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 [막 7:14-23]
 – 2024년 02월 28일
– 2024년 02월 28일 –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구약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소망을 성취하는 분으로 제시한다.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긍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이전부터 있었던 해석을 확증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급진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시한 정결 규례의 확대 적용을 넘어서서 더 급진적인 가르침을 행하신다. 율법에 대한 주님의 이러한 급진적인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은 어떠한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라고 선포하신다.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한 율법의 가르침과 이를 해석한 장로들의 전통을 뛰어넘는 가르침은 주님이 단순히 율법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문자적으로 순종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드러낸다.
    
    
1. 전통과 관련한 주님의 가르침(14~16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화를 마치시고 무리를 향하여 같은 주제로 가르침을 이어가신다. 즉, 이들과의 대화를 우리들이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희가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14절).” 주님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가르침보다 더 급진적인 가르침을 제시하신다.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새번역_15~16절).” 당시 유대인이 이해하기에는 매우 급진적인 가르침이었다. 율법의 적용, 즉 장로들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레위기 11장과 17장의 율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질문이 장로들의 전통으로 시작되었으나 주님은 그 문제에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을 때 하나님의 백성에게 구약의 율법이 그대로 유효한지의 문제로 한 발 더 나가신 것이다. 이 문제는 장차 초대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진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오셨지만, 구약의 율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주로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의 입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이 오셨기에 구약의 율법은 폐기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성경은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하신 분이시기에(마 5:17~18)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율법에 문자적으로 구속되지 않음을 밝힌다. 하지만 이를 이해할 리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무리들은 주님의 급진적인 가르침에 당황했을 것이다.
    
    
    
2. 가르침을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17~19절)
제자들이 충격적인 가르침에 대해 질문한다. 제자들은 주님의 비유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 이해하고 있섰을 것인데 주님의 가르침이 그러한 이해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레위기 11, 17장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에 주님께서 취하신 이러한 태도는 초대교회에서도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토론하던 주제였다. 특히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이방인 신자들이 율법의 조항에 얽매이는지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토론하였다. 이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구원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이방인의 율법 준수에 대한 부분을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함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베드로가 율법이 금하는 이방인들과의 식사 교제 중에 야고보에게서 사람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초대교회에서는 율법에 관련된 문제가 오랫동안 다루어진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주님께서 음식법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견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연관성 속에서 초대교회 안에 매우 예민한 문제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존재했다. 한편 마가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음식법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18~19절).
    
주님의 설명은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함은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의 소화 기관을 통해서 다시 배출되기 때문이다. 이어서 주님은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19절)’라고 선포하신다.
    
    
    
3. 주님의 결론적 가르침(20~23절)
가르침에 대한 해설을 제시하신다. 주님은 먼저 사람을 궁극적으로 더럽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죄악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하나 들어서 열거하신다.
    
“마음(21절_카르디아)”은 히브리어 “레브”를 번역한 것이다. 사람의 감정적, 영적, 지적, 의지적 요소를 포괄하는 인성의 본질적 실체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자리를 가리킨다. “악한 생각”이라는 표현은 뒤이어 등장하는 열두 개의 악한 행동들과 태도들(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을 포괄한다. 이와같은 행동들은 모두 악한 생각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을 실제로 더럽히는 것은 사람(마음) 속에서 즉,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지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23절). 그렇다고 이 설명은 사람의 마음에서 언제나 악한 것들만 나온다는 뜻도 아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면 마음에서 좋은 것
    
주님께서 이렇게 마음에 나오는 악한 생각들과 목록들을 다루는 이유는 각각의 악을 정의하고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 내면인 마음속이 그토록 부정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외적인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정결”이라고 믿는 유대 정서에 익숙한 제자들에게 진정한 정결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관심 없고 그저 전통에 충성함으로 스스로 정결하다고 믿었던 유대교의 정서에 익숙한 자들에게 진정한 정결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관심이 없고 신앙 전통에 갇혀 형식에만 관심 두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는 소홀한 일부 성도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이다.
 
    
    
나는?
-외적인 규례에 집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 후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과 같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음란, 간음, 탐욕, 비방과 같은 더러운 마음이다.
    
-주님은 말씀을 깨달으라고 당부하시며 제자들에게 다시 설명해 주신다. 오랫동안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가르침을 받아왔고, 전통을 따라 살아왔던 무리와 제자들은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깨달아 행하는 데로 나아가기를 구한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15, 16절)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내 마음은 버려둔 채, 손과 그릇만 신경을 쓰고, 장로의 전통이 이스라엘을 이방인과 구별하는 표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외적인 규례가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해졌다(6:52).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기도 하였다(8:15~17).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온전한 지식에 이르고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도가 되었다.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성령께서 우리로 깨닫게 도와주시고 자라게 하실 것을 신뢰해야 한다.
    
-“듣고 깨달으라(14절).”라고 주의를 환기하신 주님께서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18절)”고 호통치신다. 말씀을 이용하고 왜곡하는 바리새인들만큼이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둔한 마음도 책망하신다.
    
-깨닫지 못하면 분별할 수 없고, 잘못된 교훈을 따라 외식과 위선에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제자들은 지금 주님을 따를 만큼 믿음은 있었지만, 구약의 음식 규례와 정결법을 넘어선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수용할 만한 깨달음은 없었다.
    
-내 지식이나 경험, 신념을 포기하기를 요구하는 새롭지만 일리 있는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혹시 진리에 대해 한숨을 짓는 제자들의 이해 수준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온갖 악한 생각들이다. 주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목록들은 십계명에서 이웃 사랑에 해당하는 5~10계명의 금지 행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주님은 이런 행위의 뿌리가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악한 동기가 악한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악한 생각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는 데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잠 4:23).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신 주님이시다. 구약의 정결 규례와 음식법 전체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해석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자신들을 구별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우는 결정적인 도구였던 정결법을 폐지하신 발언이다.
    
*이와 같은 선언은 주님이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심을 보여주셨다. 이것은 친히 대속제물이 되어 인간의 모든 불의와 부정에 대해 속죄하고 정결하게 하실 주님만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선언이다. “정결 규례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이 선언을 통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이 없는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셨다. 그 어떤 외적인 조건도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의 특징을 온전하게 드러내신다.
    
    
*주님은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더러운 음식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고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마음에 이런 것들이 가득하고도 얼마든지 입술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 위선적인 종교 행위로 자기 마음을 감출 수 있다. 말씀의 빛에 조명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이 숨은 어둠을 다 볼 수 없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 정결의 핵심은 씻지 않은 손이나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뜻이다. 정결법에서 말하는 진짜 문제는 “오염된 마음”이다. 그러니 마음에 악한 생각이 가득하다면 아무리 외적인 정결 규례를 잘 지켜도 소용없다.
    
*주님은 중심이 썩은 거짓 열매에 속지 않으신다. 겉 사람만 치장하고, 종교적 형식만 갖춰 사는 허위의 삶을 버리고 진리 앞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의지하는 진실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주님, 마음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내 마음에 말씀을 가득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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