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철저한 정결 규례를 통해 자신들을 이방인과 구별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과 제자들을 정죄한다(1~5절). 전통을 이용하여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으로 세상 속 우리의 이웃을 정죄하면 안 된다. 정조나 배제가 아니라 용서와 포용이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제사장에게나 요구되던 높은 수준의 정결함을 자발적으로 추구했다. 그러나 그 열정이 문제였다. 그들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지킨 정결 기준(장로들의 전통) 때문에 형제를 쉽게 정죄하는 오만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교만이 되어 버린 정결의 열정이다.
    
-사랑 없는 순종이 인간적으로 의로움만 높이 쌓고, 차디찬 판단 하고 정죄하는 마음만 키우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용하는 것이 사랑 없이 정죄하는 것보다 낫다.
    
    
-주님은 외적인 종교적 행위보다 내면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살피신다.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경고한 대로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을 책망하신다(6~8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했다. 이러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행위를 외식으로 규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들 마음에 없다고 평하셨다.
    
-우리가 잘 지키고 전수해야 할 경건한 전통도 있다. 하지만 어떤 관습과 전통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다. 말씀의 정신을 잊어버린 전통 수호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혹시 우리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이나 문화를 더 우선하지 않는가?
    
-입술과 마음이 따로인 절반의 신앙을 절대화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리 떠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지키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
    
-내 안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지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통은 나의 오만과 태만을 감추는 도구만 될 뿐이다. 입술과 마음이 따로인 절반의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의 전통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9~13절).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이라고 선언하면 부모 공경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겉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공경의 전통을 표방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만 가득했다. 하나님을 빌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나의 신앙의 전통, 종교 행위들 속에 혹시 내가 고집하고 회피하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빌미로 순종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살피고 살펴야 하겠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말씀에 직면하게 하여 오늘날 ‘나의 고르반’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통을 고수하는 비겁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 진짜 부정함이고, 순종과 믿음을 통해 말씀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 참된 정결일 것이다.
    
    
*헛된 전통, 비본질적인 전통을 지나치게 고집하거나 어떤 관습이나 경험을 절대화하는 일이 있지 않는가? 그러느라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분별해야겠다.
    
*헛된 경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계명이나 관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위선에 빠질 수 있는지를 망각하면 안 된다. 껍데기뿐인 전통만 숭배하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도, 이웃 사랑도 잃어버린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두 마음”으로 드린 예배만큼이나, “마음 없는” 경배를 전통과 형식으로 대치하는 것도 하나님이 얼마나 가증하게 여기시는지 깨달아야 한다.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계명 준수보다, 진실하고 생생한 만남과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헛된 순종,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켜보려고 만든 인간의 전통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장로의 전통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악함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명분에 대한 순종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닮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 헛된 전통을 열심히 하기보다, 말씀 앞에 순수하게 서겠습니다.
*주님, 입술과 마음이 따로인 절반뿐인 헛된 신앙(경배)이 아니라 마음과 입술이 하나 되게 살아보겠습니다.
*주님,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전통에 헛된 순종(집착)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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